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물색 중이었다, 나의 지친 심신을 위로해 줄 무릉도원이 어디매쯤 있으련지. 매일 마우스를 딸칵대며 구글 어스의 둥그런 지구본을 휘돌리고 뒤집었다.
괌, 그래 너다. 아니, 오키나와, 니가 좋겠다. 눈을 아예 먼 곳으로 돌려서 프랑스로 가볼까. 주어진 날은 짧다, 가까운 곳이 좋겠어.
황량한 겨울의 유럽을 꿈꾸기도 했다가 뜨거운 바람이 부는 남동쪽의 나라로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점찍은 곳은 한 두군데가 아니었지만 어느 한 군데로 손가락을 짚을 수가 없어 대신 이마빡을 짚으며 고뇌를 했다. 그런대로 행복한 고뇌였다고 할 수 있다.
낙찰된 곳은 뜬금없는 곳이었다. 영 레이더 망을 벗어난 데는 아니었지만 치열한 고민의 선상지에 오른 곳도 아니었다.
사실 알고보면 태국은 안성맞춤형 휴양지였다. 몸이 따뜻한 기후와 마음이 뜨끈해지는 물가를 겸비한 모든 조건을 만족스러운 선에서 충족 시켜줄 수 있는 훌륭한 목적지였던 것이다. 깨달음 뒤에는 빠른 실천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고민의 악순환을 끊지 못해 지지부진 의사 결정하는 시간만 길어질 뿐이다.
장소를 물색한 후, 바로 티켓팅을 속행했다. 엄마, 언니, 나까지. 타이 항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34열 D, E, F를 주르륵 클릭하고 장바구니에 살뜰하게 담았다. 시작이 반이구나, 여행은 이렇게 착수 되었다.
여행을 갈 때마다 가장 시큰둥한 부분이자 자신감이 급격히 하락하는 분야는 계획 짜기다. 워낙 계획성이 없는데다 그에 반비례하게 즉흥성이 높아 촘촘한 일정표를 꾸리는 건 내게 큰 도전이었다.
홀몸으로 떠나 나혼자 여행을 즐긴다면 우산 없이 길 가다 쏟아지는 벼락 폭우를 맞는다해도 할 말이 없겠지만 엄마와 언니까지 한 배를 타게 되었으니 나름 구색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도 독단적으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구성원의 의견을 수합하면 좋을 듯 해 날을 정해 엄마랑 까페에서 머리를 맞대고 구상을 했다.
이런 밥집과 저런 관광지를 넣으면 좋겠다, 이 시간에는 이것보다는 저걸 하는 게 좋지 않겠냐, 등등의 생산적인 토론 끝에 대략적인 계획이 완성 되었다.
우리의 계획이랄 것도 없는 계획은 전제가 있었다. 하루를 일단 12시 이후에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부지런하게 게으름을 떨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기타 합당한 이유도 없지는 않았다. 먼저, 우린 도심지에 위치한 수많은 호텔 대신 중심지에서 조금 빗겨나간 수영장이 크게 딸린 리조트를 선택했다.
아침 시간에는 리조트의 부대 시설을 즐기고 한창 놀고 쉰 다음에 거취를 옮기자는 것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하기 그지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별다른 고민없이 오전 스케줄을 몽땅 비워두었다. 후에 돌아봤을 때, 참으로도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었다.
물론, 정작 여행 일정을 짜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큰 기대도, 엄청난 설렘을 안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선지 태국에서 그 이상의 것을 돌려 받았을 때 느꼈던 환희와 기쁨은 아직까지도 두고 두고 간직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가는 비행편은 아침이어서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하면 점심을 지난 시간일거고, 오는 건 밤 비행기여서 인천에 도착하면 아주 이른 아침이 될 터였다. 동남아 비행편은 대부분 밤 비행편이 많았고, 우린 어차피 밤 비행기를 한 번 타야 한다면 오는 비행편인 게 소화하기에 더 수월해보였다.
언니와 난 서울에서, 엄마는 대전에서 공항 버스를 타고 출발해 인천에서 만났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비행을 하는 엄마는 아침 시간임에도 기세가 등등했다.
방콕까지의 비행 시간은 약 6시간 쯤, 난 엄마한테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들이 밀고 다운받은 해바라기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주었다.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울림 가득한 보컬의 목소리와 메아리처럼 퍼지는 통기타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와중에 우리를 태우는 비행기는 동남쪽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