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답사 첫 번째 밤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라, 4.3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이라 시작부터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제주도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아직 다 읽지 못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버스를 타고, 다시 택시를 갈아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여행을 시작할 때면 늘 앞서곤 했던 사치를 부리고 싶은 마음이 이번에는 없었다.
버스를 환승해 공항까지 가려는 계획이었는데 함께 가지 못하는 마음에 관한 미안함이 앞서 하교하는 아이 얼굴을 보려다 택시를 타게 되었다. 공항을 처음 가는 것도 아닌데 매번 보딩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는 것을 보면 느적거리는 성미는 정말 고쳐야 할 것 같다. 공항에 도착해 캐리어를 내리면서부터 운수가 나빴다. 한 벌만 더 챙기자 하고 밀어 넣은 잠옷 때문일까. 손잡이가 뚜둑하는 파열음을 내며 부서져 버렸다. 캐리어 몸통에 연결된 플라스틱 째로.
들삼재라 그래. 당혹감을 숨기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게이트에서 안내 중인 승무원에게 테이프를 파는 곳이 있냐 물었다. 4월부터 회사에서 임금이 체불 중인 것도, 지난 금요일 폐차 지경이 될 정도의 접촉사고가 일어난 것도, 답사 시작부터 캐리어가 부서진 것도, 모두 들삼재라서 그렇다. 이렇게 책임을 어딘가로 전가해버리면, 밀폐용기에 담겨 짓눌리는 것 같은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므로, 습관처럼 말한다.
들삼재라 그래.
무튼 편의점에서 청테이프를 사서 캐리어를 둘둘 감고, 수화물을 맡기고 중간중간 찾아오는 난기류에 새삼스러운 불안을 느끼며 제주에 도착했다. 렌터카를 대여하지 않고 제주에 온 것도 처음이다. 혼자 여행이었어도 차가 있었으면 퍽 수월했을 텐데. 아쉬움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면허를 딴 시기와 취업이 맞물리면서 운전은 아예 손을 놓아버렸다. 5년을 연달아 재택으로 근무하게 되니 더 그랬다. 출근도 퇴근도 집에서 시작해 집에서 끝나니 하루에 몇 백 걸음을 걷는 것도 드문 일이다. 렌터카를 혼자 운전한다니. 까마득하게 낯설다. 덕분에 이번 여행은 버스와 택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카카오택시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공항에서부터 엉뚱한 곳에 서있다가 택시 기사님께 한소리를 들었다. 역시 어설픈 성미가 문제다.
야자수와 해안마을 특유의 짭짜름한 냄새, 말끔하게 정돈된 도로와 생경하게 밀려드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숙소로 향했다. 이미 오후 5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4.3 사건 당시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주정공장 수용소를 가보려 했는데, 이미 폐관 시간이 임박해 계획을 수정했다.
여유롭게 휴양을 즐기려 한 것이 아니니 숙소를 고를 때도 저렴한 순으로 줄 세우기를 했다.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4만 원에 하룻밤을 잘 수 있는 숙소가 있었다. 70년대에 지어진 여관에서 명칭만 바꿔 운영 중인 대동호텔. 아직도 대동여관이라는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는 건물에서 켜켜이 내려앉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평소였으면 벽에 매달린 먼지 하나에 유난을 떨었겠지만, 혼자 온 여행이라서인지 적당히 빛바랜 호텔 로비가 마음에 들었다. 오래된 것들에 마음이 기우는 것은 근래 들어 바뀐 취향일까, 타고난 성정일까. 낡았지만 긴 세월 정성 들여 관리한 흔적이 느껴지는 숙소였다.
객실을 안내해 주던 주인분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캐리어가 오는 길에 부서져서 아무래도 택배를 호텔로 받아야 할 것 같아요.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요청사항에 성함만 적어주시면 됩니다. 언제쯤 도착 예정인가요? 오늘 바로 쿠팡에서 시킬 테니 내일이면 도착할 거예요. 음, 이틀은 걸릴 텐데요. 이틀이요? 아무래도 여기가 제주라. 아, 조금 느린 로켓이군요. 하하, 그렇죠. 주인분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틀간 묵을 502호에 도착했다.
간단한 짐만 풀고 칠성로로 향했다.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많이 봤기 때문일까. 걸음이 이끄는 곳에서 멈춰 섰더니 그곳이 서북청년단의 거점으로 사용되었던 오래된 터였다. 폐점 중인 2층 점포의 녹슨 창문에서 스산하고 오래된 풍광이 저절로 떠올랐다. 어떤 표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자유롭게 활보하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48년 어디쯤의 시간에 갇혀 버린 듯 그곳에서만 다른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칠성로로 진입해 얼마 지나지 않아 신보사옛터에 다다랐다. 신보사는 4.3 사건 당시 유일하게 도민들에게 소식을 전달하던 제주도의 언론사였다. 1940년대 제주도의 여론을 대표하는 주요 통로였으며 1950년대 초반에는 ‘4.3 사건 및 6.25 당시 양민학살 진상규명 신고서’를 접수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고, 서북청년단에게 장악당했던 때에는 기자들과 관련자들 또한 모진 고초를 겪거나 부당하게 처형당하는 일도 있었다. 신보사옛터에는 이미 다른 점포들이 빼곡히 자리 잡아 과거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서울에는 보이지 않던 잠자리들이 여름 하늘을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었다. 신보사 옛터를 지나 큰길로 걸어가다 보니 곧 관덕정이었다. 4.3 사건의 시발점이었던 3.1 발포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다.
해방 후 두 번째로 맞이하는 3.1절, 광복을 축하하며 가두시위를 하던 사람들은 기마경찰의 말이 아이를 친 후 다친 아이를 내버려 두고 가는 달아나는 모습을 목격했다. 분노한 도민들은 사과를 요구하며 기마경찰을 쫓아갔고, 대기 중이던 경찰들은 한꺼번에 달려오는 인파를 보고 소요가 일어났다고 판단해 도민들을 향해 발포를 강행했다. 그 총구에 여섯 명의 도민들이 목숨을 잃고 여덟 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중 한 명은 아기를 업은 여성이었고, 또 한 명은 중학생이었다. 사망자들은 대부분 등 뒤에 총을 맞았다. 항의하는 군중이 아니라 도망가는 군중을 향해 총을 쐈다는 증거였다.’ (제주 4.3 평화재단, ‘4.3이 뭐우까’에서 발췌)
3.1 발포사건은 분노한 민심에 불을 붙였고 총파업의 근거가 되었다. 사람들은 사과를 요구했으나, 군경의 대처는 미흡했다. 분노한 민심을 좌익사상에 물든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경찰의 지나친 대응과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이들을 싸잡아 ‘폭도’라 이름 붙였다.
제주는 강점기에도 일제의 지독한 수탈과 약탈에 몸살을 앓던 섬이었다. 해방이 되어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식민통치 시절의 공출은 미군정에 의한 미곡수집령으로 대체되었고, 일제강점기에 도민들을 폭압 하던 친일 경찰들은 청산되지 않고 그대로 미군정에 의해 직함을 바꿔달고 거리를 활보했다. 모래 섞인 낱알을 먹어야 하는 날들은 계속되었고, 도민들은 일제강점기와는 다른 독립된 대한민국의 평화로운 삶을 원했을 뿐이었다. 당연한 바람이었지만 자유를 향한 그 염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승만을 필두로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하던 세력들과 미군정은 제주도 전체를 남로당에 장악당한 빨간 섬. RED ISLAND로 낙인찍었다. 이념이라는 괴물이 생생하게 살아있던 사람들의 목을 자르고 내장을 갈랐다. 제노사이드의 현장이었다.
관덕정 정자의 너른 마루에 중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저마다 앉거나 누운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자리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비가 그친 하늘은 파랬다. 수십 년 전의 참극을 상상하기 힘들 만큼 아름답고 더없이 평화로운 풍경. 관덕정 내부는 조명 공사 중으로 진입할 수 없었지만, 제주북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으로 돌아가면 주차장 쪽에서 관덕정 내부 공간을 일부 볼 수 있었다. 제주 4.3 사건이 지속되는 동안 관덕정에서는 고문을 받는 사람들과, 죽어가는 사람들의 신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들조차 그 참혹한 비명소리를 견디지 못해 고문을 그만하라 말릴 정도였다고.
얼마 걷지 않아 푸른 잔디가 깔린 제주북초등학교의 운동장이 보였다. 이곳 또한 무차별적인 학살이 이루어졌던 장소다. 밥을 먹다, 젖을 먹이다, 잠을 자다 불려 나온 도민들이 군경의 총구에 죽어나갔다. 총살은 편한 죽음이었다. 나중에는 총알이 아깝다는 이유로 대검에 찔려 죽는 이들도 많았다. 한번에 죽지 못한 이들에게는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야만의 시대였다. 관덕정에서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골목을 돌 때마다 4.3 사건과 관련된 유적지들이 나타났다. 이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묘지구나.
해맑게 공을 차며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보다 집에 두고 온 여덟 살 난 내 아이를 떠올렸다. 어린이 보호 구역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 앞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한 결코 보호받지 못한 어린 넋을 떠올렸다.
관광객들의 대화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인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아주 멀게 느껴졌다. 8천 원짜리 고기 국수 한 그릇을 사 먹고, 돌아오자마자 몸을 씻었다. 낡은 침대가 지쳐 돌아온 나를 반긴다. 이 도시에 묘비 없는 무덤이 얼마나 될까. 몸을 뒤틀 때마다 누군가의 비명처럼 침대 스프링이 파열음을 토한다. 이름 없는 넋은 오늘 밤 어디에서 잠을 청할까.
침대에 엎드려 읽고 있던 소설을 펼친다. 남은 책을 읽고 정리를 해야겠다. 약간의 두통이 느껴진다. 소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그만 자야겠다. 오늘은 8월 12일, 지금 시각은 오후 11시 34분이다. 답사 첫날의 기록은 여기에서 마친다. 떠도는 영혼들이 찰나라도 편한 잠에 들기를.
「노래가 흐르는 바다」프로젝트는 제주 4.3 사건과 여성의 기억을 모티프로 한 창작 동화 작업입니다. 동화의 본편은 추후 공개 예정이며, 현재는 자료 조사와 여행, 인터뷰, 글쓰기 준비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당 작업은 2025년 경기문화재단 청년예술인 자립준비금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지원받은 시간과 자원이 헛되지 않도록 정직하게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