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했던 집
우리의 첫 번째 집은 베란다와 거실이 없는 방 두 칸짜리 작은 빌라였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원래 살던 자취방에서 주인의 변심으로 한 달 전에 이사를 요구받아 급하게 마련한 집이었다. 바로 앞에 강이 흐르고 있었고, 낮에도 불을 켜야 할 만큼 그늘진 곳이었다.
예전에 오랫동안 고시원에 거주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사를 할 때면 늘 창이 넓은 집을 고르곤 했었는데, 그때는 상황이 급해 창문이 달려 있는 정도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우엉이는 이 집에서 일 년 정도를 함께 살았다. 고양이 나이로 세 살이었으니 우엉이가 가장 젊었던 시절이었다. 거실 하나 없는 좁은 집이었지만, 우엉이는 이곳에서 가장 높이 뛰었다. 깃털 장난감 하나에도 허리까지 뛰어오르는 우엉이를 보며 겉모습과 달리 꽤 날렵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강을 앞에 두고 있어 일 년 내내 습했고, 볕이 잘 들지 않아 통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이었지만, 우엉이가 있어서 따뜻한 집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마땅한 자격증 하나 없이 밥벌이를 고민하던 막막하던 밤에는 우엉이를 끝없이 쓰다듬거나, 보들보들한 뱃살에 손을 넣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런 순간에는 수면제로도 채워지지 않던 휴식이 잠시 어깨에 앉았다 갔다.
우리가 함께한 두 번째 집은 햇볕이 아주 잘 드는 낡은 아파트였다. 이곳에 살며 남편과 나는 결혼을 했다. 우엉이를 위한 베란다가 반드시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이번 이사의 목표였고, 다행히 우리의 주머니 사정과 조건이 맞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이사를 하고 짐이 조금 정리되자마자 창가에 고양이용 해먹을 달았다. 며칠 구경만 하던 우엉이는 이내 해먹에 앉아 하릴없는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우엉이가 언제나 드나들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베란다 문을 겨울에도 닫을 수 없었다. 눈이 내리면 우엉이는 베란다에서 하얀 눈송이를 하염없이 감상했다. 전기장판 속에서 오들거리며 우엉이가 눈을 감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우엉이는 때때로 저만치 멀리 보이는 기다란 굴뚝을 유심히 바라보거나, 날아드는 새들을 긴장한 시선으로 쫓곤 했다. 녀석에게 바깥을 볼 수 있는 커다란 액자를 선물하게 되어 뿌듯한 기분이었다.
다시 2년이 지나자 집주인은 우리에게 집을 구매할 것을 제안했다. 집을 살만큼 여유가 없었던 우리는 다시 튼튼한 우엉이의 케이지와 함께 세 번째 이사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몇 가지 즐겁지 않은 일들이 겹쳐 전처럼 마음에 쏙 드는 집을 구할 수는 없었다. 새로 구한 집은 주차 문제가 심해 늘 창문 밖에서 사람들이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집에 사는 동안 나는 꽤 심한 신경증에 시달렸다. 우엉이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베란다가 없어진 우엉이를 위해 창가 근처에 책상을 두었다. 우엉이는 책상에 앉아 전깃줄에 앉은 새들을 보거나, 간간히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싸우는 모습을 구경했다.
집에 정이 붙지 않아서였을까, 그곳에 사는 동안 여행을 다니거나, 바깥으로 다니는 일이 많았다. 밤에는 괜히 피시방에서 남편과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교토 여행을 계획하던 중에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키나와에서 생긴 아이였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그래서 쉽사리 받아들여졌다. 임신을 하고 나서는 감정 기복이 더욱 심해졌다. 주변 어른들로부터 본격적으로 고양이를 ‘처분’하라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책임질 것이 많아진다는 것은, 내가 의존하던 것들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기도 했다. 부모님의 말이나 시어른들의 조언은 한 귀에서 한 귀로 흘러가는 바람 같은 것일 뿐이었다.
아이를 낳고 우엉이와 함께 네 번째 이사를 했다. 이번에는 다시 아파트였지만, 베란다를 확장해 넓은 거실로 만든 집이었다. 우엉이가 단독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넓은 창이 있으니 그것으로 마음을 달래야 했다. 대신 소파를 놓을 자리가 생겼다. 나는 갖고 싶었던 베이지색 3인용 소파를 샀다. 우엉이의 털 색까지 섬세하게 고려한 색상이었지만,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소파는 커다란 스크래쳐로 전락하고 말았다. 소파가 있다는 장점은 하나 뿐이었다. 육아에 지쳐 소파에 드러누우면 우엉이가 좁은 소파폭에 딱 맞춰 안겨온다는 것.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다시 이년이 흘렀다. 엄마 아빠라는 말을 익힌 아이는 어설프게 ‘우엉’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걸음마를 뗀 아이는 힘조절을 하지 못하고 우엉이의 꼬리를 열심히도 잡아당겼다. 우엉이는 놀라운 인내심을 발휘하며 아이를 견뎌 주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동안, 우엉이와 우리는 조금씩 나이가 들어갔다.
다섯 번째 이사는 우엉이와 함께한 마지막 집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살던 도시를 떠나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은 도시로 이사를 했다. 우엉이가 충분히 해바라기를 할 수 있는 베란다도 있고, 넓은 거실도 있는 집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도 우엉이도 조금 더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를 바랐다. 우엉이의 눈은 예전보다 흐려지고, 걸음걸이는 느려졌다. 여전히 베란다에 자주 나갔지만, 똑바로 앉아 있기보다는 어딘가에 기대 누워있거나 옆으로 드러누워 햇볕을 쬐는 일이 많았다.
아이를 낳고 좀 더 주부의 일에 열중하게 될 줄 알았지만, 나는 그제야 늦은 사회 진출을 시작했다. 원래 하루 중 가장 오랫동안 머무르는 공간인 집을 꾸미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던 나였지만, 일을 하게 되니 조금 달라졌다. 아이를 봐줄 시터 선생님을 고용하고, 집에 타인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집은 내게서 조금 덜 소중한 공간으로 변하게 되었다. 먹고 자고 쉬는 곳으로써의 기능이 더 부각되었고, 섬세하게 손을 볼 여유가 사라졌다.
바쁜 날들이었다. 우엉이와 전보다 눈 맞춤을 자주 하지 못했고, 느긋하게 털을 쓰다듬는 일도 드물어졌다. 우엉이는 새벽이면 종종 이유 없이 나를 불렀다. 나는 이미 자동급식기와 자동 급수기 자동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우엉이가 울면 건성으로 대답한 뒤 어플을 켜서 사료를 추가 급여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우엉이와 눈을 많이 맞추는 것은 그새 많이 자란 아이였다. 우엉이는 언젠가부터 나보다 아이의 부름에 더 빨리 반응했다. 내가 아이를 혼낼 때면 아이의 주변을 빙빙 돌며 구슬프게 울음소리를 냈다.
나는 종종 소중한 것을 지키는 법을 잊은 어른처럼 굴었다.
예전보다 넓고, 숨을 곳도 많고, 겨울에도 따듯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집이었는데. 그런 게 우엉이에게 만족스러웠을까.
볕도 잘 들지 않고 습하던 그 옛날 좁은 자취방이 어쩌면 더 우엉이에게는 좋은 집이 아니었을까.
후회는 언제나 어리석고 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엉이는 나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녀석이 정말 다정한 고양이였기 때문이다.
아직 집에는 우엉이가 남기고 간 흔적이 가득하다. 나무로 짜 맞춘 우엉이 전용 베란다 문, 사료를 놓았던 곳 근처에 가득한 콧물자국, 어디에서 나온 건지 알 수 없는 털 한 올, 서랍 아래 들어간 물건을 꺼내다 딸려 나오는 고양이 장난감. 묶음으로 사놓았던 캣잎, 사료들, 간식들.
우엉이 덕분에 볼품없고 우울하던 한 시절의 기억이 다림질한 것처럼 빳빳하고 말끔하게 남아 있다.
습하고 어두컴컴하던 집의 기억도 녀석의 털처럼 보송보송하게 남겨져 있다.
슬프고 마음 아픈 것들보다, 다정하고 따뜻한 것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