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해냈습니다!
오늘 아침, 지난번 그 까치(혹은 그의 친구?)가 다시 제 옆에 앉아주었고, 이번엔 동영상 촬영까지 허락해 주었습니다.
카메라 셔터 소리에도 날아가지 않았습니다.
움직임에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포즈까지 취해주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교감이다.
다음엔 대화도 가능하겠는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로 가는 길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까치는 제게 “선물”을 하나 남기고 날아갔습니다. 네, 그 선물입니다.
소요산 요린이에 이어 다들…왜…
순간 ’옥에 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옥에 티가 아니었습니다.
생태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신뢰의 표현입니다.
동물이 배변을 한다는 것은 그 공간에서 충분히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고양이가 집에서 편하게 화장실을 쓰는 것처럼요.
철학적으로는, 불완전함 속의 완벽함입니다.
일본의 와비사비(侘寂)* 미학처럼, 진정한 아름다움은 결점 없는 완벽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진실에 있습니다.
• 侘(와비): 원래는 결핍과 외로움을 뜻하지만, 미학적으로는 자족적이고 소박한 삶의 태도 → “있어야 할 것이 없어도, 그 부족함 속에서 오히려 평온을 느끼는 상태.”
• 寂(사비): 고요함, 시간의 흔적, 낡음의 미(美) → “세월이 만든 균열, 녹, 빛바랜 흔적이 주는 깊이와 정취.”
성 프란치스코가 새들에게 설교했을 때 새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중세 수도사들은 그런 세부사항은 ’생략’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새들이 한 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면?
분명 프란치스코도 비슷한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다만 역사는 그것을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죠.
현대의 창동 프란체스코가 배운 것
진정한 교감이란:
완벽한 사진이 아니라
세련된 대화가 아니라
통제된 순간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는 지저분하고, 완전히 자연스러운 순간에 있다.
까치는 제게 가장 진솔한 방식으로 말했습니다:
당신을 신뢰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뿌직).
다음 단계는?
이제 대화 시도만 남았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또 어떤 “예상 밖의 선물”을 받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소요산 삵 요린이도 기다리고 있고…
창동 호루라기에서 창동 프란체스코로의 여정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