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정해진 각본
코코아의 달달한 향기는 기분 좋았다.
피규어 아저씨는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 대하듯 친절했고. 나는 친절한 대화에 집중했다.
“학창 시절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단다.
사회에서는 회사와 승진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어.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만 왔는데, 정신 차려 보니 50을 바라보고 있었지.”
아저씨는 씁쓸하게 웃었지만 눈은 슬퍼 보였다.
그의 삶은 대학입시, 취업, 결혼, 육아, 승진··· 바쁘게 달려온 여정이었다.
“ 대기업에 다니는 나는 겉으론 남부러울 것 없어 보였어. 운 좋게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그 생활은 마치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같았어.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하루였지. 나는 누군가가 만들어둔 보장된 성공매뉴얼을 따라 하며 살았단다. ”
“매뉴얼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비슷한 환경의 배우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 명문대를 목표로 좋은 학군 지역으로 이사하고.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리고 정년 때까지 회사에 시간과 열정을 바치는 거야. “
피규어 아저씨는 미지근해진 코코아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나도 코코아와 함께 이야기를 계속 들이켰다.
“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회가 짜놓은 각본대로 끌려다니기만 한 삶.. 이제는 그만하고 싶었어. 쉽진 않았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이곳에서 내가 좋아하고 행복한 일을 하며 살고 있단다.”
빙그레 웃는 아저씨는 행복해 보였다. 파란곰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달라진 삶을 생각했다.
말없이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피규어 가게를 나왔다. 늦은 저녁 하늘은 어두웠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어두운 하늘에서 꿋꿋하게 빛나는 별들은 힘차고 당당해 보였다. 피규어 아저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