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 교황이 온다고 했다. 그걸 리스본에 와서야 알았는데 구체적인 소식을 접한 뒤로는 왜 여태 몰랐는지가 더 의문일 정도로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는 듯 했다. 이 정도면 하하 버스에 스스로를 가둔 모양새다. 알게된 경로는 다음과 같다. 엘 코르테 잉글레스에 장을 보러 갔는데 평소와는 다른 천막이 쳐져 있는 걸 보았다. 저 천막은 무엇이냐, 야시장이라도 하는 거냐, 물었더니 교황이 와서 그렇다, 라는 간단명료한 대답을 들었다. 그렇다면 교황은 여기 와서 무얼 하느냐, 라고 되물으니 카톨릭교에서 주최하는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카톨릭 세계 청년 대회를 올해 리스본에서 열기 때문이라고 했다. 카톨릭 세계 청년 대회를 검색해 보았다. 보아하니 정말로 큰 스케일의 행사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환영 인사로 시작되는 이 행사는 4일간 진행이 되며 각 일자 별로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다. 교리 교육이나 밤샘 기도, 미사 같은 종교적 행사도 있지만 본 행사는 이러한 주요 행사를 포함해 600개 이상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고, 200여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참여한다고 한다. 짧게 요약하자면 2-3년 주기마다 한 번씩 교황이 전 세계 청년을 한 자리에 초대해 벌이는 축제로 오로지 한 도시나 국가 또는 특정 종교에 한정되지 않는다. 즉, 카톨릭 교리를 따라 편견과 차별을 떠나 오로지 평화와 사랑을 노래하는 자리인 것이다. 2016년 폴란드에서 열렸던 세계 청년 대회에는 3백만명이, 마지막으로 파나마에서는 70만명 가량이 모였다. 마지막이라 함은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기 전인 2019년을 이른다. 그 후로 2년 여간 행사를 주최하지 못하고 있다가 2023년 드디어 리스본에서 다시 재개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영예로운 행사를 직접 볼 수 있다고?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도로 통제, 대중 교통 통제는 구역별로 범위가 지정되었다. 렌트한 집의 중개인도 바다 건너 온 동양인이 아무 것도 모르고 리스본 쉬러 왔다가 오도가도 못할 까봐 걱정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통제 범위인지 알려주는 친절한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교황이 오는 전부터 시내 중심가는 왁자지껄했다. 국기나 깃발을 든 무리를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리스본에서 열리는 행사인만큼 인접한 유럽 국가인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프랑스의 국기가 제일 많이 보였지만 반갑게도 태극기를 꽂은 무리를 지나치기도 했다. 다양한 국가와 지역을 상징하는 깃발을 보니 정말로 전 세계 각지에서 이 행사를 위해 모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집 앞 도로와 중심가로 이어지는 대로변은 이미 바리케이드로 통제되고 있었다. 경찰차가 도로변을 위아래 좌우로 오가며 순찰하고 관광객보다 행사 명찰을 패용하거나 제복을 입은 경찰을 더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본 행사가 시작될 쯤에는 얼마나 많은 인파로 가득찰까 궁금해지게 만드는 아직까지는 텅 빈 거리의 교차로였다.
행사가 열리는 공원과 그 아래로 쭉 이어지는 대로변이 인파로 가득차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행사는 8시부터인데 이미 사람들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적어도 6시 이후에 나가자는 약속을 했다. 바깥 풍경으로 판단하건대 그렇지 않으면 아마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서로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슬슬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창문 밖으로 들리는 인파의 소리도 어마어마했다. 노래를 부르는 소리, 신이 나 환호를 연달아 하는 무리 등 곳곳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여느 리스본의 오후와는 다른 전경에 점점 기대감과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며칠씩 뉴스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유튜브 알고리즘을 도배한 컨텐츠가 현실 세게에서는 어떻게 펼쳐질지, 잠깐 들리는 나같은 사람들의 반응이나 실제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지, 카톨릭 신자가 모여서 일구어내는 진풍경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8시, 아직도 해는 높게 떠있고 낮게 드리워진 햇살은 좁은 거리마저도 밝게 비추었다. 거리에 몰린 인파가 점점 불거지고 있었다. 백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나가는 것을 친구는 선뜻 내켜하지 않았던 반면 나는 먼 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었다. 신비에 휩싸인 교황의 자태가 궁금했다기보다는 카톨릭이라는 종교의 이름 아래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인 사람들이 풍겨낼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어디로, 어떻게 가자는 구체적인 계획 없이 집을 나섰다.
에두아르도 7세 공원에서 본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지만 이미 그 공원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린 공원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공원까지는 일자 대로변으로 곧게 이어졌는데 이미 차량이 통제된 구역이었고, 큰 길목마다 행사를 생중계하는 대형 스크린과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중계되는 장면에 비추어지는 카톨릭 주요 인사의 말씀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거나 경건하게 자세를 고쳐 앉아 진행되는 행사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성스러움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난 이 날 본 장면을 떠올릴 것 같다. 길거리에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고 저마다 기도문을 읊조리는 사람들, 눈을 반짝거리고 귀를 기울여 정성스럽게 말씀을 전해듣는 그들의 자세와 태도, 근심과 걱정이 드리워지지 않은 모두 다른 생김새의 얼굴들, 나부끼는 각양각색의 깃발들.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몇 미터마다 설치된 스피커에서 겹겹이 쌓인 선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모양과 형태가 없는 종교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엎드려 기도하게 하는 종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믿음, 보이지도 만지지도 않는 존재를 온 마음과 정신으로 믿는 것이란 어떤 느낌일까.
에두아르도 7세 공원의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우린 주변부를 서성이며 행사의 마무리를 지켜 보았다. 이 무렵, 해는 점점 기울고 있었다. 붉은 빛으로 건물의 외벽과 유리창을 물들였다. 행사가 파하며 공원에서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어마어마한 인파였다. 옷차림이나 유니폼을 맞추어 입은 참가자들도 있었기에 먼 발치에서 보면 마치 전세계 사람들이 참가한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체육 대회를 참관하는 것 같기도 했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의 얼굴은 밝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생각만 해도 산뜻한 풍경이 저마다의 얼굴에 비추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들의 환한 얼굴이 너무나도 세세하게 잘 보였다. 입가에 걸린 웃음과 휘어지는 눈가, 잘게 접힌 눈주름 사이사이에 한 겹씩 접혀져 있는 기쁨. 하나씩 자세히 들여다보니 믿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희, 따뜻함, 정성, 나눔과 사랑. 이들이 내뿜는 따스한 온도에 내 마음도 함께 따듯해 지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