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페이스 패딩에서 구찌 백까지

by 초이

난 교복을 입어 본 적이 없다. 내가 다닌 국제 학교에는 교복이 없었다. 아침에 뭘 입을지 고르는 게 귀찮았던 나는 교복이 있었으면 했다. 스스로 다른 친구들과 많이 비교했던 나는 아침에 뭘 입을지 고르는 게 사실 귀찮다 못해 힘들었다. 다 똑같게 보이는 교복이 나한테는 필요했다.


나와는 달리 친구들은 메이커 옷과 신발이 많았다. 그중에 짭이어도 메이커 옷을 입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게 소문이 났는지 짭을 왜 찐처럼 입고 다니냐고 수군대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도 엄마한테 짭이라도 뭐 없냐고 물었었는데 엄마가 짭도 비싸다고 했다. 웃펐다. 특히 메이커 패딩. 내가 고등학생 때 어떤 메이커 패딩을 입느냐, 그중에서도 얼마짜리를 입느냐로 은근히 계급이 나뉘었다. 그때 더 좋은 걸 사달라고 조르는 학생들 때문에 부모님들이 많이 힘드셨을거다. '등골 브레이커'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는 집 언니가 입었던 별로 좋지도 않은 메이커 패딩을 물려받아 입었던 나도 엄마한테 좋은 걸 사달라고 엄청 졸랐던 기억이 난다. 근데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나 때와는 수준이 달라져 100만 원이 넘는 명품 패딩 정도는 입어야 있는 집 축에 낄 수 있나 보다.


물론 시간이 지났으니 나도 이렇게 말하는 거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때는 그런 것들이 그렇게 부러웠나 모르겠다. 패딩은 따뜻하면 그만이고 비싼 건 그냥 메이커 값일 뿐인데.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명품 백을 여러 개 가지고 있던 친구들을 부러워했고 지금도 명품 백의 수가 계속 늘어가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


이번 연초에 상여금이며 연말 정산금이며 여러 가지로 처음 목돈이 좀 생겨서 나도 명품 백을 한 번 사보려고 했다. 사고 싶었던 것들 몇 개를 직접 매장에 방문해 들어도 봤다. 돈이 생기면 꼭 그거 하나는 사리라 벼르고 있었고 돈이 생기면 바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결국 못 샀다. 굶고 사는 것도 아니고 다른데 써야 할 돈도 아니었는데 막상 몇백을 긁으려니 대체 밥을 몇 끼를 먹을 수 있는 돈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저축했다. 그런 것들도 사 본 사람이 사는 거지 쉬운 게 아니었다.


더 넓은 세상에는 노스페이스 패딩, 구찌 백 없이도 잘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내가 없는 거만 쫓으면 그거 하나만 보이기 마련이다. 말처럼 쉽진 않지만 가진 걸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고 싶다. 뭐 언젠간 나도 날 위해 명품 백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벌벌 떨며 살 수도 있고. 그런데 안사고 싶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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