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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미 Jan 22. 2022

두부

 

 엄마는 늘 두부를 혼자 만들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처럼 명절이면 커다란 두부 모가 스무 개쯤 되도록 넉넉하게 만들었다. 아직 손 두부 맛을 잘 모르던 나는 그게 뭐 대수냐란 듯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지날 때가 많았다. 엄마가 두부를 만들던 때에는 아직 우리 집에 전기도 안 들어왔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야 겨우 전처구니를 쥔 채 졸기도 했다.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4남매인 우리 중 누구도 거들려고 하지 않았던 설날을 앞둔 풍경이었다. 어두운 겨울밤 엄마는 혼자서 묵묵히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두부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이면 여지없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를 밥상에 올리셨고. 할머니는 두부를 뜨거운 밥에 넣고 양념초간장을 얹어서 썩썩 비벼 맛있게 드시곤 했다. 난 왜 엄마가 이렇게 힘이 드는 두부를 때마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도 이상했는데 할머니는 저녁이면 꾸벅이며 존다고, 집안이 단정하지 못하면 찬찬치 못하다고, 큰소리로 투덜대면 점잖지 못하다고 엄마를 타박했으면서도 이것저것 부엌에서 나오는 것들은 모두 맛있게 드셨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세월이 많이 흘렀다. 두부를 편안하게 사 먹지 못하는 곳에 살다 보니 엉뚱하게 두부가 먹고 싶어졌다. 근년의 일이다. 엄마 집에 가서 얼마간씩 묵을 때면 슈퍼마켓에 가서 가장 먼저 두부를 산다. 냉장고에서 여러날이 지나건만 엄마는 두부에 손을 대지 않는다. 어제는 두부를 만들었다. 콩을 하루 전에 담가서 불리고, 쥬서기에 갈아서 콩물을 얻고, 리넨 주머니에 콩물을 담아서 곱게 걸러내고, 냄비에 담아서 끓인다. 소금과 식초를 1대 1로 섞어 콩물이 끓기 시작할 때 부어서 저어주면 뭉얼뭉얼 두부에 순이 들고, 이 크고 작은 덩어리들을 소창 행주를 깐 채반에 걸러서 굳히면 두부가 완성된다. 1킬로의 콩을 갈아서 두부를 내면 납작하고 작게 서너 모의 두부가 나온다. 남편과 나는 이걸 데워서 간장에 찍어먹거나 팬에 지져먹기를 좋아한다. 어제저녁에는 할머니가 하셨듯 밥에 초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벼서 먹었다. 


 점점 고기를 적게 먹고 있는 나와 남편에게 두부는 좋은 단백질원이자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이다. 하지만 두부를 만드는 일은 꼬박 한나절을 투자해야 한다. 어제는 아침 먹고 시작한 두부 만들기가 저녁 먹기 전에야 끝이 났으니 하루 종일 두부에 매달린 거다. 콩을 씻어 불리는 것부터 두부모를 자르기까지 남편은 단 1초도 머물며 살펴보지 않는다. 엄마는 1대 6이었는데 나는 1대 1인 것뿐이다. 두부를 만들어 두고 저녁을 먹기 전 남편과 산책을 나갔다. 우산을 들지 않은 남편의 한 손을 잡고 어두워져 가는 거리를 걷는데 남편이 한마디 한다. 일을 많이 한 손이네. 손바닥이 딱딱하다. 갑자기 서럽다. 


 맞다 서럽다. 이탈리아어나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단어가 서러움이다. 결혼이민자로 이탈리아에서 살기 시작한 지 8년 째다. 들어오기 전에는 시험을 앞둔 아이처럼 마음이 조급하고 하루도 편치 않아 결국은 집을 처분하고 왔는데. 집을 처분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왔을 만큼 여기서 사는 게 너그럽지 못해 8년간 다시 끙끙대며 살고 있다. 최근엔 팬데믹까지 겹쳐 살림살이는 줄어들고 주머니도 얇아져서 마음까지 오종종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손바닥이 단단해지도록 두부를 만들어도 들여다보지 않는 남편이 몹시 서운하다. 엄마는 부처님이다. 1대 6의 대결과 이런저런 마음의 술렁임을 견디고 살아왔다니. 나 먹으려고 두부를 만들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나는 소인배인가 보다. 

다음에도 두부를 만들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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