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탐구생활

한글 Ep.3 세종대왕이 설계한 것은 한국인의 사고방식

[한글 Ep. 2] 세종대왕이 설계한 것은 문자가 아니었다.

by 법의 풍경

오늘은 제582돌 한글날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한글의 우수성"을 찬양하는 글을 쓰지 않겠습니다. 대신 하나의 수수께끼를 풀어보겠습니다.


수수께끼:

왜 한국 기업은 "빨리빨리"를 외치고,

독일 기업은 "Gründlichkeit(철저함)"를 강조할까요? 왜 한국인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고,

서양인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고 할까요?


같은 길 찾기인데,

왜 하나는 목표를, 다른 하나는 과정을 이야기할까요?


저는 오늘, 이 차이가 우연이 아니라는 가설을 제시합니다. 답은 582년 전 만들어진 한글의 28개 글자의 구조에 숨어있습니다.


발견 1:

한글은 뇌를 압축 모드로 작동시킵니다.

2011년 윤효운 교수 등의 신경과학 연구팀은 fMRI로 한글 읽기 과정을 촬영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한글을 읽을 때 우측 BA8이라는 뇌 영역이 특화 활성화되었는데, 이는 알파벳이나 한자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현상이었습니다.


BA8은 무엇을 하는 영역일까요? 이곳은 비선형 공간 배열을 처리하는 전두엽 영역입니다. 쉽게 말하면 레고 블록을 조립할 때 쓰는 뇌 부위입니다.


왜 한글만 이 영역을 활성화할까요?

한글의 독특한 블록 구조 때문입니다.


영어로 "book"을 쓰려면 b, o, o, k를 선형으로 배열합니다. 4단계 순차 처리입니다. 하지만 한글로 "책"을 쓸 때 우리 뇌는 ㅊ, ㅐ, ㄱ 세 요소를 0.1초 만에 동시에 압축합니다. 왼쪽에 초성, 오른쪽 위에 중성, 아래에 종성을 배치하는 2차원 퍼즐을 순식간에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한글을 읽고 쓰는 582년 동안,

한국인의 뇌는 "정보를 빠르게 압축하고 즉시 완성하는" 신경회로를 발달시켜 왔습니다.



발견 2: 압축 사고가 목표지향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서울대 최병조 교수는 비교법문화론에서 인류를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생물학적 인간학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적 인간학의 측면입니다. 생물학은 오감으로, 문화는 언어로 환원하여, 이 두 가지 조합으로 인류를 구분합니다. 그래서 그리스인은 시각인 문화, 로마인은 언동인 문화, 히브리인은 청각인 문화, 한국인은 "독해인" 문화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독해인 문화의 정수가 바로 ‘한글’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한글의 언어구조는 ‘주어->목적어->동사’로 행위에 들어가기 전에 ‘목적’이 먼저 결정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강한 목표지향성을 낳았다고 주장합니다.


최 교수는 한국 속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를 서양 속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와 비교합니다. 두 속담 모두 길 찾기를 이야기하지만, 초점이 완전히 다릅니다.

한국 속담의 초점: "서울"이라는 목표. 어떤 길로 가든(모로 가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도착 그 자체입니다.

서양 속담의 초점: "모든 길"이라는 과정. 어느 길을 선택하든 결국 로마에 도착한다는, 과정의 다양성과 필연성을 이야기합니다.

최병조, 비교법문화론 52면 발췌


저는 여기서 최병조 교수의 주장에 한 가지 가설을 추가 제안해 봅니다. 이 사고방식의 차이가 문자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한글을 쓸 때 우리 뇌가 학습하는 패턴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ㄱ과 ㅏ를 모으면 즉시 "가"라는 완성된 결과가 나옵니다. 요소를 모으는 순간 바로 목표 달성입니다. 과정과 결과 사이에 시간차가 거의 없습니다.


반면 알파벳은 b, o, o, k를 차례로 배열해야 합니다. 각 단계를 순서대로 밟아야 완성됩니다. 과정을 건너뛸 수 없습니다.


582년간 매일 한글을 쓰며, 한국인의 뇌는 "요소만 모이면 즉시 결과"라는 회로를 훈련받았습니다. 이것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목표지향적 사고방식의 신경학적 기반이 아닐까요?



발견 3: 외국인도 한국 문화의 5개 범주 중 하나로 결과중시로 꼽았습니다.


2013년 유민봉·심형인 교수팀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외국인 43명에게 자유롭게 한국 문화의 특징을 나열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63개 특성을 네트워크 분석으로 5개 범주로 압축했습니다.


결과: 5개 범주 중 하나가 "결과중시"로 빨리빨리, 성과지향, 서두르는, 치열함 등의 특성을 포함합니다.


모두 "목표 달성"과 연결된 특성으로 이는 최병조 교수가 제시한 '목표지향 문화'와 연결됩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최병조 교수가 철학적으로 분석한 "목표지향 문화"를, 유민봉 교수팀이 실증적으로 검증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제안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의 뿌리가 한글의 블록 압축 구조에 있다는 것입니다.



발견 4: 한중일은 같은 유교문화권이지만 사고방식이 다릅니다

흥미롭게도, 한국·중국·일본은 모두 유교 문화권이고 한자를 공유했지만, 각국의 문화적 지향점은 명확히 다릅니다.

한국: 목표지향 (獨解人)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 한글 블록 압축 구조가 빠른 완성 지향 사고를 만들었습니다.

중국: 관계지향 (關係人) "면자(面子) 중시" – 한자 표의문자는 의미 전체를 한눈에 보게 하여 맥락과 관계 전체를 중시하는 사고를 형성했습니다.

일본: 과정지향 (和人) "와(和)의 정신" – 히라가나·가타카나의 선형 음절 구조가 단계별 순서를 중시하는 사고를 만들었습니다.


같은 문화권이지만 문자 구조가 다르면 사고방식도 달라집니다. 언어학자 Edward Sapir가 말했듯,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입니다.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자의 구조는 사고의 구조"라고 제안합니다.



발견 5: 현대 한국 기업의 속도는 우연이 아닙니다.

이 가설이 맞다면,

현대 한국의 "압축 성장"도 설명됩니다.


삼성전자는 2024년 단 6개월 만에 AI 반도체 전략을 전면 전환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3년 만에 완전한 전기차 라인업을 구축했습니다.

BTS는 데뷔 7년 만에 글로벌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빨리빨리 문화"가 아닙니다.

582년간 한글을 통해 훈련된 "압축-완성-목표달성" 신경회로가 조직 문화로 발현된 것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은 무책임함이 아니라, 목표에 대한 강력한 집중과 경로의 유연성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과정에 얽매이지 않고 목표를 향해 가장 빠른 길을 찾는 것. 이것이 한국식 혁신의 본질이 아닐까요?



마무리: 세종대왕이 설계한 것은 문자가 아니라 사고방식이었습니다.

1443년 10월 9일, 세종대왕은 단순히 백성이 쉽게 배우는 문자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한국인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재설계했다고 생각됩니다.


한글의 블록 구조는 582년간 한국인에게 "빠른 압축, 즉시 완성, 목표 집중"이라는 신경회로를 훈련시켰습니다. 이것이 최병조 교수가 말한 "독해인 문화"를 만들었고, 유민봉 교수가 실증한 "결과중시" 특성으로 나타났으며, 현대 한국의 압축 성장으로 발현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한글날,

우리가 기념하는 것은 단순한 문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형성한 인지적 혁명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한글 Ep. 1] 한글 창제의 숨겨진 진실


P.S. 3년 전 우리말에 대한 단상 시리즈를 연재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이 글이 가능했던 건 3년 전의 생각들을 글로 적었었고, 3년 간의 숙성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참고문헌:

- Yoon et al. (2011), "Neural mechanisms of Korean word reading", Springer

- Jiyoung Jang et al. / Phonetics and Speech Sciences Vol.16 No.1 (2024) 17-24

- 최병조, "한국문화의 특성에 관한 문화유형론적 고찰", 비교법문화론 중

- 유민봉·심형인 (2013), "한국사회의 문화적 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문화 및 사회문제, 19(3), 457-485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국인의 마음을 읽다: 우리는 정말 어떤 사람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