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 다크투어

제주 4.3 답사 세 번째 밤

by 오늘


4.3 평화공원으로 가는 길에 파밭이 예뻤다. 여름이라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초록 가운데 파밭은 미농지 너머에 있는 듯 채도가 낮은 녹색이었다. 하늘이 눈부시도록 파랬고, 유화로 그린 것 같은 비현실적인 구름이 떠있었다. 약간의 두통과 약간의 허기가 이어졌다. 그래도 날씨가 맑아서일까 그럭저럭 괜찮은 기분이었다.

투어를 하러 가는 길. 아침부터 낮달이 떴다.


청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인 여행용 캐리어를 4.3 평화공원 물품보관소에 맡기고, 제 4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라 차 한 대를 제외하고 주차장은 텅 비어있었다.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제주도민과 외지인이 반반정도로 섞여 있었는데, 대체로 등산복 차림이어서 나도 등산복을 하나 준비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셔츠에 반바지 차림이 외지인 티를 내는 것 같아 어쩐지 부끄러웠다.



작별하지 않는 다크투어는 제주다크투어의 대표로 계시는 김잔디 대표님과 허성안 팀장님이 직접 진행하셨다. 끝나고 잠시 인터뷰를 요청해도 되냐는 질문에 흔쾌히 승낙해 주셨고, 모두 모인 뒤 두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첫 번째 목적지인 가시리의 새가름으로 향했다.



소설 속의 인선의 집이 이곳에 있었을까.



집터조차 남아 있지 않은 이곳에서 사람들이 거주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대나무 군락이라고 김잔디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나무는 자생력이 매우 강한 나무입니다. 그래서 집담과 밭담이 모두 무너지고 훼손되고 사라진 뒤에도 대나무는 남아서 그곳이 사람들이 살았던 터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죠. 더불어, 잃어버린 마을이라는 명칭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렸다는 표현은 주체가 피해자를 향하고 있어 부주의나 잘못으로 인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빼앗겼다는 것이 보다 명확한 표현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소설 속 경하가 걸었을 것 같은 길을 따라 걸었다. 새가름과 종서물은 내천을 사이에 끼고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자리 잡은 마을이었다. 제주 내에서도 이렇게 천을 두고 마주한 마을은 드물어 이곳이 인선의 어머니, 아버지가 나고 자란 마을의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했다. 경하는 바싹 말라버린 이 내천으로 굴러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 한지내로 추정되는 종서물을 뒤로 하고 우리는 표선 초등학교로 이동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등장하지 않았고, 4.3과 관련된 다른 서적에도 크게 다루어지지 않은 표선초등학교의 폭파 희생자 위령비가 그곳에 있었다.


표선초 폭파 사고는 군경이 내버려 두고 간 폭탄을 공으로 착각해 가지고 놀던 아이들 30명이 폭발로 사망하고 60여 명이 부상을 입은 참변이다. 4.3 사건이 일어난 연도가 1947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것이 1954년, 표선초 폭파 사고는 1950년에 일어났으므로 사고 발생 시점으로 보아 4.3 사건과의 인과관계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건의 피해자들은 4.3에 의한 희생자로 인정되지 않았으며, 유족들 또한 4.3과 관련된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제 막 태권도 학원을 갔을 아이를 떠올리며, 비석에 새겨진 1학년이라는 세 글자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생때같은 목숨들. 목숨들.



한모살(소설 속 모살왓으로 추정)에 도착했다. 표선해수욕장으로 불리는 한모살은 4.3 당시 표선면의 일상적인 학살터로 이용되었다. 제주에 와 처음으로 제대로 보는 바다였고, 오늘따라 날이 화창하고 파도가 없어 바다는 천국처럼 아름다웠는데, 그 아름다운 곳에서 벌어졌을 일들을 떠올리니 소름이 돋고 목덜미가 차가워졌다. 이 눈부신 백사장에서 밤이면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아침이면 파도가 그 흔적을 모두 지워놓았을 것이다.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마다 사라진 이름들이 겹쳐 백사장을 떠날 때까지 치가 떨렸다. 대표님의 옆자리에 앉아 별스럽지 않게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차로 이동하니 참 편하다는 말을 건네면서도 셔츠 아래로 돋은 소름이 가라앉지 않았다.


좀 덜 예뻤으면 좋았을 걸. 비라도 왔으면 좋았을 걸. 백사장이 이렇게 하얗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달보라, 무서운 뜻을 품은 이 문장이 좀 덜 예뻤으면, 그랬으면 마음이 조금은 덜 슬펐을까.


한모살(표선 해수욕장)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다시 4.3 평화공원이었다. 소설에 묘사되었던 그 무수한 뼈들이 그곳에 있었다.


정뜨르 비행장에서 발굴된 유해들을 재현해놓은 4.3 평화공원 봉헌실 정경.


누구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뼈들, 주인을 잃은 고무신과 허리띠, 머리핀과 명찰, 안경. 온기로 가득한 내 두 손으로 앙상한 이 뼈들을 안아줄 수는 없는 것일까. 처음에는 분노였고, 이후에는 사명감이었던 마음이 서서히 애틋함으로 변해간다. 한 번만 안아주었으면, 품에 가득 안아보았으면, 구덩이에 함께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누워 외로움을 걷어 주었으면. 마음 놓고 목놓아 울게 해 주었으면.


유해를 안장 중인 봉헌실에서 묵념을 하고 짧은 소감을 서로 나눈 뒤 투어는 끝났다.



대표님, 팀장님, 투어에 참여했던 어르신 한 분과 함께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짧게 인터뷰를 청했다. 누군가에게 물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들을 추리고 난 뒤 남는 질문은 많지 않았다. 외지인인 내가 4.3에 대해 쓸 자격이 있는가. 내가 쓰려는 이야기가 4.3을 소비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지 않은가. 궁금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대표님께서는 이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며, 경각심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는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셨다. 또한 제주 분들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고 덧붙이셨다. 4.3에 대해 누군가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과, 4.3을 이용하려는 목적이라면 언급조차 말았으면 하는 양가적 감정이 도민들 사이에 존재한다고. 사실 그것은 4.3을 이용하지 않고, 제대로 알고 제대로 말했으면 하는 깊은 소망이기도 하다고.


다만 피해자와 유족들을 인터뷰하거나 자문을 구할 때, 충분히 공을 들였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전하셨다. 시간에 맞춰 필요한 내용만 듣고 가버리지 말고, 진심으로 다가가 평소에도 안부를 전하고, 준비가 되셨을 때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드렸으면 좋겠다고. 충분한 시간을 피해자분들께 할애했으면 좋겠다고. 작품을 위해, 이야기를 위해 자신이 이용되었다고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다가가 달라는 부탁과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조언이었다. 제대로 된 방식의 배려가 어떤 것인지 설명을 들어야 했다. 내 부주의로 누구도 상처받아서는 안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인사를 나눈 뒤 대표님, 팀장님, 함께 투어에 참여했던 분과 헤어졌다. 차 한 잔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바쁜 분들을 더 이상 잡아둘 수는 없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죽은 듯이 잠을 잤다. 눈을 뜨고 일어나 겨우 오늘의 기록을 남긴다. 지난 3일의 일정이 조금 벅찼던 걸까. 오랜만에 찾아온 꿈 없는 잠이었다.




프로젝트 소개

「노래가 흐르는 바다」 프로젝트는 제주 4.3 사건과 여성의 기억을 모티프로 한 창작 동화 작업입니다. 동화의 본편은 추후 공개 예정이며, 현재는 자료 조사와 여행, 인터뷰, 글쓰기 준비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당 작업은 2025년 경기문화재단 청년예술인 자립준비금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지원받은 시간과 자원이 헛되지 않도록 정직하게 쓰겠습니다.


제주 다크 투어 홈페이지

https://www.jejudarktours.org/ko/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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