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다
11월의 끝이 다가오면서 드디어 기온이 0도 한참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루고 또 미루고 있었던 엄청 귀찮고, 둘둘 말기가 이상하게 어려운 수국 월동 작업을 해주었다.
우리 집 수국은 엔들리스 섬머 수국. 그해 새로 난 가지에서도 꽃이 피는 당년지 수국이라 사실 월동 작업을 해줄 필요가 없는 수국이다. 하지만 다음 해 초여름에, 한아름 가득 풍성한 수국꽃을 보려면 올해 가을동안 만들어진 수국의 꽃눈을 월동 조치를 통해 보호를 해줘야 한다. 그러면 올해의 꽃눈과 내년 봄 새로운 가지의 꽃눈이 합쳐져 많은 수국 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귀찮음과 하기 싫음, 싸매기의 곤란함 등을 밀어내고 꾸역꾸역 수국 월동 작업을 시작했다. 작년에 수국이 작았을 때는 어떻게든 혼자 싸매기를 했다. 그러나 올해 훌쩍 커버린 수국을 둘둘 싸매는 건 혼자서 하기 너무 힘든 일이라고 투덜 대면서 옆지기님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도 도란도란 둘이 함께 작업을 하니 조금은 신나서 할 수 있었다.
일단 수국을 부직포나 커피 마대로 중간 정도까지 두르고, 낙엽을 적당히 채워 넣어 최대한 겨울바람이 들어가는 것을 막은 다음, 마지막으로 가지의 위쪽 끝까지 둘둘 감고 막아주면 끝. 요령을 조금 더 피우기 위해 집게 클립과 옷핀으로 부직포들을 결합해 주었다.
귀찮음을 털어내고 이렇게 수국 월동 조치를 해주니 그래도 마음이 한결 놓인다. 앞으로 한파가 몰아치더라도 걱정 없이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수국이 정원지기의 노력을 알아주어 부디 꽃눈이 최대한 많이 살아, 내년 초여름에도 올해와 같은 풍성한 수국꽃을 피워주길 기대해 본다.
다음 월동 작업은 코코칩으로 멀칭 하기. 멀칭은 소나무 바크, 코코칩, 낙엽, 정원 식물의 부산물 등으로 흙을 덮어 주는 것을 말한다. 멀칭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과거의 일기에서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다.
멀칭은 정원의 흙이 영하의 한기, 뜨거운 햇빛 등과 직접 접촉하는 것을 막아주어 땅이 적절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또 땅속의 미생물이 멀칭 소재들을 천천히 부식시키면서 유기질이 풍부한 흙으로 만들어 주는데, 멀칭을 통해 결국은 흙이 좋아지니 꽃과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다는 사실. 이와 같은 효과 때문에 멀칭은 가드닝의 필수 작업 중 하나다.
작년에 소나무 바크로 했던 멀칭이 일 년 동안 어느 정도 분해되면서 얇아져버렸다. 그래서 추가 멀칭을 해줄 필요가 생겨 이번에는 조금 더 값싸고 경제적인 코코칩으로 재료를 바꿔 멀칭을 했다.
코코칩 멀칭과 소나무 바크 멀칭의 차이점을 조금 비교해 보면, 소나무 바크보다 코코칩이 훨씬 가벼워서 멀칭 후에 바람이 좀 강하게 불면 코코칩 일부가 이리저리 굴러 다니는 경향이 보인다. 그래도 소나무 바크 보다는 코코칩이 부피가 있어 조금 더 두텁고 푹신하게 멀칭을 할 수 있다. 또 진갈색의 소나무 바크보다 연갈색의 코코칩이 훨씬 밝아 정원이 이전보다 화사해졌다. 그리고 소나무 바크에서는 장마 기간에 버섯이 자라났는데, 코코칩은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작년 초겨울에는 새로 심은 어린 장미에게 월동 조치의 하나로 커피 마대를 덮어 주었다. 하지만 올해는 장미의 월동 조치를 특별히 해주지 않고 접목 부위에 두둑하게 코코칩을 올려 주는 것으로 마감했다. 작년에 마당에 심은 어린 장미들이 많이 성장하기도 했고, 또 지난겨울을 한번 겪어 보았으니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무늬 가우라가 중부지방에서도 월동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불안해서 줄기를 자르고 화분으로 덮어 주었다. 프렌치 라벤더도 중부지방에서 월동을 했다는 카더라가 있어 우리 집 마당에서 햇볕이 비교적 잘 드는 곳에 심은 후 역시 화분으로 덮어 주었다.
그리고 튤립 구근을 심었다. 튤립 구근을 심지 않으면 왠지 올해 가을, (수선화와 무스카리 등의 구근을 심었음에도) 구근을 심지 않고 넘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튤립 구근을 소소하게 주문해 11월의 마지막 주말에 플랜트 박스와 땅에 역시 소소하게 심었다.
영하의 바람에 모두 시들어 버린 백일홍 재즈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올해 늦은 봄 작은 모종으로 데리고 온 이 꽃은, 여름부터 겨울 전까지 어떻게 보면 퇴폐적이고 어떻게 보면 고급진 황금빛 노란 꽃을 끊임없이 피우던 녀석이다.
그래서 난생처음 시든 꽃의 씨앗을 받는 채종이란 것을 해보았다. 초보 가드너인 나는 씨앗이 제대로 여물었는지 알 수 있는 수준은 되지 못한다. 그래도 어쩌면 이 꽃을 내년에 또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다음 봄에 이번에 채종한 백일홍 씨앗을 파종해보려 한다. 만약 새싹이 성공적으로 올라오고, 꽃이 피어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연은 또 몇 년이고 이어질 것이다.
11월이 되어 느지막이 개화한 오렌지색 포트멈 국화와 연핑크의 국화가 영하의 기온에도 꿋꿋하게 피어있다. 필 수 있을 것 같았던 11월의 마지막 장미 꽃봉오리들은 얼어서 고개를 숙여버렸다. 영하의 기온, 초겨울의 공기가 정원을 지배하면서, 그동안 초록을 유지하며 버티고 버텼던 대부분의 꽃들이 이제 올해의 삶을 정리하고 겨울잠을 준비하고 있다.
역대급으로 덮고, 역대급으로 비가 내리는 등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재앙 같은 지금의 지구에서 그래도 꿋꿋하게 버티며 한 해를 살아간 꽃들이다. 이 꽃들과 함께 올 한 해를 정원에서 노심초사하며 보낸 가드너들의 따듯한 마음이 채종한 백일홍의 씨앗에서 알알이 전해진다.
이제 약 두 달 반, 정원 식물들의 긴 겨울잠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겨울을 잘 지나면 꽃과 식물은 더 크고 아름답고 풍성하게 성장한다. 꽃도 나도, 포근한 흙 속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듬뿍 충전해 내년의 건강한 땅, 건강한 지구에서 다시 설렘과 행복이 가득한 2년 차의 정원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올해는 이만.
(2023.11.16~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