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7일 대설 동틀 녘 중랑천 산책로에서
어제 내린 눈이
세상을 고요로 덮은 아침,
도봉의 자운봉은
푸른 냉기 속에서
수묵의 첫 획처럼 떠 있었다.
지는 달은
말없이 빛을 놓아주며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저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길을 도는 존재—
내 삶을 밀어오는
기대와 규칙의 그림자 같았다.
그 아래,
낮게 누운 산줄기는
태초부터 주어진 내 뿌리였고,
그 위로
왜가리 한 마리,
밤과 아침의 이랑을
가느다란 선을 그으며 솟았다.
주어진 배경을 품고도
자신의 궤적을 선택하는 몸짓.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지워지지 않는 명(命)과
비켜갈 수 없는 운(運)에도
지금 이 순간
하늘을 가르는 선은
내가 그어야 한다는 것을.
촬영: 2025년 12월 7일 대설 동틀 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