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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Feb 21. 2024

우엉우엉 울어요

너의 이름

 "이름이 뭐예요?"

 "우엉이에요."

 "귀엽네요. 털 색깔 때문에 지은 이름인가요?"

 "아뇨."

 "그럼요?"



우엉우엉 울어서 우엉이에요.


 호돌이라는 이름은 너무 용맹했다. 연필 굴러 떨어지는 소리에도 허공으로 뛰어오르는 녀석에게 붙이기에는 지나치게 호전적이고 폭력적인 이름이었다. 녀석에게는 조금의 용맹함도 없었으므로,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얼굴에서부터 꼬리까지 이어지는 선명한 줄무늬 때문이었을 것이다. 황금빛 털에 짙은 나무색 줄무늬는 확실히 호랑이를 떠올리게 했다.


 나이테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그 무늬를 나는 무척 사랑했다.



 굳이 따지자면, 88 올림픽에 마스코트였던 호돌이 캐릭터와 약간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미 무언가의 상징이 되어버린 이름을 붙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름이라는 것은 조금 더 유일하고 본질적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이 붙여준 이름이 아닌, 내가 지은 이름으로 부르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너는 나의 고양이니까. 카페에 잠깐씩 찾아오던 손님들의 고양이가 아니라, 나만의 고양이가 되었으니까.


 외모는 우엉이의 아주 단편적인 부분일 뿐이었고, 녀석과 정말로 어울리는 이름이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철수 이영미 같은 뜬금없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동물에게 사람 이름을 붙이면 단명하게 된다는 속설이 마음에 걸려 그만두었다. 나는 미신이나 징크스 같은 것은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우엉이에 있어서는 이상하게 그런 속설들에 쉽게 좌지우지되었다.


 낭만은 잔인한 현실을 불러오고, 여린 심장에는 쉽게 상처가 깃든다. 그러니 단단하고 냉혹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지. 나는 매사 그런 다짐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한다고 해서 내 세계를 지탱해 온 믿음들이 변할 리는 없었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보잘것없는 고양이 한 마리는 단단한 내 마음을 너무 쉽게 뚫고 들어왔다.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마치 쭉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인 것처럼. 낭만적이고 따뜻한 것들을 잔뜩 끌고 내 삶에 걸어 들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얼마나 나약한 낭만에 기대어 하루를 보내고 있는 걸까.


 우엉이와 함께했던 십몇 년 동안에도 믿지 않았던 고양이 별이라는 것, 무지개다리라는 것이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하기를 이토록 바라고 있지 않은가.


 떠날 때가 되면 모든 것은 떠나는 것이다. 삼십몇 년의 삶을 살아오며 여러 번의 죽음을 목격해오지 않았던가. 할머니의 죽음을 보았고, 큰아버지의 죽음을 들었다. 다리가 심하게 부러져 수술을 했던 중학교 시절에는 내가 입원한 병원에서 동급생의 장례식이 있었다. 이후에도 많은 죽음을 목격하거나 전해 들었다. 그때 나는 어땠던가. 집채 같은 슬픔에 휩싸였던가.


 기이하게도 슬펐던 기억이 없다. 나는 아주 냉소적인 아이였고, 또한 쉽게 마음을 나누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지금껏 내가 겪었던 죽음은 모두 강한 이질감과 낯선 불편함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런 감정들에서 빠르게 달아나는 사람이었다. 슬픔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건조하고 기이했다.


 그래서 나는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니 우엉이가 떠나더라도 슬프지 않을지 모른다.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때로는 그런 사실에 죄책감마저 느꼈다. 녀석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익숙해질수록, 언젠가 이 짧은 삶이 끝나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째서.

 

 태어나 처음 맞이하는 이별인 것처럼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게 된 걸까.

 믿지 않는 종교를 찾아 기도라도 하고 싶을 만큼 간절해진 걸까.


 마음이 너무나 아파서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스스로 소중하게 여겨왔던 것을 잃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을. 너는 내 첫 상실이라는 것을.


 이 우주가 아니라도 좋으니, 이 작고 여린 영혼들이 갈 수 있는 별이 존재하기를.


 제발 그 어느 평화로운 곳에서 녀석이 뛰어놀다 느긋하게 잠드는 하루를 이어갈 수 있기를. 내가 죽어 마중 같은 건 나오지 않아도 좋으니, 단단한 두 발로 지치지 않고 걸어가 내가 반드시 무지개다리 너머의 너를 찾아낼 테니, 어느 우주, 어느 세계 어디에선가 사라지지 않고 머물러 있어 주기를.


 나는 바란다.


 오늘도 기도한다.


 녀석을 생각하면 나는 그저 낭만과 공상 가득한 사람이 되어버릴 뿐이어서, 역시 사람 이름 같은 건 붙여주지 않기를 잘했다고, 바보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니, 역시 이름은 우엉이인 편이 좋았다.



 우엉이가 우리 집으로 온 지 이틀 정도 되었을 때, 녀석이 아주 말이 많은 고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걸음걸이도 느리고, 고양이치고는 모든 동작이 조금 게으르고 느린 편(달아날 때를 제외하고)이었던 우엉이는 굉장한 수다쟁이었다.


 사료를 꺼내 그릇에 담아주면 왱알왱알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길게 늘어놓곤 했는데, 처음에는 그저 밥을 줄 때 기분이 좋아 내는 소리였거니 했다. 하지만 밥을 먹을 때가 아니어도 머리맡에 앉아 있다 가만히 눈이 마주치면 워엉- 하고 울었고, 그 소리가 어느 순간 우-엉- 하고 들렸다.


 우-어-엉

 

이제는 녀석이 그때 내 머리맡에서 냈던 소리가 어떤 의미였는지 안다.


기분이 좋아, 지금 편안해, 만족스러워. 그런 순간에 녀석은 우엉- 우엉- 울었다.


 그래서 녀석의 이름은 우엉이가 되었다. 이응이 많이 들어간 동글동글한 발음인 것도 참 좋았다. 우엉이는 동그란 원처럼 날카로운 면이 없는 고양이였다.


 동그란 눈, 동그란 얼굴, 동그란 발, 동그란 엉덩이. 나를 조금 더 동그란 마음으로 만들어 주던 우엉이.


 이름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녀석은 이름을 부르면 멀리서 나름대로 빠른 걸음으로 나를 찾아왔다. 고양이는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 무색하게 처음에는 대답하듯 한번 왕- 하고 울고, 다시 한 번 부르면 도독도독 하찮은 발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언니가 키우던 고양이는 검증된 천재묘로 이름은 오즈였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장기를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강아지처럼 손! 하는 소리에 손을 내밀었고, 사람처럼 화장실 변기에서 배변을 했다. (혹독한 훈련을 견딘 결과였지만) 게다가 낯을 조금도 가리지 않아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배를 보여주고 친근함을 표시했다.


 그에 비해 우엉이는 장기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이름을 부르면 찾아온다는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녀석이 빼어난 장기를 자랑하는 인싸묘가 되는 것도 그 나름대로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이름을 부르면 저 멀리에서도 미적미적 걸어와 내 옆에 푹- 주저앉는 우엉이가 정말로 기특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로 구분된 세계를 살아가고 있지만, 내가 우엉이의 이름을 부르고 우엉이가 내게 다가오는 순간에는 잠시 우리의 세계가 하나로 겹쳐지는 것 같았다.


 '귀찮게 왜 불렀어, 또.'

 '털을 쓰다듬고 싶어서.'

 '그럼 직접 내가 있는 곳으로 오면 되잖아.'

 '그건 좀 귀찮아서.'

 '엄마는 사람이면서 왜 이렇게 게을러.'

 '그러게.'

 '이제 그만 불러.'

 '가지 말고 옆에 있어줘.'

 '알았으니까 다음엔 엄마가 와.'

 '응.'


 아마도 우리는 잠시 교차하는 세계 속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


 아직도 내가 모든 것을 잊고, 가끔 거실을 바라보며 너의 이름을 부른다는 걸 알고 있을까.


 

 

 친정 엄마가 집에 놀러 와 '웅이'라고 부르면 한사코 대답을 하지 않았던 우엉이.

 아들이 엄마, 아빠, 다음으로 말했던 단어인 우엉이.

 지금도 책장 위의 액자 속에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우엉이.

 화가 나도 탁탁 꼬리만 휘저을 뿐 좀처럼 이를 드러내지 않던 우엉이.


 내가 이름을 너무 잘 지어서 도무지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우엉이,

 이제는 불러도 더 이상 대답하지 않는 우엉이.


 우엉이. 너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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