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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Feb 06. 2024

내 이름은 우엉입니다.

첫 만남

바야흐로, 여름이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워서 초 여름부터 뙤약볕이 기승이었다. 그늘 바깥으로 나갈 때면, 얼마 지나지 않아 볕에 익은 뒷목이 따끔하게 아팠다.


 나는 몇 주 동안 인터넷 고양이 카페를 염탐하며 마음에 드는 녀석을 찾고 있었다. 사지 말고 입양하라는 캐치프레이즈에 약간의 동질감과 동경을 느꼈고, 실제로 고양이를 샵에서 분양받을 만큼 넉넉한 형편이 아니기도 했다.


 그 해 여름은, 늘 쫓기던 마음이 드물게 느슨해졌던 시절이었다. 남들은 졸업을 하는 나이에 대학에 입학을 하고, 함께 입시 준비를 하던 애인과 나란히 같은 대학, 같은 학번이 되어 문학과 예술에 대한 수업을 듣고, 실컷 글을 쓰고 실컷 시와 소설을 읽던, 낭만적인 시절이었다.


  삶이 그럴듯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 한 번쯤은 나도 고양이를 키워봐야지, 예술을 한다면 강아지가 아니라 고양이를 키워야지, 유명한 소설가나 시인들은 대개 강아지가 아니라 고양이를 키웠다지.


 입양을 결심한 계기에 그런 치기 어린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런 선량하지 않은 의도를 가슴 한편에 품은 채, 나는 마음에 드는 녀석을 찾고 또 찾았다. 까만 턱시도를 입은 검은 고양이가 좋을까. 아니면 우아한 눈동자를 가진 터키쉬 앙고라나 페르시안 고양이가 좋을까. 사람들은 꾸준히 고양이를 버리거나, 파양 했기 때문에, 나는 돈이 없었지만 충분히 고양이를 고르고 또 고를 수 있었다.



 고양이가 버려지는 사유는 다양했다. 이사와 결혼, 출산과 육아, 부모님과의 합가, 이민. 사람들의 사연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다. 사연이 있다고 해서 파양 되는 고양이가 버려지는 고양이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었고, 나는 그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고양이를 찾고 싶었을 뿐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녀석들은 쉽게 입양이 되었지만, 몸집이 커져버린 고양이들은 쉽게 주인을 찾지 못했다. 입양이 가장 활성화된 대형 커뮤니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고양이는 어쩔 수 없이 원 주인에게서 키워지거나, 아니면 버려질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새끼 고양이가 아니라 성묘가 된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이것도 어쩌면 합리화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중성화 수술비를 아끼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갖다 붙이기에 적당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막상 마음에 드는 녀석을 발견하고 주인에게 연락을 하려고 할 때면, 뭔가 알 수 없는 책임감이 발목을 붙들었다. 이 사진 속에 있는 고양이를 내가 사랑할 수 있을까. 충분히 아껴주고, 곁을 내어줄 수 있을까. 결정적인 순간에 그런 망설임이 입양을 포기하게 했다. 그저 사진만 들여다보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여름은 중턱에 다다랐다.


 현재의 남편, 당시의 애인은 온몸이 까맣고 목덜미에 세모꼴의 흰 털이 나있는, 소위 턱시도라고 불리는 검은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어 했다. 멋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의견이 달랐다. 하얀 털을 가진 인형 같은 터키쉬 앙고라나, 소설 속에나 등장할 것 같은 귀여운 외모의 랙돌 고양이 같은 것을 키우고 싶었다. 그런 고양이가 있다면 준비되지 않은 많은 부분들을 충분히 희생할 마음이 생길 것 같았다.


 코리안 숏헤어라는 이름이 붙은 한국고양이들은 후보에 없었다. 한국 고양이라니 멋이 없다고 생각했다. 애인이 턱시도 고양이의 사진을 보내주며 입양을 권할 때도, 나는 품종묘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게 한심한 사람이었다니, 부끄러워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그러니까, 내가 우엉이를 데리고 오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조금 이상한 일이다.


 우엉이는 막 세 살이 다 된 성묘였고, 잘 익은 벼 같은 색깔을 가진 고양이었다. 금방 찐 만두처럼 둥근 얼굴에, 눈동자는 반짝거리는 호박색이었다. 나는 우엉이를 사진으로 처음 본 순간 반하고 말았다. 애인과 가평으로 여름휴가를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덜컹거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나는 결심했다.


 "얘 데려올 거야."


 갑작스러운 결정에 애인은 조금 놀랐으나,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호박색 눈동자에 이미 반해버린 나는, 누구도 나보다 먼저 이 아이를 데려올 수 없도록 즉시 고양이 주인에게 연락을 취했다. 애인이 조금 의아한 얼굴을 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엉이는 개인이 키우는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 카페에서 키우는 고양이었고, 그래서 소유자는 있었지만 명확한 주인이 없었다. 나와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카페 사장이었고, 책임비 몇 만 원과 함께 우엉이의 소유권은 금세 내게 이양되었다.


 대단한 사치품이라도 고르는 양 몇 달을 고르고 또 골랐건만, 선택은 한순간이었다.


 며칠 뒤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하고, 물품들을 준비했다. 언니의 고양이와 과외를 하던 학생의 고양이를 임보 해본 경험이 있어 준비할 것들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몇 달간 고양이를 돌본 적도 있고, 나 같은 개인주의자에게 고양이는 적합한 반려동물이라고 흔히들 말했으니까.


 이제와 남편은 내게 말하곤 한다. 내가 엄청나게 예쁜 고양이를 발견했다고 말할 때, 자신은 우엉이가 그렇게 특별하게 예쁜 고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조금은 못생겼다는 생각을 했다고. 내가 침을 튀겨 대며 우엉이의 털이 얼마나 아름다운 황금색인지, 앙 다문 입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눈동자는 또 얼마나 영롱한지 주장을 해 댈 때, 매일 네가 검색해 보던 고양이는 이런 고양이가 아니지 않았냐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고.  


 우리 집에 놀러 온 사람들에게 너무 예쁜 나의 고양이라고 우엉이를 소개할 때, 사람들이 종종 알 수 없는 표정을 했던 걸 보면, 실제로 우엉이는 내게만 예쁜 고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주 씩씩한 마음으로, 나의 첫 고양이이자 마지막 고양이인 우엉이, 아니, 아직 호돌이었던 우엉이를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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