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Feb 14. 2024

님아, 그 케이지를 가져가지 마오.

첫 만남


 천으로 된 케이지를 가져가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은 다양한 케이지를 다양한 반려동물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고, 플라스틱 케이지, 혹은 플라스틱보다 더 튼튼한 소재의 케이지도 종종 보이곤 하지만, 10년 전에는 가방 전체가 오픈되는 방식의 천 케이지를 많이들 쓰곤 했다. 우엉이를 처음 만나던 날에 내 손에 들려있던 이동장 또한 천 케이지였다. 일단은 그게 가장 저렴하기도 했고, 구태여 그보다 튼튼한 케이지가 필요한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엉이는 아주 내성적인 고양이였는데, 그래서 고양이 카페와는 몹시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다. 일종의 접객을 해야 하는 고양이 카페에서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녀석이 잘 적응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평소에는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힘든데 오늘따라 이렇게 나와 있네요. 주인을 알아보나 봐요.”


 태양에 녹아내릴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카페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말했다.  카페 사장이었을까, 직원이었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를 고양이는 들어올 때부터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르릉 그르릉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마치 오랫동안 알고 있기라도 했던 사이처럼 익숙하고 나른하던 얼굴. 우엉이였다.


 무척 더웠고, 또 무척 따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을 보고 짐작했던 것보다 고양이는 훨씬 컸고, 털이 몹시 많이 날렸다.


 “이름은 호돌이예요.”


 안 어울리네,라는 말은 속으로 삼킨 채, 인수인계를 받듯 짧은 설명을 전달받았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녀석이 평소에 먹던 사료를 한 봉지를 건네주었다. 사료에는 하얀 유산균 가루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카페에 있는 모든 고양이들이 같은 사료를 나누어 먹고 있었다.


 깊이 나눌 말도, 궁금한 것도 없었던 터라 나는 얼른 케이지에 고양이를 넣기 위해 일어섰다. 얌전히 그르릉거리던 고양이가 순간 털을 곤두세우며 재빨리 구석으로 몸을 붙였다.


 “야-아옹-“


 고양이는 원래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니 낯선 사람이 케이지에 넣으려는 상황이 달갑지는 않겠구나.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반응이였다. 다만, 우엉이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겁이 많은 동물이었고,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이었다. 궁지에 몰린 게 쥐가 아니라 고양이었고, 그 앞에 서 있는 게 우리였을 뿐 옛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우엉이는 그야말로 난리법석을 떨었다.


  일단 잡아오는 데까지는 카페 직원의 힘을 빌렸으나 이후는 모두 우리의 몫이었다. 녀석은 일생일대의 투쟁을 하는 결연한 얼굴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를 동원해 투쟁을 펼쳤고, 몇 번이나 케이지를 박차고 나가는 바람에 결국 천으로 만든 케이지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찢어져 버리고 말았다.


 모두가 아연실색을 했다. 순간적으로 직원과 사장의 얼굴에 스친 낭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순간 마음을 바꿔 고양이를 데려가지 않겠다고 할까 봐 염려하는 기색. 실제로 그럴만한 난장판이기도 했다.


 우리는 전력을 다해 고양이를 케이지에 다시 집어넣었고, 옆구리가 터진 케이지에 들어간 고양이는 들어가기 전과는 달리 매우 얌전해진 모습으로 구슬프게 울었다.


 케이지에 우엉이를 넣는 과정에서 애인의 팔뚝에는 길고 깊은 상처가 났다. 붉은 피가 상처에서 솟아올라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아주 낭만적인 첫 만남을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첫날부터 혈투를 벌이게 될 것이라는 짐작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몹시 침울한 기분이었다.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내가 이 녀석을 감당할 수 있을까, 다른 하나는 나 말고도 얘를 데려갈 사람이 있을까.


 누가 이렇게 포악하고 공격적이고 커다란 고양이를 데려갈까. 그러니 내가 꼭 데려가야겠다. 카페 사장과 직원의 난감한 얼굴은 내 결심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나는 본래 외따로 떨어진 것들을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힘겨운 시작이었다.


 우리는 고양이 무식자였으므로 지하철을 타고 녀석을 어렵지 않게 데려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물론 직접 고양이를 보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전 애인이자 현 남편은 팔뚝에 거대하게 남겨진 전투의 흔적을 수습할 새도 없이 귀갓길에 올랐다. 나는 혹여라도 옆구리가 터진 케이지에서 고양이가 튀어나올까, 케이지 전체를 온몸으로 껴안은 채 로봇처럼 삐걱거리며 지하철을 탔다. 문자 그대로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케이지 손잡이는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갓난아이를 안듯 케이지를 세로로 꼭 안고, 지하철이 우리를 더 빨리 도착지에 데려가 주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 난리를 피웠던 고양이가 맞나 싶게 우엉이는 조용했다. 키우고 나서야 녀석은 겁을 먹으면 생난리를 피우고, 그보다 겁을 더 먹으면 극도로 얌전해지는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녀석은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고양이의 마음 같은 것은 까맣게 모른 채, 지하철에서 녀석이 탈출해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사건만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한 여름이었고, 우엉이는 유난히 털이 많은 고양이였다. 이런저런 피가 섞여 품종을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스코티쉬의 외형이 가장 두드러졌고, 스코티쉬는 겹털과 속털이 함께 자라는 모량이 풍부한 종이였다.

 

 더운 여름, 무성한 털과, 통풍이 원활하지 않은 케이지, 그리고 케이지를 껴안은 나의 체온.


 그 모든 것이 우엉이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았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케이지를 열었을 때, 우엉이는 개구호흡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가 개구 호흡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리 없었던 나는, 침으로 범벅이 된 우엉이를 당장 동물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지만, 겨우 집에 도착해 구석에 자리 잡고 경계태세를 하고 있는 녀석을 다시 케이지 속에 넣어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과연 녀석의 안정에 도움이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보자."


 우리는 잠시 우엉이가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거실을 어둡게 하고, 물그릇과 사료그릇을 근처에 둔 채 최대한 인기척을 죽이고 방에 숨어 있었다.


 잔인무도한 납치범을 바라보듯 우리를 노려보던 우엉이는,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와 사료와 물을 먹었다. 다행히 케이지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개구호흡 또한 천천히 회복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천연덕스럽게 내 곁에 앉아 다정한 얼굴로 그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집에 머물렀던 고양이들이 밤에 몰래 나와 사료만 먹고 들어가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서는 아니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주파수의 결이 같았고, 나는 녀석의 매력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겁이 많고 소심하지만, 사랑이 많고 다정한 성격이었다.


 우엉이는 그런 영혼을 가진 고양이였다.


 나는 쇼핑몰에 들어가 새로운 케이지를 주문했다.


 천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절대 부서지지 않아 오래오래 녀석과 함께 할 수 있을 튼튼한 케이지로.


이전 01화 내 이름은 우엉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