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 ‘보름 동안 집에 못 갔습니다’

욱스디자인 대표 이상욱

by 김밀

- 책 제목이에요. 김종민이라고 고졸로 구글에 들어간 사람이 쓴 책이요.

- 워커홀릭이세요?

- 네.


워커홀릭이냐고 묻는 말에 단 한 모금의 주저함 없이 ‘네’ 라고 말하는 그는 여러모로 시선을 붙잡았다. 직원 한 명과 방문한 그는 동그랗다 못해 ‘똥그란’ 안경테, 가방 손잡이에 달린 가죽 키링, 한여름 잔디밭이 생각나는 보테가베네타의 명함지갑 그리고 손글씨를 부탁했더니 가방에서 꺼내든 몽블랑 볼펜까지. 취향이 잔뜩 묻어나는 소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라디오 개편을 하면서 디제이룸에 새로운 프로그램명이 들어간 큰 블라인드 형식의 현수막이 필요했고 그를 찾았다.


- 누가 봐도 디자인 회사 대표님이신데요.

- (웃음)

- 이 일을 한 지는 오래되셨나요?

- 20년 정도 됐죠. 울산시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울산 동구 관광 캐릭터 ‘고미, 도리, 마리’ 도 저희 회사가 만들었어요.


20년. 차분하고 묵직한 에너지가 여기에서 나왔구나. 작가와 논술학원 일을 병행한 지 고작 3년. 우물에서 뛰쳐나와 소상공인의 길을 걸으면서 수요일에는 비닐류를 담은 빨간 그물망을,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그 외의 쓰레기를 넣은 초록색 그물망을 가게 앞에 내놓아야 한다는 것만 알게 된 게 아니다.


어제보다 오늘, 지난달보다 이번 달, 작년보다 올해, 손톱만큼이라도 나아져야 그나마 지금 상태를 유지할 수있다. 교재를 추가하든지, 숙제를 업그레이드하든지, 빔프로젝트 수업을 계획해 보든지 노를 젓고 있어야 배가 가라앉지 않는다.


또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강사를 한 명 채용했고 언제부터인가 그를 ‘모시고’ 있는 꼴이 되면서 결국 정리를 했는데 그 과정을 거치면서 두 가지를 알게 됐다. 하나는 누군가에게 이래라저래라 일을 시키는 것이 몹시 어려운 일이고, 또 하나는 영세한 규모여서 그가 결근을 하는 날이면 내가 오롯이 ‘땜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서운 100세 시대, 우리 삶은 이미 장기전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지치지 않게, 또 학생들에게 다정함이 빨리 소모되는 걸 막기 위해 수업을 줄이면서 학원 군살을 빼고 있다.


학원을 하면서 동네 치킨가게, 카페, 수선집 등 사장님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특히 한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가게 사장님들의 인생 맷집이 빛바랜 간판에서 전해진다. 회사 울타리에서 벗어나 바깥 전쟁터에서 인생 공부를 시작한 햇병아리 원장은 20년 동안 대표로서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회사를 유지하고 있는 그도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 힘들었던 적이요? 재작년 겨울이요. 삼산동 디자인거리 야간 경관 조명을 저희가 맡아서 해요. 그런데 점등식이 바로 코 앞인데 갑자기 업체가 못 하겠다는 거예요. 어쩔 수 있나요. 저희가 다 하는 수밖에요. 거리에서 살다시피 했죠. 보름 동안 집에 못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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