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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화 실수를 통해 엿보기

언어 능력

by 콜랑

국립국어원에서는 '온라인가나다'라고 하는 어문 규정 관련 질문 답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의 게시판 내용을 보다 보면 '-어 하다'와 관련된 질문을 종종 보게 되는데 대체로 띄어쓰기와 관련된 문의가 많이 보인다. 그런데 간혹 '왜 이런 때는 쓸 수 있는데 저런 때는 못 쓰나요?'와 같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궁긍해하는 질문도 보게 된다. (앞 문장에서 '궁금해하는'은 적절한 용법일까?) <온라인가나다>에 올라온 질문을 하나 보자(원문 링크)

출처: 온라인가나다




질문자는 '걱정하다'를 형용사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국립국어원의 답변(원문 참조)을 보면 '-어 하-'가 동사와 결합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제약이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잘못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 재치있게 잘 답변한 것 같은데, 아무튼 핵심은 '-어 하-'는 동사에 결합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어 하-'는 동사와 결합하지 못한다는 풀이는 '-어 하-'의 쓰임과 관련된 현상적인 특징을 기술한 것이지 '-어 하-'의 본질적인 의미나 속성을 밝힌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언어학자의 설명이 현상적인 특징을 기술하는 것이라면 뭐랄까 조금 심심해 보이지 않을까? 보다 본질적인 어떤 설명이 가능하면 더 있어보이지 않을까?


그러다 이런 글을 접했다(출처: '고코더'님의 글).


붉은 밑줄 표시를 보자. 이 문장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맥락을 보면 원래의 표현 의도는 '돌고래 데이터베이스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느낍니다'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반복적인 느낌을 받다' 내지는 '느낌을 받아왔다' 정도의 뜻을 표현하려던 것인데 앞 표현이 '~는 것처럼'이다 보니 '느낌을 받다'라고 하기는 어렵고 다른 표현을 선뜻 떠올리지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표현 전략을 모색한 결과 '느끼다'에 '-어 하다'를 결합시킨 것으로 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비문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 하-'라는 문법적 구성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내면의 감정'을 드러낼 때 사용하는 표현일 가능성을 암시하는 건 아닐까?? 찰나의 감정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시간의 흐름을 전제로 하는 내면의 감정을 표현할 때 '-어 하-'를 쓸 수 있다는 게 핵심이 아닐까 싶다. 시간의 흐름을 전제하니 시간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는 감정 표현(형용사)를 동사로 바꿔줄 수도 있을 게다. '좋다 -> 좋아하다', '귀엽다 -> 귀여워하다' 등을 보면 꿰나 설명력이 있을 법하다.


<온라인가나다>의 해설처럼 '걱정하다, 애쓰다'는 동사이다. 감정이 관련된 표현이긴 하지만 동사다. 찰나의 느낌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서 동사성이 강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느끼다'는 시간의 흐름과 관련되는 경우도 있고 찰나의 감정만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활용 양상을 보면 (진행형이 가능한) 동사이지만 찰나의 느낌을 나타내는 의미론적 성질은 형용사적인 면이 다분하다. 그러니 '느껴하다'와 같은 표현도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발화실수이긴 하지만, 관점을 조금 달리하면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문법 현상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볼 점을 암시하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의 두뇌는 문법적 계산보다 먼저 의미론적 계산을 한 후에 필요한 어휘와 문법적 표현들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선조적(線條的)인 언어 표상 작업을 수행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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