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 ‘강사료 더 올리세요’

도슨트 정우철

by 김밀

처음 보는 구성. 보통은 손글씨로 포스트잇을 가득 채우는데 글씨가 반, 미소 하트가 그려진 사인이 반을 차지했다. 곧 강연자로 무대에 올라할 그에게 헤어졌지만 미련이 남은 전남친에게 말을 걸 듯 가장 좋아하는 화가를 물었다.


- 샤갈이요. 세계 대전을 두 번 치르면서도 사랑을 그렸어요.

그와의 인연은 ‘아카데미’에서 시작됐다. 회사에서 운영하는 강의 프로그램인 아카데미를 3년 동안 맡으면서 유명 강사를 섭외하고, 강의를 듣는 100여 명의 회원을 관리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나에게 아카데미는 큰 의미를 가진 일이었다. 방송작가는 직업 자체가 승진이 없기 때문에 ‘맡은 일’로써 성장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명한 강사를 섭외하고, 강의 자료를 받고,당일 혹은 전날 울산으로 내려와서 강의를 하기까지 전반적인 상황을 정리하면서 ‘걔 괜찮더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이미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가진 단단한 힘과 에너지를 마주하면서 속살은 그들의 뒤를 따라가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그들과 나란히 걸어간다는 것만으로 성장이고 축복이었다.

유독 기억에 남는 강사들이 있다. 먼저 유홍준 교수님. 우리 회사 사장이나 회원들이 뽑은 회장 등 내빈과의 식사 대신 지역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제자들과의 식사를 요청하셔서 제자들의 사랑과 소탈함에 무한정 반해버렸다. 또 휴대전화 문자처럼 메일을 주고받았던최재천 교수님은 평일 저녁은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고 강의를 거절하셨는데 무척이나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말씀하셔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마지막으로 유인경 기자님은 두세 시간 함께였지만 짧은 몇 시간 동안 ‘사회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는 여성 후배’로 바라봐주신 듯해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책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를 건네며 내 이름 밑에다 문구를 적어주셨는데 지금도 한번씩 꺼내보곤 한다. ‘언제 어디서나 마땅히 행복하시길.’

반면 ‘앞으로 내 인생에 저 인간은 없다’ 하는 강사들도있었다. 산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한 강사는 피피티 자료 한 장 없이 한 시간 내내 고함만 지르다가 갔고, 영화 강의를 했던 한 강사는 이름이 알려진 것에 비해 알맹이 없는 내용에 전달력 하나 없는 밍밍한 말투까지 더해져 그저 시간만 때우고 내뺐다.

그는 전자의 경우였고 좋은 인상은 본질인 재미있는 강연에서 나왔다. 당시 아카데미를 같이 꾸려가던 W팀장이 그를 추천했고 검색부터 했다. ‘도슨트계의 아이돌.‘ 사랑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기사 헤드라인이 먼저 들어왔고, ’EBS’, ‘미술극장’ 이런 단어들이 보이더니 다섯 글자를 보고는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을 했고 울산으로 내려와 주었다. ‘시청률 1위.‘

그의 강의는 기승전결이 명확해서 지루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요소를 배치해서 화가와 그림의 이해를 도왔다. 덕분에 강의를 할 때 휴대전화에 코를 박거나 자리를 뜨는 회원이 적었고, 회원들에게 받아 든 강의평가서에는 늘 세 손가락에 드는 강사였다.

읽어보지 않은 <바르도의 링컨>을 쓴 조지 손더스 작가가 한 말이 있다. ’소설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가요? 모든 걸 올바르게 파악하는 일이 아닙니다. 특정 역사적 기간에 있었던 일을 나열하는 일이 아닙니다. 남북 전쟁이나 무덤 지리에 대한 진실을 보여주는 일이 아닙니다. 독자의 입에서 ‘와, 세상에!’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오게 만드는 일에 가깝습니다.‘

이번에 ‘도강’을 했던 알폰스 무하도 타로카드와 세일러문을 등장시켰고, 슬라브서사시로 마무리를 했다. 무하가 화가가 아닌 위인으로 불리는 이유인 대작 슬라브서사시 만으로 채워질 전시관이 생길 예정이니 꼭가보라고. 태어나서 알폰스 무하라는 화가를 이 날 처음 알았는데, 통장에 여유도 없는데, 시간 내기도 만만치 않을 텐데, 이미 마음은 체코였다.

3년 동안 아카데미를 하면서 섭외의 권한을 가졌던 2년 연속 그를 초대했다. 강연장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면서 한 말을 그가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 도슨트님. 강사료가 조금 적은 편이에요. 다음에 어디서든 강연할 때는 더 올려서 말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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