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지언어학 이론은 통사부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지 않을까?
사족.
이번에는 사족부터. 혹시나 싶어서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봤더니 번역이 어째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이는 차치하고라도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인공지능도 아래 본문의 (1)과 (2)를 보면 헷갈리는 모양이다.
요즘은 언어를 배울 때 문장 구조를 분석하는 연습을 어느 정도나 하는지 잘 모르겠다. 독해의 기본은 문장 구조 분석이라고 생각하면서 문장 독해를 영어 공부의 거의 전부인 양 생각하며 영어를 배우던 시절과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문장 구조 분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언어를 배우는 일은 없지 않을까?
좋은 문장, 훌륭한 문장은 적어도 구조 해석이 까다롭지 않은 문장이어야 한다. 그게 다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조건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래 문장의 해석은 구조적인 문제와는 무관해 보인다.
(1) 그렇게 되면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워진다.
그런데 한국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문법적 표현 전략은 보다 다양할 수 있어서 (2)와 같이 말할 수도 있다.
(2) 그렇게 되면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혼란스러워진다.
(1)이나 (2)를 보고 의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어 화자는 거의 없을 것 같다.
한국어 수업 시간에 이런 문장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외국인에게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는 설명 외에 어떤 설명을 더 할 수 있을까?
구조주의 문법에서는 이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모두 자연스러운 문장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생성문법에서는 기저문에 있던 공통 주어가 핵이동을 한다거나 공통 성분인 '-어 지-'가 핵이동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여러 방법을 강구하면서 하나의 의미가 둘 이상의 전략을 통해 표현될 수 있다는 식으로 보다 심오한 과정에 대한 설명을 시도해 볼 수 있다.
(a) 그러면 [세상이]i [[ (i) 어지럽]고 [ (i) 혼란스럽]] [어 지]] ㄴ다.
(b) 그러면 [ [세상이 [[어지럽 (j) ]고 [혼란스럽 (j)]] ] [어 지]j ] ㄴ다.
물론, 두 분석 중 어느 분석이 옳은 것인가 하는 논쟁은 쉽게 해결될 리가 없다. 이 외에도 여러 요소들이 관련된 더 많은 분석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설명들은 어차피 머리 속을 뜯어보고 검증할 방법은 없기 때문에 무엇이 정확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하물며 이 단락의 이야기를 한국어 학습자에게 늘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어를 배울 때 어느 누구도 (1)과 (2)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1)==(2)'를 이해하며 (1)이나 (2) 중 어느 한 방식으로 말한다. 머리 속에서 (1)을 선택할지 (2)를 선택할지 잠시 고민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금새 (1)이든 (2)든 별 문제될 것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둘 중 하나를 말한다. 꼭 (1), (2)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말을 하다 보면 비슷한 찰나의 고민에 빠질 때가 있고 때로는 종종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어라? 잠시만...
머리 속에서 잠시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고? 머리 속 어딘가에서는 두 가지 후보를 두고 판단하는 찰나의 과정이 있다는 말이네?! 그건 문법적 처리 중에 아주 미세한 버퍼링이 생겼다는 말 아닌가? 이런 버퍼링은 통사적 처리의 버퍼링이니까 머리 속에 분명히 통사적 처리를 담당하는 인지/시경 기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통사적 처리를 위한 별도의 기제가 없다고 전제하는 기존의 인지 언어학 이론들에는 재고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