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봤는데 보고 싶고, 어제 봤는데 보고 싶고, 아까 봤는데 보고 싶고, 이러면 무언가 잘못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오빠가 편하고 오빠에게서 안정감을 느끼는데 그 편함과 안정감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아직도 설레고 두근거릴 때가 있다는 거 이런 거 또한 무언가 잘못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질투는 아예 없었는데 생겼고 어느 정도의 의심과 집착도 생긴 것 같다. 왜 그럴까. 그렇다고 오빠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게 아니다. 전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다. 한결같다 못해 점점 더 잘해주니까.
사실 어느 정도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 받는 게 힘들다. 보고 싶어 하는 마음도, 편함도, 안정감도, 설렘도, 두근거림도, 질투도, 그 모든 커지는 마음들이 불편했던 것 같다. 무서웠다. 부모님조차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고 버려졌다고 느꼈던 때가 있어서 그 누구도 언제나 나를 떠날 수 있다고 그냥 몸에 그렇게 입력된 것 같다.
그게 어느 정도의 의심과 집착으로 이어진 건 무서움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몸에 입력된 내 나름의 방어기재였던 것 같다. 진짜 의심하는 것도 아니었고 구속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내가 그렇게 했을 때 떠나는지, 아니 어쩌면 떠날 때까지 그렇게 아니면 더 하려고 들었을 것이다. 보통 그런 행동들에 질려 하니까. 안다. 얼마나 치졸하고 볼품없는 짓인지. 얼마나 예의 없는 짓인지. 한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에게 마저도 그랬다는 게 속상하다.
오빠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왜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러는지. 한 번도 누군가한테 이런 이야기까지 해본 적은 없지만 오빠에게만큼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오빠는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도 알고 있지만 연애를 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그게 지금의 나라면, 아팠던 게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몸에 입력된 모든 것들도 차차 잊혀 갈 거라고. 무한한 사랑을 받다 보면 사랑이 무서워지지 않을 때가 분명 올 거라고. 그리고 오빠는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줄 거고, 우리에게는 끝이 없을 거라고. 오빠는 사랑하면 그냥 사랑하면 되는 거라고 했다. ‘혹시나, 혹시나 모르잖아’라며 끝까지 비관적으로 말하는 나에게도 ‘아니, 나는 알아. ’혹시나‘는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 단호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미안해졌다. 나라고 확신이 없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내가 ‘혹시나, 혹시나’하며 그렇게 하는 게 싫었으니까.
그 대화 이후,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 사랑하면 그냥 사랑하면 되는 거라니.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나한테는 아니었다. 그런데 무서워서 그렇게 계속 어느 선에서 도망칠 거면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지. 오빠에게서만큼은 도망치고 싶지 않다. 사랑하고 싶다. 그게 연애든 결혼이든 오빠랑은 다 같이 하고 싶다. 끊임없는 믿음과 확신을 주는 오빠라면 내가 용기를 내봐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