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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an 29. 2024

사랑하지 않으므로 견딜만 하다.

글을 계속 쓰다 보면 내가 왜 글을 쓰는 건지 잘 모르겠는 순간이 온다. 일주일 전쯤이었나, 출근길에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이제 글을 왜 쓰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어쨌든 뭔가를 증명하려는 거  아닐까, 하고 말을 맺었던 것 같은데, 역시 잘 모르겠다. 글을 쓰는 이유 같은 게 아주 뚜렷하고 명징했던 적도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그저 뭔가 흔적이라도 남겨야지 하는 마음에 가까운 것 같다.


이 짧은 문장에도 ‘같다’라는 표현을 세 번이나 쓴 나는 역시 확신이 부족한 사람이다. 두 번째 직장을 다니면서 나는 무척 성실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늘 내가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자극을 최소화하며 살아온 사람일 뿐이지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친절했다. 나처럼 야멸차게 대하지 않았다.


그러니 남에게도 관대할 수 있는 거였다.


나는 언제나 임계치까지 애를 써서 성실해야 하니 쉽게 지치는 거였다. 그게 사랑하는 글이어서 전 직장에서 그리 힘들었던 거였다. 나는 잘 해냈다. 퇴사한 후에 생각해 봐도 그렇다. 잘못한 일도 있었으나, 내 몫의 일은 다 했다. 사랑하는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하니 괴로웠던 거였다.


두 번째 직장은 인공지능과 관련된 업체로, 매우 사무적이고 논리적인 텍스트를 다루는 것이 주된 업무다. 이 일 또한 종일 글자를 읽고 고쳐야 하는 텍스트 기반의 일이지만, 마음의 괴로움이 없다.


일이 나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 노력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해도, 사랑하지 않으므로 견딜만하다.


글은 퇴근하고 쓴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글을 쓰기 위해서. 결승선을 보며 경쟁적으로 달렸던 전 직장에 비교하면 안온하다. 비정상적인 고양감도, 곤두박질치는 절망도 없다. 그런 무심함이 내게 필요했던 것 같다.


브런치에 처음 올렸던 ”어서오세요, 고양이 식당입니다“가 네 편이나 전자책으로 출간되었고, 이프로 엔터테인먼트 겸 출판사와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작품을 만들고 있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가져보고 나서야 내가 글을 쓰는 일로 돈을 벌기에 적당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왜 글을 쓰는 건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근 반년 간 진저리 치게 싫던 글이 다시 읽히고 써지는 것을 보면 글을 미워하지는 않는가 보다.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대단한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던 적도 많았다. 대단한 작가가 되는 것은 아주 좋겠지만, 그렇지 않는 작가가 되는 것도 아주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누군가에게는 읽히는 글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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