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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Mar 13. 2024

우엉이의 첫 번째 탈출

그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

 우엉이는 겁이 많은 고양이었다.


 현관 앞에 배달원이 택배 박스를 놓고 가는 소리에도 귀를 바짝 눕힌 채 소파 아래로 숨어들곤 했다. 케이지에 들어가는 것은 무척 싫어했지만, 막상 병원을 가서 케이지 문을 열어 놓으면 절대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겁을 먹으면 우엉이는 더 깊은 곳으로 숨었다. 낯선 사람이 방문하면 우리 집에서 가장 어두운 곳,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쌓인 틈에 어떻게든 몸을 끼워 넣고 방문객이 사라질 때까지 웅크린 채 기다리곤 했다.


 그래서 가끔 집에 찾아오던 사람들(정비사라던가, 에어컨 설치 기사님이라던가, 먼 친척 등.)은 우리 집에 고양이가 있는 것을 모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우엉이는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세계에 만족한 채 바깥을 먼발치에서 구경하곤 했다.


 그러니까 녀석이 탈출 같은 것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아마도 큰 가구가 들어오거나 짐이 오가는 과정에서 문을 열어두었던 게 원인이었을 것이다. 무신경한 나는 늘 그렇듯 어딘가에 우엉이가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시각 우엉이는 혼자서 아파트 계단을 열심히 내려가고 있었다.


 "우엉아, 이제 사람들 갔어. 나와도 돼."


  할 일을 모두 마친 후에 녀석을 불렀으나, 타닥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나타나야 할 우엉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몇 번 더 녀석을 불렀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우엉이가 탈출을 감행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우엉이는 종종 아늑한 공간을 발견하면 그곳에 웅크린 채 한참 동안 머물러 있곤 했기 때문이다.

 

 커튼 뒤, 다용도실, 서랍, 행거 아래, 침대 밑, 빨래 바구니, 화장실 욕조 안.


 우엉이가 주로 머무르던 공간들을 차례대로 찾아보았으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동그랗게 웅크린 우엉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긴장하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열려 있던 문, 바쁘게 드나들던 발자국,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던 우엉이.


 황급히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탈출을 했다고 해도 녀석의 의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엉이는 현관문을 열어 놓아도 바깥을 궁금해하지 않는 고양이였다. 병원에 가는 길에 살며시 집 앞에 내려놓아도 다시 재빠르게 집 안으로 돌아가는 귀소본능이 강한 고양이였다. 만약 바깥으로 나갔다면, 그건 아마 겁을 먹거나 당황해서였을 것이다. 대비할 겨를 없이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에 놀라 달아난 것일 터였다.


 하지만, 우엉이도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매우 빠른 동물이다. 있는 힘껏 달리면 인간은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력을 낼 수 있는 동물이었다. 내가 느긋하게 사라진 우엉이를 찾아다니는 사이, 우엉이는 내가 절대 찾아갈 수 없는 먼 곳까지 달아났을지도 몰랐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며 우엉이의 이름을 불렀다. 믿을 것은 우엉이가 이름을 부르면 달려오는 고양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달아난 고양이들은 위로 올라가는 본능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옥상까지 올라갔으나, 우엉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여나 발자국 소리에 놀라 달아날까 봐, 나는 까치발을 든 채 아파트 1층까지 내려가며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우엉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던 상황이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우엉이는 달아났다. 우리에게서 멀리. 그 명랑한 발걸음으로 가뿐하게 달려 사라졌다. 사라진 것이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으나,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복도를 지나올 때까지만 해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에 차 있었으나, 아파트 입구를 벗어나 사방으로 펼쳐진 세계를 마주하니 어디에서부터 녀석을 찾아야 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걸음으로 아파트를 벗어나 우엉이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제발 녀석이 응답하기를 바라며.


 "우엉아, 우엉아-!"


 녀석은 야생에서 살 수 있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성격은 소심했고, 잔병을 많이 달고 있었으며, 쓸데없이 다정했다. 혹독한 계절이나 배고픔을 견디기에는 까탈스러운 면이 많았다. 낯선 사람들을 피해 달아나다가 머물 곳도 찾지 못하고 떠돌아다닐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반드시 찾아야 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고 멈춰 선 순간,


 "야-옹."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바보 같은 나의 고양이는, 민들레가 잔뜩 핀  잔디밭 어귀에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멀리도 가지 않고 아파트 입구에 있는 화단, 가장 으슥한 곳에 숨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작 집에서 백 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서 겁에 질려 있었다.


 "우엉아……."

 "먀-옹-!"


 콧물이 방울방울 맺힌 납작한 얼굴. 가슴이 탁 내려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밀물처럼 안도감이 몰려왔다.


 혹여나 달아날까 싶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나는 녀석이 먼저 다가올 수 있도록 우리의 약속과 같은 행동을 했다.


 바닥에 손끝을 대고 세 번 톡 톡 톡.


 우엉이는 언제나처럼 천천히 몸을 일으켜 조심조심 내게 다가왔다. 흙먼지가 날렸다. 주먹 쥔 내 손에 머리를 쿵 부딪힌 녀석은 다가와 몸을 부비기 시작했다. 사라지지 않았다. 우엉이는 달아나지 않았다.


 나는 긴 숨을 내쉬며 녀석을 안아 들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평소와 달리 빠져나가려는 시도도 없이, 녀석은 얌전히 내게 안겨 얼굴을 파묻었다.


 그게 우엉이의 첫 번째 탈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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