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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Nov 04. 2024

흐트러져도 괜찮은 사이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잘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땐 그걸 준비하는 기간엔 되도록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최근 내가 참여하고 있는 온라인 모임에서 사주 강의를 하였다. 준비 기간 동안 가족을 제외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동시에 브런치북을 연재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누가 등 떠밀어 시킨 일은 아니지만 스스로 달력에 언제까지 올리겠다고 마감 기한을 잡아뒀으니 성실하게, 그리고 잘 이행하고 싶었다. 


애초에 인간관계도 넓지 않다. 좁고 깊은 관계를 지향하여 만나는 사람들도 딱 정해져 있다. 분기, 두 달,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10월은 예외로 건너뛰었다. 그들을 만나는 일이 방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지금 준비하는 일에 에너지를 다하고 싶었다.  


며칠 전 강의를 무사히 마쳤고, 덩달아 브런치북 연재도 끝이 났다. 이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져 에너지를 보충하며 지내려고 했는데, 사주 강의 여파가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상담 예약이 급격하게 늘었다. 보통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하루에 상담 건수를 정해 놓고 하는 편인데 지난주는 예약이 밀려 일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더니 정말로 방전이 되어 버렸다.




주말에 남편이랑 침대에 드러누워 TV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오후 4시쯤 단톡방이 울렸는데 남편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남편과의 세월이 비례함에 따라 그 친구들과 우정의 시간도 비례하였다. 워낙 거리낌 없이 지내고 있어 지금은 내 친구들이라고 해도 무방한 사이. 2년 전 남편의 고향으로 이사 온 것도 그 친구들이 터줏대감처럼 살고 있어 나는 처음 정착한 곳임에도 적응을 잘하였다. 가까운 동네 친구들이 내게도 생긴 셈이다.  


그날만큼은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단톡방에서 뭐 하고 있냐는 말에 갑자기 없던 힘이 솟아나 그들이 보고 싶어졌다. 우리는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2시간 뒤 동네 소고기 집에서 만났다. 안 본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오래된 것 같다는 그들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근황 토크가 이어진 다음 별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문득 참,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 사이에 선은 당연히 지켜야 하지만 조금은 흐트러져도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는 이들이라 그저 편안하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미묘하게 작용하는 신경을 예민하게 느끼고 내 행동이 어떻게 보일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라 나이 들수록 편안한 관계를 선호하는 것 같다. 이 친구들은 가끔 시답지 않은 농담을 너무 해서 신경질 날 때도 있는데(정말 화가 날 때도 있다) 그 소리를 너무 오랫동안 듣지 않으면 이상하게 듣고 싶어지기도 한다. 오랜만에 그들과 함께 하며 이렇게 마음 편히 가깝게 지내는 이들이 있어 감사했고 소중하였다. 그리고 왠지 변할 것 같지 않다.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계속 이렇게 볼 것 같은 느낌. 촉이 좋은 나는 미래 그들과 바보 같이 웃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휴일을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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