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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화 Nov 16. 2023

가을 구근과 함께 마음을 묻는다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다

11월의 첫 주까지도 여름의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따듯한 가을이 계속되면서 수선화와 튤립 등의 가을 구근을 심을 시기가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따듯한 날씨가 계속되었던 11월 초의 미니 정원


작년 가을 가드닝 생초보 시절에는 10월 중순에 일찌감치 구근을 심었다. 하지만 11월 중순까지 계속된 따듯한 기온 때문에 혹시라도 싹이 올라올까 봐 한겨울이 될 때까지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작년 10월 중순에 심었던 구근들은 땅속에서 겨울을 잘 넘겼고, 올해 봄이 되어 새싹이 나오고 꽃이 피는 것에 성공했다.


가을에 구근을 심어보고 다음 해 초봄에 새싹들이 순풍순풍, 또 화려한 수선화와 튤립의 꽃들이 피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가드닝은 이 맛에 하는 것이지!'를 외치며 감동 또 감동했다. 이 설렘과 감동을 내년 봄에 또 한 번 느껴보기 위해 이번 가을에도 구근 심기를 진행.

 

올해 봄에 피었던 튤립 꽃들


작년 늦가을에 겪었던 마음고생을 피하기 위해 올해는 겨울 직전까지 최대한 참았다가 구근을 심는 걸로 작전을 변경했다. 또 올해 봄부터 가을까지 새로운 식물들로 마당을 가득 채우면서, 구근을 새로 심을 자리가 거의의 없어져버렸다. 그래서 결국 튤립 구근은 올해 봄에 꽃핀 아이들의 상태를 내년 봄에 한번 더 지켜본 다음 보충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새로 데리고 온 추식 구근은 수선화 제라니움과 무스카리 블루스파이크가 전부. 그리고 올해 어머니 집에서 데리고 온 흰 붓꽃의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독일 붓꽃 미스틱 뷰티 구근을 추가했다. 


수선화는 햇빛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성격이 있다. 그래서 올해 봄에는 정원 중간에서 핀 수선화가 정원의 바깥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어 얼굴을 제대로 못 보고 대부분 뒤통수만 보았다. 내년 봄에는 수선화의 얼굴을 온전히 보고 싶어 이번에는 벽 앞의 장미 구역에 자리를 잡아 꽃의 방향이 정원 안쪽으로 향하게 심었다. 


또 무스카리 구근도 장미 앞쪽에 심어 내년 이른 봄 미니 정원을 가로지르는 돌길 양쪽 모두에서 다양한 구근들의 꽃을 볼 수 있도록 배치해 보았다. 

무스카리 구근을 장미 앞에 심고 있다


가을의 끝에 이렇게 소소하게 몇 개의 구근을 땅속에 묻으니 올해의 정원과도 슬슬 이별해야 하는 것이 실감 났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빨리 보내기 위해 마당의 지난 꽃들을 정리했다.

 

5월 말에 개화, 여름을 지나 가을의 끝까지 피어 있는 버들마편초가 씨앗을 맺고 있었다. 자연발아가 잘되는 이 녀석들을 놔두면 내년의 마당에서 난리가 날 것 같아 아직 꽃이 한창인 일부만 남기고 모두 잘라 주었다.

 

층꽃도 마찬가지다. 이 녀석도 씨앗이 땅에 떨어져 혼자서 쑥쑥 크는 것이 최고인 꽃이다. 올해 봄에 마당에서 마구 자라고 있는 층꽃 새싹을 많이 뽑아 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런 수고를 미리 없애기 위해 씨앗이 맺기 전에 미리미리 정리를 하고 있다. 

자연발아가 잘 되는 층꽃은 시든 후 정리하는 것이 좋다


추명국도 11월 초에 꽃이 모두 지고 역시 씨앗을 맺기 시작했다. 추명국의 솜털 같은 하얀 씨앗 뭉치가 겨울의 정원 풍경과 잘 어울려 그대로 둘까 했지만, 여기저기 번져버린 추명국 어린 개체들을 정리한 기억이 솟아올라 역시 과감히 잘라 버렸다.

 

덩굴장미 보니가 가을이 끝날 때까지 자라고 또 자랐다. 올해 봄 내 키만 한 상태에서 시작한 녀석인데, 그 후

새로운 신장지들이 쑥쑥 나와서 크더니 1년 사이에 벽을 다 덮고 거실 전창 끝까지 뻗어가 버렸다. 불과 얼마 전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정리를 한 번 했던 터라 살짝 귀찮기는 했다. 하지만 이대로 겨울로 들어가 잎이 다 떨어지고 줄기만 치렁치렁 을씨년스러울까 봐, 또 겨울바람에 가지가 부러질 수 있어  한번 더 단정하게 묶어 주었다. 

벽을 가득 메운 덩굴장미 보니를 묶어 주는 중


마당에 있던 무화과, 로즈마리 등 몇몇 화분을 집안으로 들였다. 마당의 화분을 들이면 안 그래도 복잡한 거실은 마당의 화분들로 꽉꽉 더 채워지지만 왠지 마음은 더 헛헛해진다. 이 헛헛한 마음이 새로운 꽃들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채워지기까지는 아마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이렇게 가을이, 그리고 올해의 정원이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백일홍과 천일홍 그리고 메리골드 일년초 삼 형제가 막바지 힘을 내며 정원을 밝혀 주고 있다. 특히 백일홍은 여름부터 개화를 시작해 새로운 꽃봉을 끊임없이 올리면서 꽃을 피우는 최강의 일꾼으로, 어떤 다년생 꽃들보다도 가성비가 좋은 녀석이다. 

백일홍, 천일홍, 메리골드 일년초 삼 형제


그리고 올해 우리 집 미니 정원의 마지막 꽃, 포트멈 케이맨 오렌지와 어머니의 정원에서 데리고 온 연분홍색 국화가 이제야 폈다. 이 녀석들은 피자마자 영하의 온도를 맞이하겠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가을이 완전히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쩌면 꽃이 핀 그대로의 얼어버린 모습으로 나의 작은 마당을 지키며 허전한 나의 마음을 위로해 줄 것이다. 이렇게 나의 정원에 꽃이 있었다고, 그리고 내년에도 새로운 꽃들이 다시 피어날 것이라고.

 

우리 집 미니 정원의 마지막 꽃 포트멈 케이맨 오렌지


이제 마당을 조금 더 정리하고 수국 월동 준비를 해주고 나면 올해의 정원일도 끝이다. 꽤 많이 허전하고 아쉬울테지만, 그래 잠시, 그동안의 정원일을 내려놓고 겨울로 들어가는 마당을, 깊은 잠에 빠지는 꽃들을 따듯하게 안아보자. 한 해 동안 고생했다고, 내년에 우리 다시 멋진 그림을 그려 보자고.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3년 11월 1일~11월 15일)

백일홍이 영하로 떨어진 기온에 시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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