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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 흑백요리사, 시즌 파이널

by 법의 풍경

그제 아침, 중랑천에서

올 시즌 최대 규모의 흑백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2주 전]

사실 저는 이 둘의 악연을 알고 있었습니다.


2주 전, 이곳에서 목격한 장면:

백로 근처에서 가마우지(흑 팀)가 물아래로 잠수하는 순간, 백로(백 팀)가 여지없이 정수리를 쪼았습니다.


당시 제 머릿속:

“와 저기 머리 쪼이면 죽을 것 같은데…
이거 완전 목숨 건 흑백요리사 x 오징어게임?”



[이틀 전의 대결]

그런데 그제 아침…

가을이라 철새들이 속속 남하 중인 시점,

중랑천에 남은 “마지막 세력들”이 무리 지어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른쪽: 백로 군단 약 20마리 (백 팀 수비라인업)

왼쪽: 가마우지 군단 약 15마리 (흑 팀 최전방 결사대)

상황: 자리를 잡고 있는 백로 군단 속으로 진입하는 가마우지 군단


저는 진심으로 걱정했습니다.

“이거… 시즌 파이널 복수전인가?”
“아침부터 깃털 날리는 거 보는 건가?”


영상 켜고 대기…

[충격의 반전]

그런데요.


앞에 있던 백로 몇 마리가 후퇴하면서 긴장감을 더했는데, 가마우지는 백로 사이로 유유히 지나가서 자리 잡음.

헐... 완벽한… 평화…?

2주 전 그 쪼인 가마우지 어디 갔어요?

복수는요?

드라마틱한 전개는요?



[뒤늦은 깨달음]

아…

아마 저만 혼자 넷플릭스 보듯이

시즌 파이널을 기대하고 있었나 봅니다.


새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중랑천 아침 뷔페는 풍족하다. 굳이 싸울 이유가 없다.”


심지어 철새 시즌 막바지에

남은 멤버들끼리 에너지 낭비할 이유도 없고요.



[진짜 배운 것]

조직에서 “과거의 갈등”이 오래가는 건

당사자들이 아니라 구경꾼들 머릿속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작 실무자들은 이미

각자의 영역 찾아서 일 잘하고 있는데,

우리만 “쟤네 사이 안 좋지 않아?” 하면서

드라마 찍고 있는 거죠.


백로도, 가마우지도,

가을 남하 준비로 바쁜데 싸울 시간이 어딨겠어요.


작가님들 조직의 “흑백요리사 x 오징어 게임”도

혹시 관전자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건 아닐까요?


P.S. 그래도 솔직히 조금은 아쉽…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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