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와 열한 번째 사이 : [1]사랑국

by 김밀

“작가님 좀 도와주세요"


방송할 때면 늘 옆에 있는 기술감독이

도시락을 내밀며 말하더군요.

자그마한 보온 도시락.

국을 담는 동그란 모양의

보온 도시락인데,

한 손에 착 감기는 것이 차암 사랑스럽더군요.


"뚜껑이 안 열려요"

"뚜껑 위에서 두드려봐. 그럼 될 걸"

"여기 한번 보세요.

처음부터 잘못 닫아서 그런 것 같아요."


애초에 지퍼를 잘못 잠그면

옷이 쭈글해지는 것처럼

국을 넣은 도시락의 윗부분 실리콘 테두리와

뚜껑 안쪽의 실리콘 홈이 엇갈려

뚜껑이 열리지 않게 된 것이죠.

제가 도시락 밑부분을 두 손으로 잡고

기술감독이 뚜껑을 잡고 돌리기를 몇 차례,

꿈쩍도 안 하더군요.


"찾아보자.

고무장갑 끼고 해 보래.

뜨거운 물에도 담가보고. “


그런데 감독이 어디선가 투명 테이프를 구해

뚜껑에다 붙여왔더군요.

양 옆으로 길게 여유분을 만들어

그 부분을 두 손으로 잡고 돌릴 계획,

얼른 도시락 밑부분을 잡아줬습니다.

한 번에 성공.

그러자 이번엔

도시락 속이 궁금해졌습니다.

미역이 아닌 하트가 넘쳐납니다.

'사랑국'


결혼한 지 얼마안 된 감독은

음식 하는 걸 좋아하는 아내를 만났더군요.

출근하는 남편 아침밥 차려주고,

건강 생각해 점심 도시락 싸 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보나 마나 저녁도 소꿉놀이하면서

같이 먹을 겁니다.

테이프 감독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사랑국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미역을 불리고

소고기를 볶고

참기름을 둘렀을 각시와

혼자 용을 쓰며 뚜껑을 돌리다가

별 도움 안 되는 지푸라기와 돌리고

결국 테이프로 성공한 신랑.


대뜸 도시락 사진을 찍겠다고 했습니다.

힘없는 지푸라기라서

나쁜 짓은 안 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사랑의 미역국을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요' 한 마디 안 하고

도시락을 내주더군요.


굳이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시인의

'밥'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로다 ]

끼니는 제대로 챙겨드시기 바랍니다.

때우지 말고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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