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Feb 28. 2024

자꾸자꾸 마음에 걸렸다.

성격과 버릇

 누차 말했듯 우엉이는 온순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몹시 까다로운 성격이기도 했다.

 내가 나를 닮은 고양이를 찾아낸 건지, 나와 함께 살게 되어 그렇게 변한 건지, 아무튼 우엉이는 겁이 많고 조심성이 많은 고양이었다. 그리고 기억력이 꽤 좋았다.


 고양이를 보살피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의 목록은 생각보다 많은 편인데, 끼니를 챙기고 잘 씻기고 놀아주는 것은 기본이요, 발톱을 제때 깎아줘야 하고, 양치를 시켜줘야 하며, 틈틈이 털을 빗어줘야 하고, 눈곱을 닦아줘야 한다. 특히 우엉이는 얼굴이 조금 눌려있는 편이라, 아침에 눈곱을 닦아줘도 오후쯤이면 다시 눈 밑이 까맣게 변하곤 했다. 사실 폭 눌린 찐빵 같은 그 외모가 내 마음에 쏙 들었던 건데, 우엉이를 키우면서 녀석이 눌린 얼굴 때문에 꽤나 힘들어하는 것 같아 길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저 녀석들처럼 우엉이 코가 톡 튀어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그럼 잘 때 숨쉬기 불편해서 쌕쌕거리거나, 코에 먼지가 잘 들어가서 환절기에 재채기를 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싶어서.


 무튼 꽤나 많은 수발을 들어야 했는데, 알다시피 우엉이는 겁을 먹으면 그 누구보다 강한 힘을 발휘하는 고양이였다. 착하긴 한데, 좀 유별나기도 했다.

  손톱을 하나 깎을래도 하루 종일 눈치를 봐야 하고, 발톱까지 깎으려면 담요로 온몸을 둘둘 감고 두 명은 붙어서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약이라도 타온 날에는 목숨을 건(?) 혈투를 각오해야 했다. 직접 할퀴진 않았지만 내 팔과 허벅지를 도움닫기 삼아 점프를 하면 온몸이 금세 상처 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한 번은 저 혼자 한밤에 우다다를 하며 오두방정을 떨어대다가 커튼에 매달렸는데, 벼락같은 소리를 내며 커튼봉이 바닥으로 쾅 떨어지는 거다. 우엉이는 우에엥-!!! 하고 처음 보는 비명을 지르더니 허공으로 족히 2미터는 뛰어올랐다. 온몸에 털이 바짝 서 있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혼자 참 별 짓을 다한다 싶어 어이가 없던 와중에,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녀석은 근처에 있던 애인을 불현듯 노려보기 시작했다.


 "웨에에에엥-!!"


 우엉이는 난데없이 하악질을 시작했다. 자신의 실수를 어떻게든 덮어씌우겠다는 결연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종로에서 뺨 맞고 월피동 자취방에서 화풀이를 시작한 거였다.


 “캬아아악!!”


 이를 드러낸 우엉이 앞에서 현 남편이자 전 애인은 진심으로 억울한 표정이었는데, 그것은 정말로 그 커튼이 떨어진 것에 애인의 잘못이 1퍼센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니가 혼자 난리 친 거잖아!"


아마도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 우엉이의 기세에 눌려 나는 분명 애인이 실수로 커튼봉을 떨어뜨렸을 거라 믿었을 것이다.


 실로 무르익은 연기력이었다.


 "나 아무것도 안 했어! 쟤 이상해!"

 "응, 봤어."

 "야! 우엉아, 왜 그래! 이거 네가 떨어뜨린 거잖아!"


 애인은 억울한 누명을 벗고 싶다는 듯 하소연했지만, 맹랑한 고양이는 콧방귀를 뀌더니 마징가 귀를 한 채 내 등 뒤에 웅크릴 뿐이었다.


 그렇게 우엉이는 근 한 달을 애인에게 삐져 있었다. 아마도 목격자에 대한 처벌이었을지도 모른다. 애인도 제법 우엉이에게 실망했다. 명백히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거다. 둘은 꽤 오래 서먹하게 지냈다. 진심으로 서로에게 서운해하는 둘을 보며 나는 어쩐지 난감한 기분이었다.


 아직도 가끔 남편은 그때 그 커튼봉은 자신이 떨어뜨린 게 아니었다고 억울한 얼굴을 한다. 우엉이는 절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녀석은 꼴사나운 실수를 저지를 때면 반드시 자신이 한 일이 아닌 척하곤 했으니까 말이다.



착하지만 까탈스럽고, 상냥하지만 앙큼한 고양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인간이 먹는 음식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았고, 한 번 입에 댄 사료는 절대 다시 쳐다보지 않았다.


 우엉이가 사료를 먹는 방식은 정말 이상했다. 사료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한 뒤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깥에 퉤 하고 뱉고 다시 그릇 안에 있는 깨끗한 사료만 골라 야무지게 먹었다.


 달그락 달그락 퉤-

 달그락 달그락 퉤-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는 정말 어이가 없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고양이를 키우고 있던 언니는 우엉이의 기이한 식습관을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언니가 키우던 오즈는 사료를 바닥까지 핥아먹고도 싱크대를 뒤지고, 음식물 쓰레기로 내어놓은 바나나나 껍데기까지 씹어 먹다 혼이 나는 배고픈 고양이었다. 밥을 적게 주는 것도 아닌데 사나흘을 굶은 듯 굴어 매번 언니를 민망하게 하는 고양이었다.


 오즈 때문에 언니는 고양이라는 동물이 원래 사람 음식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 않은 고양이가 꽤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무척 놀라워했다.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와 함께 밥을 먹을 때면, 인간들의 식사 시간 내내 고고하게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우엉이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고양이가 어째 저리 얌전할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엉이가 언니의 경탄에 찬 눈빛을 받으며 다박다박 밥그릇으로 걸어가 오독오독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퉤-!”


 그리고는 그날도 영락없이 사료를 뱉었다.


  상상한 적 없던 장면을 직접 목격한 언니는 천지가 개벽한 얼굴로 변했다.


 "세상에, 이런 고양이는 처음 본다."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우엉이는 사료를 바닥에 퉤퉤- 뱉어댔다. 쥐어박을 수도 없고, 이 얌체 같은 놈을 어쩌지. 침 냄새가 가득한 사료를 치울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며 동그란 녀석의 뒤통수만 열심히 노려보았다.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너는 지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밥을 굶고 있는지 알고나 있냐-’는 잔소리가 절로 튀어나올 것 같은 순간들이었다.


 녀석은 고양이였고, 인간의 말을 구사할 수 없으므로, 녀석이 퉤- 하면 내가 휴- 하는 날들이 그저 밋밋하게 이어질 뿐이었다.


 입맛이 까다로운 건 사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고양이들이 환장한다는 닭가슴살이나, 멸치, 명태포, 가다랑어, 습식캔, 짜 먹는 간식도 우엉이는 소 닭 보듯 개 닭 보듯 했다. 그럴 때마다 신나게 사재 낀 간식들을 보며 부아가 치미는 건 역시 내 쪽이었다.


 그나마 먹어줬던 건 당시에는 일본 직구로만 구매할 수 있었던 이나바 챠오 츄르였고, 나는 매번 한숨을 내쉬며 일본으로 여행을 가는 지인들에게 츄르 구매를 부탁하거나 해외구매대행 사이트를 들락거리곤 했다.


 남들은 살찔까 봐, 버릇 들까 봐 못 주는 간식을 나는 매번 코앞에 갖다 대고 한 입만 먹어줘 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보곤 했으니, 우엉이는 확실히 까탈스러운 고양이가 맞았다.


 간식에 대한 입맛은 나이가 들면서 조금 관대해지긴 했지만, 사료를 뱉는 습관은 계속되었는데, 버릇을 잘못 들였나 싶어 고치려 했던 것이 이제와 조금 속상한 일이다.


 우엉이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부터 치료용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사료값이 적잖이 비싸 절반이 버려지는 것이 퍽 아까워졌다. 양을 좀 줄이면 녀석이 사료를 낭비하지 않고 다 먹겠지 싶어 평소보다 주는 양을 줄였고, 예상대로 녀석은 사료를 남김없이 다 먹었다. 뿌듯하고 기특했다. 밥을 다 먹으면 내게 와서 웽- 하고 울었다. 그럼 나는 다시 사료를 주고 우엉이는 맛있게 먹고.


 녀석이 떠나던 날,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니 밥그릇이 텅 비어 있었다.


 그게 자꾸자꾸 마음에 걸렸다.


 혹시 가기 전에 배가 고팠으면 어쩌나 싶어서.

 

 다 먹지도 못하고 떠날 걸 알았다면 고봉처럼 잔뜩 줬을 텐데. 갑자기 버릇을 고치겠다는 생각을 왜 했을까.

 그깟 사료값이 얼마라고.


 좀 많이 울었더랬다.


 반절이 남은 사료 봉지는 아직도 버리지 못했더랬다.


 일주일이 넘도록 그릇 가득 담아둔 사료를 버리지 못했더랬다.


 


이전 03화 우엉우엉 울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