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태부, 통사부, 문법부와 신경 기제에 대한 암시
재생구간 12초, "당장 처 안 일어나?"
한국어 문법에서 '처'는 흔히 접두사라고 다뤄지고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단독으로 하이픈('-')을 사용하여 '처-'라고 표기한다. '처-'를 접두사로 설명(규정)한다는 건 형태론적 문법 요소로 간주한다는 거다. '처먹다, 처바르다, 처넣다, 처담다' 등등이 흔히 드는 예이다.
그런데 위 클립 영상을 보면 그렇지 않은 예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처일어나다'라는 단일 동사가 있을까? '처지랄이다'와 같은 표현을 왕왕 접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처 지랄이다'인지 '처지랄이다'인지를 생각하는 나는 문법변태인가... 아무튼 이런 경우들의 '처'는 '처-'가 아닌 것 같다. 소리로는 동일한 '처'인데 문법적으로는 다른 것 같은 느낌(직관)이 든다.
사전에서는 접두사 '처-'와 강조의 부사 '처' 두 가지로 나누어 실으면 그만인데 이론적으로는 이런 현상들이 형태론과 통사론의 경계를 흐리는 현상이기 때문에 흥미로울 수 있다. 시중의 한국어 문법서를 보면 '형태통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최근에는 거의 다 그런 것 같음) 이들 문법서에서 초점을 맞추는 문법 요소는 주로 조사와 어미다. 특히 통사론에서 조사와 어미를 계층 구조(나무 구조)의 핵 성분으로 간주하여 통사론의 기본 단위인 것으로 당연시한다.
그런데 한국어 문법에 형태통사적 요소가 존재한다면 그런 요소가 굳이 조사와 어미에만 국한되라는 법이 있을까? 임시어, 잠재어 등등 형태론 논의에서는 여러 가지 개념을 사용하지만 사실 인간의 머리 속에서는 이런 구분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두뇌에서 음성(음향) 신호를 처리하는 신경 회로에서도 '처'는 '처'지 '처'와 '처-'가 구별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처'라는 신경 단위가 활성화될 때 동시에 활성화되는 문법적 패턴 처리와 의미 영역의 신경 단위들이 복합적으로 활성화되는 양상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의 신경과학 기술로는 이런 초미세 단위의 신경 활성화를 관찰할 수가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위 클립 영상에 보이는 것과 유사한 현상들과 기존에 접두사로 처리하던 현상들이 동시에 처리될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처리가 과연 형태부 혹은 통사부라는 독자적인 신경 구조(단위 혹은 망)에서 처리될까 아니면 그런 구별은 없고 패턴 처리 신경 기제가 언어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문법부로 통일)일 뿐일까?
난 왠지 후자에 한 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