외줄 타는 베네수엘라 쌍둥이

by 이해린


오래간만에 날씨가 화창하게 갠 토요일, 친구 올리베라가 집 앞 공원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정말이지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맑은 날이었다.

1월 중 비가 오지 않은 날을 손에 꼽을 정도로 리스본은 축축한 한 달을 보냈다.

지난 주만 해도 며칠 내리 비가 왔는데 어쩐지 오늘은 아침부터 평소의 가랑비 대신 짙은 안개가 잔뜩 끼더니 오후가 되면서 밝은 햇살이 뿌려졌다.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이어서 단번에 바로 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훌렁훌렁 잠옷을 벗어던졌다.

역시 바깥 날씨에 감탄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잔디밭에 나와 앉아있거나 주변 산책로를 빙빙 돌고 있었다.

내일이면 연초부터 시작한 락다운이 1달을 맞이할 것이다.

꼭대기의 분수대에서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 앉은 사람들은 제각기 친구나 가족들, 혹은 연인들의 품에서 햇살을 맞고 있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이 곳이 지금은 관광객보다는 근처 사는 사람들이 잠깐 바깥공기를 쐬러 나오는 동네 공원이 된 게 참 아이러니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말이다.

알 수 없는 씁쓸함과 한 줌뿐이 되지 않는 규모의 인파도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락다운의 산물인 걸까, 골똘히 생각하는데 뒤에서 친구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오래 기다렸냐는 물음에 고개를 내저으니 언덕 위에 인적이 드문 잔디밭에서 잠깐 앉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올리베라는 가방을 슬며시 열며 샌드위치를 준비해왔다고 했다.


공원 끄트머리에서부터 위로 이어지는 언덕에는 철제 벤치가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지만 폴리스 라인이 쳐져있어 더 이상 앉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잔디밭에 멀찍이 떨어져 앉거나 누워서 모처럼의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올리베라가 닥터마틴 부츠로 마른 잔디를 꾹꾹 누르며 물어서 대답 대신 엄지를 들어 보였다.

이내 가방을 연 친구는 캠핑이라도 하려는지 별별 물품을 그 작은 가방에서 다 꺼내 보인다.

반의 반으로 접어 집에서는 이 위에서 요가를 하고, 해변가에 가면 모래사장에 넓게 깔 수 있는 비치타월로 쓴다는 코끼리가 그려진 화려한 문양의 담요였다.

우리는 두 명이니까 반만 접자, 우리 둘은 한쪽씩 모서리를 나누어 잡고 반듯한 직사각형 모양이 되도록 잔디밭 위에 깔았다.

그리고 연이어 가방에서는 랩으로 싼 샌드위치와 귤 네 개, 비스킷 두쪽이 나왔다.

나중에 배고파지면 먹자는 게 원래 계획이었는데 우리는 벌써 랩을 벗기고 있었다.

샌드위치 기계로 눌러 만든 토스트여서 빵 위로 정교하게 구운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그 안에는 치즈가 노랗게 먹음직스럽게 녹아있었다.

빵 두쪽과 치즈 하나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행복은 사실 어디 머나먼 차원에 동떨어져있는 형이상학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입 안에 넣어 우물거리며 씹어 효소로 소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형태로 존재하나 보다,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며 생각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가져왔는데 찍어줄까?”

“진심이야? 멋진데, 그건 어디서 나서?”

“생일 선물로 받았던 건데 요새 들어선 쓸 일이 자주 없었거든.”

“어, 나 한 장만!”

“그럼 샌드위치 값은 폴라로이드로 낼게.”

몇 발자국 걸어가 잔디밭에 납작 엎드려 초점을 맞췄다.

초록빛의 싱그러운 잔디밭이 반쯤 보이고 그 위로 하얀 구름과 옅은 푸른빛이 물감처럼 뒤섞인 하늘이 이어졌다.

그 경계선 사이에서 올리베라는 닥터마틴 부츠와 양말을 벗은 채 맨발을 뻗어 앉고, 새 타투를 한 한쪽 팔은 뒤로 받친 채 웃고 있었다.

“찍을게!”

친구는 신호에 맞추어 웃었다.

올리베라가 웃으면 입술의 중앙에 한 피어싱이 반짝거리며 보인다.


샌드위치를 먹고, 귤 두 개를 까먹은 뒤, 마무리 입가심으로 비스킷 봉지까지 열었다.

락다운이 언제 끝나는지, 올리베라의 플랫에서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이사 나가는 플랫 메이트들이 누군지, 그녀의 꼭대기 층에 사는 가족들이 왜 테라스를 잠가놨는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주변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뒤돌아보니 이곳저곳에 자리를 잡아서 앉아있던 사람들이 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고 있었다.

왜 그런가, 햇빛에 눈이 따가워 한 손을 들어 손차양을 만들고 언덕 끄트머리를 바라보았다.

경찰들이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며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앉은 상태에서 경찰에게 이유를 묻고 있었다.

대충 제자리에 앉아 혼자서 책만 읽고 있는 데다가 집 앞 10분 거리라서 별다른 규칙을 어긴 것도 아닌데 왜 공원 이용을 막는지 따지는 듯했다.

올리베라는 한 발씩 깡총거리며 신발을 우겨신더니 가방에 담요를 가차 없이 접어 집어던졌다.

언덕배기를 포함해 분수대와 그 옆의 난간들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향해 경찰은 호루라기를 불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인상을 팍 찡그린 채 마지못해 자리를 옮겼다.

일어나는 것 하며 잔디밭을 나서는 그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굼뜨고 성가심이 배어 있었다.

“세상에, 이러다가 햇빛도 마트에서 돈 주고 사야겠네.”

“난 벌써 샀는데.”

“무슨?”

“비타민D 한알씩 매일 먹거든.”

올리베라가 눈알을 굴린다.


앉아있지는 못해도 그나마 공원을 걸어서 나가려고 최대한 돌아가려는데 올리베라가 핸드폰 메시지 창을 보더니 묻는다.

“친구가 근처에 있다는데 잠깐 인사하고 갈래? 운동 중 이래.”

“무슨 운동?”

아무래도 개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경찰의 단속 대상에 걸리지 않으므로 인사를 빌미로 잠깐이라도 더 바깥바람을 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줄 탄대.”

뭘 탄다고?

듣자 하니 친구는 외줄 타기를 몇 년 전부터 시작했다고 하고, 주로 공원의 두꺼운 나무와 나무를 이어 줄을 설치하고 그 위에서 자주 연습을 한다고 했다.

심지어 이 공원은 외줄 타기를 연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핫스팟이라는 말까지 하는데 이틀에 한 번씩 아침마다 러닝을 하러 나오지만 그런 진귀한 광경은 본 적이 없어 조금 미심쩍기까지 했다.

“그 친구 취미가 외줄 타기라고?”

“요가도 하고, 서핑도 하는데. 요새 해변에 서핑은 잘 못 나가는 대신에 공원에서 요가하거나 줄타기를 자주 하는 거 같더라고. 애가 좀 히피스러워.”

요가와 서핑, 거기다가 외줄 타기라니.

그건 조금 히피스럽다는 말 갖고는 다 표현하지 못할 어마 무시한 요소들이지 않나, 얼터네이티브함의 정반합적인 요소를 모두 갖춘 그 친구가 과연 누구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공원 중턱 부근에 딸린 언덕 부지에 다다르니 지척에서 번쩍거리는 형광 노랑빛 끈을 맨발로 타고 있는 남정네가 보였다.

심지어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모습을 보아하니 딱 프로파일에 맞는 생김새였다.

“쟤가 아닐 수가 없는데, 저 친구야?”

올리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외줄 타는 친구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그 친구도 멀리서 손짓을 하며 화답을 한다.

그러는 와중에 줄에서 떨어졌지만 아무렴 상관없다는 투다.

머리를 고무줄로 동여 묶은 저 친구는 한쪽 편에서 줄 위를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그 줄의 맞은 끝 편에선 검은 비니를 쓴 다른 친구가 나무에 기대어 서있었다.

“쟤는 누구야?”

올리베라는 동생일 거라고 말했다.

외줄 타기를 하는 형제라니, 알면 알수록 혼돈에 빠지는 바람에 혼미한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 외줄 타기를 하는 형제들에게 다가갔다.

“반가워, 난 호세야.”

예수 머리를 자못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는 호세는 검은 비니를 쓴 친구를 손짓해 불렀다.

검은 비니 친구는 금이 간 세라믹 잔에 빨대를 꽂아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아, 얘는 내 쌍둥이 형 루이스.”

심지어 형제가 아니라 쌍둥이라니, 맙소사, 이 형제의 서사에 끝이 있긴 한 건가.


이 쌍둥이 형제는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이 곳 리스본에서 학사를 끝낸 참이라고 했다.

학업을 마친 후에 남은 시간으로 이웃 도시들이나 국가들을 여행하며 자유 시간을 즐기는 중이었는데 2020년에 휘말렸다고 전했다.

간단한 통성명을 마치면서 실없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 쌍둥이 형제가 보기에도 자유롭지만 사실은 보기보다 더 자유로운 영혼임을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전통적인 틀에 약간 빗겨나가는 선에서 살고 있지만 그마저도 내가 재단한 틀에서만 그렇지, 오히려 어떤 의미로는 누구보다도 주어진 시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다.

심지어 그런 모험들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혼자가 아니라 자동적으로 듀오로 활동하게 된다는 게 멋져 보였다.

금이 간 세라믹 잔에서 빨대로 마테차를 마시는 형과 잔디밭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동생.

보니와 클라이드가 따로 없는데, 싶은 그런 얼토당토않은 비유가 오히려 착 들어맞는 묘한 그림이 보였다.


“너도 한 번 타보지 그래?”

그래서 이 줄타기의 향연에 동참을 하라는 건가, 도전장을 내미는 루이스를 뿌리치지 못하고 알겠다고 하고 줄 위에 올라섰다.

맨발로 하면 마찰력이 생겨 더 쉽게 탈 수 있지만 난 컨버스를 신고 있었기에 줄을 푸르고 매는데 하루 온종일 기다리고 싶지 않다면 그냥 신발을 신고 타겠다고 했다.

나무 옆 동아리를 잡고 올라가는데만 해도 중심을 잃을 뻔했는데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발 밑을 쳐다보려고 하면 안 돼. 저 멀리에 하나의 점을 찍고 거기만 보고 걸어가는 거야.”

“자꾸 발을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 내가 어디 가는지는 알아야 되잖아.”

“볼 필요가 있어? 어차피 네가 딛는 곳이 발이 닿는 곳이잖아.”

루이스의 다소 추상적인 가이드와 너무나 필요했던 어깨 한쪽을 잡고 부들거리는 다리를 한 발짝씩 움직였다.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희한한 비명이 찔끔찔끔 나왔고, 루이스는 어깨를 부르르 떨며 웃었다.

외줄 타기는 마음의 수양과 집중력을 단련시킬 수 있는 일종의 훈련이라는데 내게 그런 한가로운 여유란 한 톨도 용납되지 않았다.

한 발, 한 발이 떨어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며 필사적인 내적 싸움이었다.

결국 다섯 걸음째에서 비장한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추락하고야 말았다.

“좀 요란했지만 처음 치고는 괜찮았어.”

너는 그걸 위로라고 하니 지금.


이제 해가 떨어질 때가 다 됐다, 해서 슬슬 짐을 챙기고 일어나려는데 올리베라의 친구가 공원을 가로질러 집을 가는 길이라고 전해 들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올리베라의 친구 안드레아가 자전거를 정차했다.

안드레아는 내가 리스본을 잠깐 떠난 사이에 남긴 짐 중 하나인 빔 프로젝터를 잠깐 맡아준 친구기도 했다.

자전거에 내린 안드레아는 가방에서 앱설루트 술병을 꺼내 들었다.

음주 운전인가, 투명한 액체를 꿀꺽꿀꺽 삼키는 안드레아를 쳐다보니 물이야,라고 한다.

“그걸 왜 술병에 들고 다녀?”

“더 멋져 보이는 거 같아서.”

가벼운 알루미늄 재질이나 보온이 잘되는 스테인리스보다는 오로지 멋을 위해 육중한 리커 병에 물을 담고 다닌다는 안드레아.

도대체 왜 이 곳에 보통의 사고를 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 같지?


안드레아도 내친김에 양말을 벗은 뒤 외줄까지 타고 이제 진짜 가자, 나 우리 집 건조기에서 빨래 꺼내야 돼,라고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드디어 갈 때쯤 안드레아의 친구가 또 지나간답시고 일행에 합류했다.

그렇게 두 명으로 시작한 산책이 쌍둥이로 네 명, 귀가 중이던 안드레아로 다섯 명, 지나가던 안드레아의 친구까지 여섯 명으로 불어났다.

우린 잔디밭에 동그랗게 서서 락다운이며 날씨 얘기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십여분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 여섯 명이라서 이제 경찰한테 걸리면 벌금 내야 돼.”

“이번 라운드는 내가 쏠게. 다음은 누가 낼래?”

“손소독제는 내가 한 턱 낼 수 있는데 벌금까지는 무리야.”

“다 됐고, 여러분들, 오늘 즐거웠습니다.”

“마스크, 손소독제, 다 아시죠? 집에 가면 손 씻고 발 닦으시고요.”

“건강하게 지내고 다시 봐, 그럼. 알겠지?”

팔을 양껏 펼쳐도 다 껴안지 못할 나무 두 그루 사이에 서서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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