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Mar 20. 2024

우엉이의 두 번째 탈출

봄날의 고양이

오늘 같은 봄날이었다.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어 들던 아침. 아이는 아빠와 함께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등원을 했다. 당시 나는 연재하던 작품이 있었던 터라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았다. 그날도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고, 잠기운에 취해 아침에도 아이와 남편에게 겨우 인사만 건네고 다시 잠들어 버렸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정오에 눈을 뜬 나는 타는 목을 가라앉히기 위해 정수기로 향했다. 헌데 평소와 공기가 달랐다.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꼭꼭 닫아둔 창문에서 절대 불어 들리 없는 차가운 바람 냄새가 거실에 가득 차 있었다.


환절기 감기라도 걸린 걸까, 베란다 창으로 환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난데없이 거실의 공기가 낯설게 느껴질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나는 늘 그랬듯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그 시기 우엉이는 부쩍 말이 많아졌었다. 안방에 방묘문을 설치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와 바이오 리듬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낮에는 깨어있고 밤에는 곤히 자던 우엉이가 밤이면 잠을 설치며 나를 찾았다.


 천식인 아빠와 기관지가 약한 엄마를 닮아 우리의 아이는 늘 기침과 감기를 달고 살았다. 몇 번 병원에 입원을 하고 난 후, 나는 우엉이를 안방에서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매일 밤 내 발치에서 잠들던 우엉이는 소파에서 홀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녀석은 모두 잠든 밤에 이유 없이 울곤 했다



아침이면 거실에 나온 나를 향해 후다닥 달려오던 우엉이가 어쩐 일로 조용했다. 나는 다시 한번 녀석을 불렀다. 우엉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소파 커버를 들췄다. 노란 털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소파 밑은 우엉이의 아지트였다. 우엉이는 그곳에도 없었다. 소파를 확인하고 몸을 일으킨 순간, 활짝 열려 있는 현관문을 발견했다.


낯선 바람은 그곳에서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입술을 뚫고 탄식이 터져 나왔다. 매일 아침 스스로 문을 닫겠다던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던 기억이 났다. 아이는 최근 부쩍 자조가 늘어나 뭐든 자신이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곤 했다.


남편이 엘리베이터를 잡고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닫아야 할 문을 그대로 열어둔 채 돌아섰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무방비하게 열린 현관문으로 우엉이는 살금살금 걸어 나갔을 것이다.


나는 문밖으로 뛰어 나갔다. 처음 우엉이를 잃어버렸을 때도 녀석은 아파트 화단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우리 집은 탑층 바로 아래였다. 위로는 올라갈 곳이 별로 없으니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수색을 해야 했다.


십여 층이 넘는 계단을 일일이 내려가며 녀석을 찾았다. 층계참에 적힌 숫자가 작아질수록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1층에 내려올 때까지 우엉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처럼 가까운 화단에 녀석이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아파트 단지를 돌며 우엉이의 흔적을 찾고 또 찾았다.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우엉이가 없었다.


얼마나 찾아다녔을까. 쌀쌀한 날씨에도 땀이 뚝뚝 흘렀다. 더는 찾아볼 곳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이 백만 년 같았다. 발끝에 쇳덩이를 매단 듯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편은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와 있었다.


"문을 열어놓고 가면 어떡해!!!"


 남편을 보자마자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분노가 터져 나왔다.


 "어? 그게 무슨 말이야?"

 "문이 열려 있었잖아!! 우엉이가 없어졌어!!"


 아마도 남편이 열고 간 문이 아닐 터였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원망을 쏟아부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럴 리가 없어."


 사색이 된 남편은 바보 같이 내가 모두 찾아봤던 곳들을 일일이 헤집기 시작했다.


 "없어, 내가 다 봤어."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우엉이가 있을 만한 곳을 직접 다 확인해 본 후에야 그가 말했다.


 "진짜 없어진 거야?"

 "응."


 나는 온몸에 힘이 풀려 식탁 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남편은 다시 물었다.


 "우리 우엉이 없어?"

 "우엉이 없어, 우리."


 믿을 수 없다는 듯 남편은 밖으로 향했다. 그는 내가 모두 찾아본 곳을 처음부터 다시 헤매고 다닐 터였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손이 떨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집은 엉망이었고, 우엉이는 없었다. 그때 우엉이의 나이가 이미 열세 살이었다. 점점 이별이 가까이 다가오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때였다. 하지만 내가 상상한 이별은 이런 게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이런 건 너무 일방적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오후가 오고, 저녁이 지나갔다.


휑덩그레 홀로 남겨진 새벽의 거실에서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슬리퍼를 꿰어 신고 현관으로 향했다.


 없을 것이다.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는데도 없었지 않았나. 기대하지 말자.


 그런데....


내가 꼭대기 층을 확인했던가.

 

 지난 탈출 때 화단에서 녀석을 찾았던 기억이 선명해 아래층과 화단, 아파트 후미진 곳을 위주로 살펴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화단 어디에서도 우엉이를 발견하지 못하자, 완전히 우엉이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아주 멀리 달아나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꼭대기 층을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아니,


 없을 거야.


 마음속으로 치솟아 오르는 기대를 억누른 채 나는 걸음을 내디뎠다.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한 칸 한 칸 조심스럽게 계단을 밟으며 우엉이를 불렀다.


 달빛이 캄캄한 복도를 비췄다.


“먀-“


 우엉이는 그곳에 있었다.


 이번에도 내게서 고작 몇 계단 밖에 멀어지지 못한 채,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에 몸을 바짝 붙인 채, 갈색 눈곱과 눈물을 잔뜩 매단 채, 발 끝을 몸속에 꼭꼭 숨긴 채, 나를 바라보며 떨고 있었다.


 어쩐지 더럭 서러워졌다.

왈칵 눈물이 났다.


정말 너는 다른 고양이들처럼 달아나고 싶지도 않은 거니? 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달려보고 싶지 않은 거니? 정말 내게서 조금도 달아날 생각 같은 건 없는 거니? 이런 나라도 기다려 주는 거니?


활짝 열린 문을 벗어나 고작 한 층 밖에 달아나지 못한 우엉이가 고맙고, 한 편 몹시 안쓰러웠다.


내가 우엉이의 세상인 것이다.

보잘것없는 내가 녀석의 전부인 것이다.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우엉이를 바라보다 손을 내밀었다. 녀석은 피하지도 반기지도 않고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밤기운에 차갑게 식은 우엉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밟고 내려왔다.


 다시는 너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날 나는 그런 다짐을 했다.


 영원히 너를 잃게 될 날이 언젠가 찾아 오리라는 것은 까맣게 잊은 채, 그런 다짐을 했다.

이전 06화 우엉이의 첫 번째 탈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