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아주 어릴 적 기억이다.
몇십 년도 더 된 기억인데. 아직도 그 느낌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 보면 꼬마였던 내게 큰 충격적인 사건이었나 보다.
나도 어느 여자아이와 다름없이 치장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엄마의 화장대를 유심히 살폈고, 엄마가 화장을 할 때는 꼭 옆에서 구경을 했다.
우리 엄마는 모든 화장품을 항상 코부터 시작해서, 이마, 볼, 턱 순으로 올려놓고 얇게 펴 발랐다.
그래서 나도 지금까지 화장을 할 때는 모든 화장품을 코부터 바른다.
그 방법이 옳은지 그른지 확인해 본 적도 없다.
엄마는 화장을 곱게 하고 맨 마지막에 붉은색 림스틱을 바르셨는데, 때로는 손가락 끝에 립스틱을 조금 남겨서 연지처럼 볼에 살짝 문질러 얼굴색을 화사하게 만들기도 했다.
요즘이야 각종 색조 화장품이 발달되어 굳이 그렇게 볼터치를 대신할 이유는 없겠지만, 그때 엄마는 그렇게 화장을 마무리하시곤 했다.
그리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시려고 하셨는지 화장대 위엔 매니큐어 몇 병이 있었다.
하지만 난 엄마가 매니큐어 바른 것을 본 기억은 없다.
아마도 가정주부로 살림하느라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어서 그랬는지 매니큐어는 그냥 그대로 늘 화장대 위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눈에 작은 매니큐어 병이 들어왔다.
예쁜 색깔의 물감 같은 것이 들어 있는 매니큐어 병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고. 엄마가 부엌에서 바쁜 어느 날 난 그 매니큐어병을 열어 보기로 결정했다.
생각보다 단단히 닫혀 있던 매니큐어 병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어 보겠다고 뚜껑을 돌리다가.
열리라는 뚜껑은 안 열리고 매니큐어병만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매니큐어 병이 와장창 깨졌다.
다행히 병이 크지 않아 소리가 크게 나지 않았지만 매니큐어병은 깨졌고 매니큐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허겁지겁 휴지를 찾아 매니큐어병을 감싸 휴지통에 버렸고, 창문도 활짝 열어 매니큐어 냄새가 빠져나가길 기다렸다.
그때처럼 매니큐어 냄새가 진하게 느껴진 적도 없었고, 시간이 더디게 흐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난 냄새가 거의 다 빠졌을 무렵 방에서 나왔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식구들과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날따라 집안일로 바빴던 엄마는 내가 그냥 방에서 조용히 혼자 잘 논다고 생각했는지, 날 따로 찾지도 않았어서 그날의 매니큐어 사건은 나만 아는 일이 되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엄마는 매니큐어를 갖고만 있었지 바르지는 않았어서 매니큐어 한 병이 사라진 것도 모르시는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나였다.
매니큐어를 깨뜨리는 순간부터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불안한 마음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엄마가 화를 내실지 어쩌실지는 모르겠으나,
내 마음은 지옥 같았다.
어린 나이에 지옥이 뭔지 모를 시기였으나, 지금 생각해도 그 시간은 지옥에 있는 시간 같았다.
밤에 잠을 설치고, 엄마에게 말을 할까 하다가 엄마가 모르시는 것 같아서 하루를 더 버텼다.
콩닥콩닥
콩닥콩닥
하루 종일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더는 못 버틸 것 같아.
매니큐어를 깨뜨린 다음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난 엄마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 엄마, 내가 엄마 매니큐어병을 깨뜨렸어요"
엄마는 좀 놀라는 듯했다.
일단 병이 깨졌다고 하니 내가 손이라도 다쳤나 살피셨고, 도대체 언제 일어난 사건인가 궁금해하셨던 것 같다.
난 어제 오전에 일어난 일이고, 깨진 병은 내가 휴지통에 버렸으며, 다친 곳은 없다고 손을 펴 보이며 엄마에게 다 말씀드렸다.
엄마는 "괜찮아, 안 다쳤으면 되었어. 잘 바르지도 않는 매니큐어 한병 정도 없어도 돼" 하시며 나를 안아주셨다.
마치 내가 그 일로 마음 고생한 것을 안다는 듯이.....
지금도 난 네일 아트를 받으러 가는 날이면 그때의 그 사건이 기억이 난다.
콩닥콩닥.
콩닥콩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