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마음

by 초이

나는 친할머니를 정말 많이 좋아했다. 나는 할머니 옆에 붙어 다니는 껌딱지였다. 할머니는 나와 잘 놀아주셨다. 맛있는 것도 많이 해주셨다. 첫 책가방, 첫 책상, 첫 피아노, 첫 컴퓨터 등등 다 할머니가 사주셨다. 다섯 살 때였나, 첫 파마도 할머니가 미용실에 데려가서 해주셨다. 덕분에 평생 악성 곱슬로 살아가고 있지만 다 좋다. 난 할머니 옆에서 할머니랑 자는 걸 좋아했다. 할머니 냄새며 온기며... 내가 기억하고 사는 게 별로 없는데 그거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사진을 보면 그때로 돌아간 것 같다. 할머니랑 나는 생긴 것도 닮았다. 우리는 웃을 때 잇몸이 보인다. 나중에 생각해 봤는데 우리가 인중이 조금 짧아서 그런 거 같다. 사실 할머니는 호랑이처럼 아주 무섭게 변할 때도 있었다. 혼날 때는 아주 눈물을 쏙 빼야 했다. 아빠가 멀리 계셔서 할머니가 잘못된 건 바로잡아주시고 싶으셨던 거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땐 고집이 더 셌다.


주변에 항상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사셨던 할머니는 나에게 사랑을 알려주셨다. 할머니는 손이 크셔서 항상 음식을 아주 많이 하시고는 주변에 가져다 주셨다. 교회 권사님이셨는데 할머니는 한 분 한 분 잘 챙기셨다. 그렇게 나누시고 베푸실 때 행복해 보이셨다. 그런데 하늘은 천사 같은 할머니를 무심히도 빨리 데려가셨다. 간단한 수술을 하러 수술대에 오르셨다가 의료사고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사실 그날, 나는 꿈을 꿨었다. 흰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랑 내가 손을 잡고 넓은 초원을 즐겁게 달리고 있었는데 흰색 문이 보였다. 할머니가 문을 여시더니 내 손을 놓고 혼자 들어가셨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친할아버지는 군인이셨다. 엄청 가부장적이셨다. 상이 다 차려지면 앉으시고 다 드신 후에는 상을 치우는 가족을 뒤로하고 다시 티비 앞으로 가셨다. 청소하시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집안일은 늘 할머니 몫이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으셨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몇 달 안 돼 재혼을 하셨다. 그래도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미웠다. 새 할머니도 정말 미웠다. 할아버지는 새 할머니께 엄청 다정하셨다. 할머니 살아 계실 때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두 분 다 더 미웠다. 내가 어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12년 후, 내가 홍콩에 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미움은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알바해서 번 돈으로 선물 한 번 사드리지 못했는데. 밥도 딱 한 번밖에 사드리지 못했는데. 그것마저도 잘 드시지 못할 때였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후회했다. 좋았던 기억만 생각났다. 보고 싶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유산으로 잘 사실 줄 알았던 새 할머니가 할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몇 달 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충격 그 자체였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거, 물론 대부분 이유 없이 미워하진 않지만 그 이유조차 어떻게 생각해 보면 내 입장에서 내가 만들어 낸 거라는 거. 다 각자의 사정이 있을 거라는 거. 난 그 이후로 누구를 함부로 미워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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