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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Jan 19. 2024

꼬르륵, 간헐적 단식을 하는 마음

현재 나는 저녁밥을 먹지 않아 몸이 가한 공복상태다.   먹지 않고 어떻게 버티냐고 묻겠지.

글쎄, 솔직히 말해서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배부르게 먹었을 때야말로 거추장한 느낌이 들정도다.

간헐적 단식을 해본 사람은 이 기분을 알 테다. 배가 고프지만 어지간해서는 참을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오래전부터 간헐적 단식에 대해 관심은 있었지만 는 걸 좋아하는 나는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사람으로 태어나 는 것을 포기하는 일처럼 가혹한 건 없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먹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 아니었나. 특히 나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밀가루로 만든 걸 좋아한다. 빵이나 라면, 자장면, 밀떡볶이 등 밀가루가 부리는 맛있는 마법에 빠져들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중 빵은 밥을 배부르게 먹고서도 종종 디저트로 먹는데,  빵이 주는  짜릿한 포만감 단연 최고봉이다.


작년 8월, 그날의 묘한 느낌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침 겸 점심을  평소보다 은 시간에 먹다. 꺼억 트림소리가 날 정도로 밥을 배부르게 먹어서인지 저녁밥을 거르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위해 이른 기상을 했다.   평소 같으면 피곤해서 일어나는 게 힘든데, 이상하리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눈이 떠졌다. 늘 퉁퉁 부은 동태눈에 공갈빵처럼 생긴 가면을 쓰고 출근했는데, 이게 웬일, 출근준비를 하며 거울을 보는데  붓기가 사라진 바람 빠진 납작한 호떡 같았다. 회사 지인은 나를 보며 오늘따라 혈색이 좋아 보인다 말했다. 그 누구보다 놀란 건 자신이었다. 몸은  그 어떤 날보다 가벼웠고  지인말처럼 피부는 생기가 돌았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간헐적 단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이어리에 빨간 색연필로 '간헐적 단식 1일 차'라고 기록했다. 그날부터 하루 지켜야 할 루틴에 간헐적 단식이 포함되었다. 독서나 운동은 하지 못하는 날이 있어도 간헐적 단식은 빼곡히 지켜나갔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퇴근 후 가족들 저녁밥을 해줄 때면 프라이팬에  톡 깨 놓은 계란 프라이 냄새가 어찌나 군침이 돌던지. 기름냄새가 콧속에 스멀스멀 퍼질 때마다 고이는 침을 꿀꺽 삼다. 물을 한 컵, 두 컵 마시다 보니 물 배로 가득 물먹 하마가 되었다.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누울 때면 배고이 정점에 다다른다. 꼬르륵, 꼬르륵, 뱃속 장기들은 배가 고프다며 요동을 쳤다.


아침은 간헐적 단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다. 전기밥솥 안에 있는 밥 한 그릇 떠서 어제 남겨놓은 반찬을 꺼내 아침밥을 먹는다. 이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단식을 하기 전에는 아침밥을 먹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밥만 먹으면 배가 아파서 화장실로 줄행랑이었다. 피곤해서 입맛도 없었다. 이제는 그럴 염려가 없다. 아침밥은 꿀을 바른 것처럼 달콤했고, 술술 넘어갔다. 나는 지금도 아침밥을 꼬박 챙겨 먹는다. 저녁 메뉴가 스파게티였다면 아침 메뉴도 스파게티다.  또는 전날 메뉴가 계란말이나 멸치볶음이었다면 먹을 양만큼 남긴다.


간헐적 단식을 하며 무엇보다 저녁시간 우리 집 풍경이  달라졌다. 가족 건강을 생각한 요리를 하며, 음식에 정성을 들이려고 노력한다. 평소 귀찮다며 그냥 둘둘 말던 계란말이를  파와 당근을 송송 썰어서 요리했다. 삼겹살을 굽는 날에는 상추와 버섯등 다양한 야채를 준비해서 담백 강된장을 만들었다. 맛있게 만든 요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을 때 아이들의 감탄가 쏟아지면 그렇게 흐뭇했다.

어떻게 요리를 하며 먹는 걸 참을 수 있는지는 나조차 모르겠다. 그냥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먹지 않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성립된 같다. 아니, 그것보다는 밥을 먹고 싶은 자신과 타협했다고 생각한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저녁시간 대신  가볍고 상쾌한 아침과 맞바꾼 셈이다. 아침밥을 먹고 출근할 때면 속이 든든해서 발걸음이 씩씩해진다.


나는 간헐적 단식을 통해 몸무게를 5kg가량 감소했고, 피부 알레르기까지 완치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몸무게를 염두하고 단식을 한 건 아니었다. 몸과 마음이 가뿐했던 그날 아침 기분이 좋아서, 단지 기억을 되살리고 싶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단식을 통해 얻은 것 중 하나는 '흔들리지 않는 다짐'이었다. 해야겠다고 다짐한 일은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게 되었다. 먹는 것도 참았는데, 이까짓쯤이야. 나를 무엇이든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우연일까. 이번 공동 매거진에 <~ 하는 마음>으로 글벗들과 함께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걱정하듯 말한다.

"아직도 저녁에 밥을 먹니?"

 "물론이지!"

나는 잠깐의 배고픔을 참았을 때 오는 기쁨이 무엇인지 안다. 배고픔을 통해 이른 아침이  주는 짜릿한 기분과 한 가지 반찬이라도 진수성찬 부럽지 않은 기분을 만끽한다. 때때로 우리는 작고 소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잊고 살 때가 다. 나는 소소한 것들이 삶을 지탱해 주는 원천이라는 것을 간헐적 단식을 통해 배우고 있다.


그나저나 글을 쓰며 에너지를 소비했더니 이제 슬슬 배가 고프다. 뱃속에서 울려 퍼지는 꼬르륵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아침이 기다려진다.



새해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잠깐 멈추어 세워 나의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의미 없이 지나친 순간도 그러모으면 하루를 사는 비타민이 한 줌이 될 거라 믿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 쓰는 작가 여섯이 꾸려가는 공동매거진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구독하고 당신의 일상에도 영양을 듬뿍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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