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포르투갈 05 SUPERSHY!
리스본에 오기 전부터 중독된 노래가 있었다. 뉴진스의 슈퍼 샤이였다. 그 뮤직 비디오에 등장한 도시가 리스본인 것도 알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공원과 길거리의 생김새나 전체적인 도시 경관이 리스본을 품고 있었다. 노래를 들을 때도 이번 뉴진스의 앨범을 반복 재생해 들었다. 슈퍼 샤이부터 ETA나 Cool with you를 끊임 없이 들었는데도 지겹지가 않았다. 아마 어떤 한 곡에 질릴 쯤 다른 곡으로 넘어가 전체 앨범을 들어서 그럴 수도 있다. 아니면 이번 앨범 뿐만 아니라 뉴진스가 구사하는 음악이 특별하게 강렬한 비트나 랩 구간 없이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덕에 같은 곡을 반복 재생해도 질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난 그냥 뉴진스를 좋아하는 리스너인거다. 뭐가 됐든 간에 난 뉴진스 노래를 참 많이도 듣고 있었다. 리스본에 도착해서도 계속 되었다.
어느 하루, 영 몸이 찌뿌둥한 날이었다. 그래서 바깥 바람을 쐬고는 싶은데 그렇다고 무리해서 멀리까지는 나가고 싶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근처에 뭐 없으려나 싶어서 구글 지도를 열어 가까운 공원을 찾았다. 제일 가까이 있는 공원은 걸어서 7분, 하지만 분명 오르막인걸 감안해 적어도 10분은 잡아야겠지,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나설 채비를 했다. 가는 길은 역시 나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어차피 리스본은 오르막 아니면 내리막 둘 중 하나였다. 꽤나 극단적인 경사의 매운맛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묵묵히 걸어 올라갔다. 모습을 드러낸 공원의 크기는 작고 아담했다. 에두아르도 7세 공원처럼 웅장하거나 굴벤키안 공원처럼 녹음이 짙고 푸르지도 않았다. 대신 도시의 전경이 속속들이 보였다. 그만큼 높이 올라왔는지도 몰랐는데 내려다보는 풍경에는 리스본 도심이 다 담겨져 있었다. 아마 내가 지내고 있는 동네가 이미 높은 곳인데 거기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 왔기 때문에 도시의 이모저모가 다 보이는 것이리라 짐작해 보았다. 시원한 바람을 쐬며 동네 소박한 공원도 이렇게 멋질 수 있구나, 역시 사람은 녹색 지대에 살아야 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친구가 그런다.
“너 뉴진스 알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내 핸드폰 플레이리스트 틀면 뉴진스가 나오고 유튜브 알고리즘에도 뉴진스 연습실 영상이 제일 먼저 뜰 정도인데요.
“뉴진스 왜?”
하지만 난 체면을 차리고 담담하게 받아쳤다. 물론 이어지는 대답에 체면은 바로 무너졌지만 말이다.
“여기가 슈퍼 샤이 그거 뮤직 비디오 촬영한 데야.”
예? 뭐라고요? 제가 서 있는 이 곳이 하니, 해린, 다니엘, 민지, 혜인이 격렬하게 에어로빅 춤을 췄던 곳이라고?
“그 에어로빅 같은 춤 췄던데 있잖아. 뒤에 분수 나오고.”
거기까지 들으니 어떤 장면인지 언뜻 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복기. 공원에서 멤버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노래가 흘러 나오는 걸로 시작하고, 장면이 바뀌고 분수대 같은 곳 앞에서 화려한 무늬의 에어로빅 군단이 나와 군무를 추기 시작하는 곳이 정녕 이 곳이란 말인가? 하나둘씩 떠올리니 이 장소가 맞는 것 같았다.
첫 눈에 보면 조금 심심해 보일 수 있는 공원이다. 뮤직비디오에서 연출된 눈부신 화려함과 화사한 반짝거림과도 거리가 멀다. 모든 걸 분홍빛으로 만들어주는 필터를 빼고 난 뒤 민낯의 공원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공원의 빈 분수대나 좁은 길이 나있는 잔디밭은 나름대로의 소담한 멋이 있었다. 뮤직비디오 속 청량한 분수대와 그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물이 빠진 분수대 안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사람과 분수대 담벼락 위에서 햇살을 맞으며 누워있는 사람들은 있다. 공원 잔디밭은 뮤직 비디오 장면처럼 싱그럽고 푸릇하지는 않다. 그래도 그 위에 사람들은 돗자리를 펴고 옹기종기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기타를 연주하며 잔잔한 노을 지는 저녁을 즐긴다. 채도와 밝기를 최대치로 높인 필터를 끼운 리스본보다 자연광을 받으며 빛나는 무보정의 리스본이 아름답다. 높은 지대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공원에서 리스본 구석구석을 살펴 보았다. 본 모습 그대로의 리스본을 맨 눈에 담을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공원이 문 닫는 시간에 맞추어 뒷문으로 빠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