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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데이터를 통해 직관하는 신경과학

- 언어 연구의 새지평: 신경언어학

by 콜랑

일단 요번에 현대중공업 그리고 뭐 삼성중공업 이런 데에는 다른 업체들한테 있지 않았던 리스크 중에 러시아 문제가 터졌고, 저희가 그거와 관련된 물량을 지금 건조를 실제로 하고 있거든요. 그거와 관련된 손실을 이례적으로 떨어냈던 그런 부분들이 있는 업체와 안 있는 업체가 조끔 실적이 차이가 났다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 출처: 유튜브 동영상 3분 19초 이후



서로 대비되는 두 대상에 대해 언급할 때 부정의 양상에서 나타나는 실수의 한 유형인데, 이런 식의 실수는 종종 들을 때가 있다. 글쓰기 수업 시간이라면 무조건 비문이니까 고쳐야 하는 문장인데 실제의 발화에서는 간혹 나타나는 유형인 것 같은데, 우리는 이런 유형의 실수를 간혹 저지른다.


문법적으로는 비문법적인데 실제로는 이런 문장을 발화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언어학자들이 밝히고자 하는 문법이란 적어도 이런 유의 실수를 생산하는 언어 능력은 아닌 듯하다. 구조주의, 기술문법을 추구하는 언어학자들은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화자들 모두가 자연스러운 문장이라고 간주하는 문장들만을 대상으로 문법을 기술한다. 이런 관점에서 탈피해서 인간의 언어능력 규명을 언어학의 연구 목표라고 주장했던 촘스키도 성인의 언어를 완전한 것으로 가정하고 올바른 문장, 완전한 문장만을 대상으로 연구한다. 위 인용문과 같은 발화 실수는 연구 대상이 아닌 셈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인간은 위와 같은 문장을 심심찮게 만들어 낸다. '발화 실수'라고 규정해 버리면 쓰레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실수도 문법적이라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있는 없체와 없는 없체'가 가장 자연스러운 문장임에는 틀림없지만 머리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이를 문장으로 생성하는 인간의 언어 능력은 문법 규칙을 완벽하게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문법 능력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예컨대 만약 내가 위 동영상의 내용을 이해하고 비슷한 설명을 한다고 가정해 보면 인용문의 붉은 밑줄 표시한 부분은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1) 있는 없체와 아닌 업체가

2) 있는 없체와 없는 업체가

3) 있는 업체와 그렇지 않은 업체가

4) 있는 업체와 있지 않{은/는} 업체가

5) 있는 업체와 안 있는 업체가


1)~3)은 자연스럽고 4)는 조금 어색하다. 위 인용문은 5)다. 다양한 표현 가능성을 1)~5)까지 나열해 놓고 보면 5)는 '안 부정'와 '있다'를 이용하여 표현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어색한 표현이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앞에서 계속 어휘 '있다'를 사용하다 보니 머리 속에 '있-'이 강하게 활성화되어 있는데 여기에 부정 표현을 사용하려고 '아니'라는 어휘가 활성화되면서(머리 속에 떠오르면서) 순간적으로 '없다'를 재빠르게 인출하는 데(떠올리는 데) 실패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이미 '안'이라고 발화한 시점에서는 '없다'를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앞에서 사용하던 '있다'를 다시 사용했고, 그 결과 어색한 부정 표현인 '안 있는'을 말해 버린 것이다. 머리 속에서 1)과 2)의 선택지가 모두 떠오른 상황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 무언가 계산이 꼬여버린 것.


이런 과정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방법은 없다. 현재의 신경과학 수준으로는 이런 변화를 측정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의 인지과학은 이런 가정을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인지 기능에 대한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 있다(일일이 다 들면서 글을 쓰려면 논문을 써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머리 속에 버퍼가 있는데 그 버퍼가 사용 가능한 여러 표현 방책 중 하나를 선택하여 처리하는(컴퓨터라면 '계산'이겠지)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를 위 인용문이 발생한 원인으로 볼 수는 없을까?


만약 그렇다면 '언어 능력'과 '문법'은 별개인(적어도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은) 기제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소쉬르의 문법 연구('랑그(언어)' 연구)와 촘스키의 문법 연구('언어 능력' 연구)만으로는 언어 연구의 대상 중 알려지지 않은 어떤 부분을 다루지 못하는 건 아닐까? 언어 연구의 새 지평을 언어학과 신경과학의 접점에서 발견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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