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 실수를 통해 엿보기
가끔 말을 하다 보면 말이 꼬일 때가 있다. 예를 들면, '해바라기'를 '해라바기'라고 말하는 식으로 자음과 모음의 위치가 바뀌는 실수. 이런 말 실수는 말을 할 때 인간의 두뇌 속에서 어떤 과정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모종의 암시를 던져 준다. 머리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개념적으로는 다 정리되어 있어도 이를 소리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혀나 입술 등의 발성 기관을 제어하는 인지 처리가 말할 내용을 정리하는 개념적 인지 처리와 거의 실시간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생각해 보면 이런 실수가 말로만 나타나지는 않을 것 같다. 요즘처럼 문자를 입력하는 속도가 빨라진 문명의 이기들을 이용하면 타이핑 중에도 비슷한 실수가 발생한다. 실제로 한글 타자 연습을 해 보면 그런 실수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해 본 사람은 모두 동감할 것이다.
그런 실수를 미디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있어서 별것 아니지만 재미가 있어서 포스팅 해 둔다.
이런 미디어를 생산하는 과정은 머리 속에서 말할 내용을 정리해 가면서 동시에 글을 쓰는 과정이다. 그런 처리 중에 '러시아'를 '서리아'로 잘못 입력한 것을 볼 수 있다. 한글 입력 속도가 분당 500타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러시아'를 입력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 그런 짧은 순간에 우리의 손가락은 아마도 작업기억에서 처리한 결과에 따라서 자판을 두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운동 영역에서 처리를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작업 기억 영역에서 잘못된 처리 과정을 계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모음의 위치는 바뀌지 않면서도 자음의 위치만 바뀌는 실수를 한 것이다. '해바라기'를 '해라바기'라고 한 경우는 모음의 순서가 바뀐 것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지만 '러시아'와 '서리아'는 자음의 위치만 바뀐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그렇지 발화 실수에는 음절이 바뀌는 경우, 자음이나 모음의 위치만 바뀌는 경우 등 다양하다. (그런 실수의 유형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닌데 이 글 대문 이미지에서 보듯 대체로 유형을 정리하는 것들이다.)
언어를 처리하는 인지 과정을 상상해 보면 어떤 생각을 만들어 내면서, 거의 동시에 이 개념을 말(문장)로 표현하는 처리가 일어날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의 머리 속에서 이런 과정이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생성문법과 같은 복잡한 처리는 인지 처리에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촘스키의 생성 문법 이론에 의심을 품게 되는 이유인지도... 발화 실수까지도 자연스러운 인지 현상임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 모델은 어디 없을까??
본다고 보이는 게 아니고 관심이 있어야 보인다고 했던가. 비슷한 사례가 눈에 띄어서 한나 더 마름해 둔다.(원문 기사)
'배슬기'를 '배슥리'로 타이핑 실수한 예인데, 자모의 연쇄에서 개입하는 모음이 없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