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는 프리 하지 않다

by 글쓰는 PD

웹툰 <미생>에서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컴퓨터와 싸움하는 일을 몇 년씩 밤새가며 하다 보면 정말로 몸이 받쳐주지 않아 괴로울 때가 있다.

마음은 저만치 뛰어나갔는데 몸이 마음만큼 안 따라주어 눈물이 나는 날들.


주변에서 프리랜서면 쉬어가며 일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들을 품곤 하던데,

프리랜서가 일이 들어오는데 안 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2019년, 2020년은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이후, 정말 제대로 프리랜서답게 일을 했던 해였다. 프리랜서의 최대 장점인 투잡, 쓰리잡을 뛰며 돈을 벌었다는 뜻이다. 프리랜서 PD에게 투잡 이상이 가능해지는 건 어느 정도 스케줄이 고정적인 프로그램을 하고 있으면서 연차가 쌓여 내 일정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을 때다.

하지만 사실 방송일은 하나만 해도 힘들다. 그런데도 두 개, 세 개의 일이 가능했던 건 통장에 꽂히는 돈의 앞 자릿수가 팍팍 달라지는 걸 확인하고부터였다. 역시 프리랜서에게는 돈만큼 확실한 보상이 없다.


그러다 작년 연말 교통사고가 났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고, 앉아서 편집하는 시간이 많은 내게 소중하기 그지없는 '목'에 무리가 갔다. 병원에 입원했으나 일을 안 할 수 없었고, 병상에 앉아 퇴원 후 출근하면 바로 해야 할 업무를 체크하기에 여념 없었다. 그리고 퇴원 후에도 목 보호대를 하고서 편집실에 앉아 아침부터 새벽까지 편집을 해야 했다.


난 체력이 좋은 편이었다. 지금도 좋은 편이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에너지란 화수분 같은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진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쉬어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무식하게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컨디션을 조절하며 자기 관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


교통사고 난 목을 부여잡고 8주 간의 투잡을 했던 당시에는 평일에는 본 프로그램을 하고, 주말에는 편집 알바를 하는 스케줄이었다. 금요일에 본 프로그램 시사가 끝나면 수정을 해서 넘긴 후, 두 번째 프로그램 편집을 시작해 일요일까지 밤을 새우는 스케줄이었다. 8주 간은 거의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편집 알바를 하던 프로그램 마지막 회차를 남겨두고 있을 때였다. 본 프로그램 한 회차를 털고, 두 번째 프로그램 편집 수정을 끝낸 어느 날.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의자에서 일어나려는데, 정말 "윽!!!" 하며 다시 주저앉았다. 몸을 의자에 기댔는데 움직이려 애쓸 때마다 목에 전기가 통하듯 자극이 전해져 일어날 수가 없는 거다.


의자에서 일어나 네 평도 안 되는 조그만 편집실을 벗어나기까지 10분은 걸렸던 것 같다. 엄청난 사투 끝에 한발 한발 내디뎌 회사 맞은 편의 정형외과에 갔고, 의사 선생님이 목 뒤를 건드리기만 해도 비명을 질러 신경주사를 맞았다. 주변의 선배 목디스크 환자들에게 들은 바로는 신경주사란 한방 맞으면 씻은 듯 고통이 없어지는 마법의 주사라 들었건만. 왜 내겐 안 통했던 걸까. 그날 밤 결국 통증에 잠들 수조차 없어 응급실에 갔고, 진통제를 맞은 후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아,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구나."


결국 편집 알바를 하던 두 번째 프로그램의 마지막 회차는 내 손으로 끝내지 못했다. 더 무리했다간 몸 어딘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체력에 대한 위기의식을 처음으로 느꼈던 순간이었다.


프리랜서는 일이 있을 때 돈을 벌어둬야 한다. 식량을 비축하듯 말이다. 어느 순간 프로그램이 갑자기 종영될 경우 개편 시기에 맞춰지지 않으면 몇 주간 어쩔 수 없이 놀아야 한다. 정말 운이 좋게도 나는 별로 뜨는 기간 없이 한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이미 그다음 프로그램으로 넘어가도록 이야기가 다 되어있는 상태였고, 서울에서 일한 후 6년 간 공백이라곤 자발적으로 놀았던 한 달 정도가 다였다. 들어오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빡세게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목이 무너진 그날, 그게 작년 초였다.

그리고 그해 6월. 난 9년 간의 프리랜서 생활을 접고 경력 공채로 다른 방송사의 직원이 되었다.


물론 직원도 힘들다. 다른 영역의 스트레스가 있고 더 힘든 부분도 있다, 당연하다. 하지만 일이 없어질까 불안해하며 욕심쟁이 다람쥐처럼 볼에 도토리를 저장하다가 체력이 주저앉는 일은 없어도 되지 않을까.


경력 공채를 쳐보고자 마음먹었던 건 단순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내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서" 였지만 (프리랜서는 '기획' 및 '론칭'을 하기가 힘들다), 어찌 됐든 사람 죽으란 법 없다고 적절한 타이밍에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했다.


이제 겨우 6개월 차지만, 2단계에 접어든 방송 인생은 종전과는 다르지 않을까 기대한다.

경험은 다양할수록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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