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 고무다라이 사장님

대학사 사장 유준영

by 김밀


장난스럽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 단어로 써도 되나요? - 그럼요.

피곤. 손글씨를 부탁하면 보통 행복이나 건강이 나오고, 휴대전화로 뭔가를 찾기도 한다. 대게는 무언가 그럴싸한 걸 쓰고 싶어 하는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말이나 문구를 적어주세요 라는 말에 짧게 단어를 써도 될까 하고 잠시 머뭇거렸을 뿐. 하필 가게를 찾은 날은 월요일이었다.


그와 인연을 맺은 지는 3년째. 학원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교재 제본과 복사를 해야 할 일이 생겼고,무작정 대학가 근처로 갔고, 도로변에 믿음직스러운 ‘대학사’ 라는 상호명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신뢰 가는 가게 이름과는 다르게 그는 종종 깜빡하곤 했다. 늦은 저녁, 달님과 함께 가게로 가면 문 앞에 있어야 할 교재가 없어 허탕을 친 적이 수차례다. 그의 가게 문 손잡이엔 늘 작은 갈고리가 있고, 나처럼 늦게 교재를 찾으러 오는 손님들을 위해 완성된 교재를 봉지에 넣어 갈고리에 걸어두곤 하는데, 오늘 찾으러 간다는 톡을 주고받아도 그는 몇 번을 잊어버리곤 했다.


어떤 날은 전화를 걸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는 그를 기다리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문을 몇 번 앞뒤로 당겨보고는 늦은 밤 그가 나오는 게 얼마나 귀찮을까 하면서 그냥 오기도 했고,또 다른 날은 문 앞에 서서 그가 전화로 부르는 비밀번호를 입력하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이 정도면 가게를 옮길 만도 한데, 지금도 여전히 그가 싫지 않다.무뚝뚝한 그와 몇 마디 나눌 때면 그가 가진 특유의 수줍음이 좋다. 다들 너무 잘나서, ‘박사님’이 넘쳐나는 세상에, 얼굴을 붉히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 사람 좋은 수줍음은 본인은 모르는, 그래서 더 큰 장점이고 매력이다.

그리고 엄마 표현대로 ‘어디 가서 돈 벌어오는 거 보면 신기하다’ 고 할 만큼 허술하기로는 전국 상위 1%를 차지할 내가 그에게 못할 짓도 많이 했다. 어디 단체나 기업처럼 수천 권씩을 주문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수십 권씩 하는 주제에 교재 편집은 해달라고 하고, 품값은 건너뛰고, 그저 교재비만 주기도 했다. 그 때는 천지모르고 한 일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많지 않은 수량을 묵묵히 받아주고 있다.

얼마 전, 가게 문 앞에 ‘임대’가 붙여져 있는 것을 보고 순간 눈이 동그래졌다가 곧 작아졌다. 임대 딱지가 흔한 요즘이지만, 그의 가게는 늘 활기로 넘친다.

- 사장님. 어디로 가시나 봐요?

- 옆에 편의점 자리로 가요. 거기가 조금 더 커서요.

- 와아. 확장이전 하는 거네요. 축하드려요.

또다시 그의 얼굴은 수줍음을 머금은 ‘고무다라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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