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죽어야만.

제주 4.3 답사 네 번째 밤

by 오늘

그간의 피로가 쌓였나 보다. 박명이 밝아오는데도 통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는 푹 쉬기로 마음먹지 않았었나. 어젯밤의 다짐은 아침이 오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제주에 오랫동안 머물 수는 없으니 눈을 뜨는 순간마다 시간이 아까웠다. 결국은 9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주에 온 뒤로 가장 긴 잠이었다. 숙소 1층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어 음료를 한잔 마실 요량으로 1층으로 향했다.


너븐숭이 기념관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 북촌스테이. 서점과 카페와 스테이를 겸하고 있다.


잠은 편히 주무셨냐고 묻는 호스트분께 침구가 너무 포근해 편히 잤다고 답하며 음료 한잔을 추천받았다. 패션후르츠가 가득 올려진 음료가 가격에 비해 호사스러웠다. 테이크아웃잔을 들고 바깥으로 향하며 텀블러를 챙겨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너븐숭이 기념관 바로 옆이 숙소라 도보로 방문하기 무척 편했다.


너븐숭이는 4.3 사건 당시 학살이 대규모로 이루어졌던 대표적인 유적지 중 하나다. 날이 무더워 들고 온 음료잔에 달라붙은 물기들이 손을 타고 흘렀다.



기념관 입구부터 아이들이 묻혀 있는 돌무덤과 위령비들이 있었다. 무덤이 어찌 이렇게 작을까. 돌을 치우고 흙을 걷으면, 얼마나 작은 몸이, 얼마나 작은 뼈가 누워 있을까. 누군가 놓아둔 토끼 인형 하나가 돌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어제 4.3 평화 기념관에서도 희생자들의 사진을 전시해 놓은 마지막 통로에서 아이들의 사진만 모두 찍어왔었다. 덜 아까운 목숨은 없을 테지만, 죽기에는 너무 보드라운 얼굴들이었다.


너븐숭이 4.3기념관 앞 아기돌무덤
4.3 평화기념관 희생자 사진 中


제주에 내려와 4.3과 관련된 공간을 갈 때마다 해설사 분들께서 먼저 말을 건네주셨다. 너븐숭이 기념관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으니 강박처럼 사진을 찍어대며 마지막 통로로 나오면, 해설사 님들께서 조용히 기다리고 계신다. 4.3 사건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냐고. 알고 싶은 게 있냐 물으신다. 창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활동을 쉰 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4.3에 대한 동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리면 하나 같이 알고 있는 모두를 알려주시려 하신다.


북촌리에서 희생된 이들의 명단. 사진을 확대해 피해자들의 연령과 사망사유를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오늘 짧게 자문을 도와주신 분들은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 중인 양우찬, 강정희 해설사님으로 갖은 책자들과 4.3에 대한 자료를 선물해 주셨다. 외지인이 4.3 사건에 대한 창작을 할 자격이 있는가, 당사자성이 없는 창작이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질문했을 때, 양우창 해설사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제주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상황에서 4.3을 바라보게 됩니다. 4.3 사건은, 그 성격이 명확하게 규정된 동학농민운동이나 항일운동, 광주민주화 운동 등과는 다르게 아직 ‘사건’이라고 명명되고 있죠. 한 집안에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동시에 존재하고,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경우도 많습니다. 피해 당사자와 유족들은 실제 경험한 사건이기 때문에 자신의 시각에서 4.3을 해석하게 될 수밖에 없죠. 그리고 그렇게 각자가 해석하는 4.3은 모두 조금씩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당사자가 아니기에 어쩌면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러니 4.3 사건에 대해서 제주 출신의 작가들만 글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시선으로 작품을 쓸지, 현실에 대한 왜곡이 들어가지 않을지를 각별히 주의해야 하겠죠.



두 해설가님은 모두 4.3 사건을 동화로 쓴다고 했을 때 약간의 우려를 표하셨는데, 아동을 대상독자로 하기에는 4.3 사건이 가진 잔혹함과 폭력성이 간접적으로 접하기에도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하기 때문이었다. 4.3 사건 이후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잃어버린, 아니 빼앗긴 이름들에 대해서, 침묵해야 했던 시간에 대해서 다루려 한다 하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직도 제주 내에서 희생자에 대한 이념적 합의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는 내 말에 해설가님께서 무거운 음성으로 답하셨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언제쯤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나는 다시 물었다. 양우창 해설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모두 죽어야겠죠."



4.3의 기억을 가진 이들이 모두 사라져야만 4.3에 대한 의견이 하나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답변에,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모를 죄책감이 밀려와 더는 이 주제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인간은 무엇일까. 이토록 잔인한 것도, 이토록 아름다운 것도 어째서 인간인가. 밀려드는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아내야 할 터였다.


"어쨌거나 더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좋겠지요?"


이미 몇 번이고 제주에 내려와서 했던 질문을 다시금 확인하듯 묻는 내게 해설사님께서 당연하다고 말씀하셨다. 고초를 겪을 것을 알고도 4.3 사건에 대해, 북촌에서의 학살에 대해 글을 썼던 현기영 소설가가 있어 사람들이 4.3 사건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고, 한강 작가가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도 4.3 사건을 궁금해하게 되었지 않느냐고. 쉽게 불안해하고, 쉽게 자신을 의심하는 미진한 창작자에게 보다 깊은 확신을 심어주셨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기념관을 나섰다.


직접 도민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알 수 없는 기운이 솟아서, 오늘도 계획했던 것보다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3 길을 걸을 생각은 없었으나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일렀다. 첫 끼도 먹지 않은 채로 뙤약볕 아래를 걸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여행을 올 때마다 비가 쏟아졌던 제주는, 아픈 역사를 더 또렷하게 보라는 듯 잔인하리만치 맑았다. 모든 것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햇살 아래 빛나고 있었다.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에 등장한 당팟과 북촌초등학교


일상적으로 학살이 이루어졌던 북촌 포구와, 총자국이 선연한 등명대와 정지퐁낭을 지나 당팟과 북촌초등학교를 걸었다. 제주의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북촌초등학교 또한 수용소로 쓰이거나 학살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섬의 모든 땅 아래에는 아직 구해내지 못한 유골이 남아있을지 모른다.


4.3길을 모두 걷고 평화와 번영의 탑에 이르러서야 피로가 느껴졌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너무 많은 이들의 시간이, 너무 많은 이들의 이름이 사라졌다. 폐허가 된 땅에서 밭을 일구고 김을 매며, 바당의 미역을 따며 살아온 이들의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을 것이다.


명령을 내렸던 이들도, 총구를 겨눴던 이들도, 보고도 모른 척했던 이들도,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이들도 모두 죄인이다. 학살에 가담했던 지휘관은 이제와 새삼스럽게 지나간 일을 들춘다 하고, 사과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유족들은 상생과 평화를 노래한다. 이제 미래로 나아가고 싶다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런 순간에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끝없이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제주에 내려온 뒤로, 아니 제주로 올 생각을 했을 때부터, 소설 속 경하처럼 두통이 일었다. 계획한 모든 곳을 다녀온 이후에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일 떠날 생각을 하자 동시에 다시 제주로 와야겠다는 다짐이 뒤따랐다. 아직 보지 못한 것이, 듣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다.


백지 위에서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돌아가 글을 쓸 것이다. 지워진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프로젝트 소개

「노래가 흐르는 바다」 프로젝트는 제주 4.3 사건과 여성의 기억을 모티프로 한 창작 동화 작업입니다. 동화의 본편은 추후 공개 예정이며, 현재는 자료 조사와 여행, 인터뷰, 글쓰기 준비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당 작업은 2025년 경기문화재단 청년예술인 자립준비금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지원받은 시간과 자원이 헛되지 않도록 정직하게 쓰겠습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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