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다
11월이 코앞이지만 한낮의 기온은 아직 20도, 지구 온난화가 초래한 따듯한 가을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이맘때의 날씨와 정원 상태가 궁금해서 지난 가드닝 일기를 펼쳐 보니, 2022년도 마찬가지. 역대급의 따듯한 가을, 역대급의 긴 가을로 기록되어 있었다.
최근의 몇 주, 최근의 몇 년 간은 여름인지 가을인지 초겨울인지 뒤죽박죽 섞여버린 알 수 없는 계절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포근한 날씨가 지속되는 덕분에, 역설적이게도 가을의 꽃들은 아직까지도 미니 정원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의 일기를 뒤적이다 보니, 썰렁하게 비어 있던 0년 차의 가을 정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작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의 가을동안 마당에 꽃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불안과 걱정이 가득했다. 그래서 화원으로 출동, 꽃이 막 피기 시작하는 추명국, 그리고 가우라 바늘꽃 등을 데리고 와서 부랴부랴 땅에 심었다.
또 이사 온 첫 해에 화분에 심어 놓았던 메리골드의 씨가 마당에 떨어져 운 좋게 자연발아 해서 피고, 어린 모종을 심었던 층꽃과 그라스 수크령이 꽃을 조금 보여주긴 했다.
그럼에도 2022년 0년 차의 가을 정원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차마 정원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꽃 몇 개가 드문드문 썰렁하게 피어 있던 엉망진창의 어린 마당이었다.
이 황량함을 벗어나고자, 작년 가을부터 하나씩 둘씩 본격적으로 꽃들의 모종을 심고 장미를 몇 주 더 들였다. 또 올해 봄과 여름에는 일년초들의 파종도 조금 하고, 마치 꽃쇼핑에 중독된 것처럼 새로운 모종과 새로운 장미를 마당의 공간이 허락하는 만큼 들였다.
그 결과 1년 만에 우리 집의 가을 정원이 확연히 달라졌다. 매일 아침 커튼을 열고 마당을 볼 때마다 비현실적인 기분이다.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과 매일을 함께 하고 있다니. 또 이렇게 신비한 식물과 꽃을 키우고 돌보는 가드닝이란 것을 하고 있다니.
심고 가꾸고, 마당에 대한 적절한 투자와 적절한 관리는 가드닝을 위한 필수항목이다. 그래서 옆지기에게 내년의 정원을 위한 투자라고 말하고 또다시 식쇼핑을 했다.
올해 심은 호스타 주위로 자리가 좀 남아 있었다. 그래서 호스타를 더 데리고 올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반음지 식물인 휴케라를 데리고 올 것인가로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그때 마침, 유명 가드닝 유튜버인 '양평서정이네'님이 반음지 식물인 '브루네라'와 '홍지네 고사리'라는 품종의 공동구매를 시작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재빠른 클릭으로 구입하는데 성공. 배송되어 온 실물을 보니 브루네라는 생각보다 잎이 훨씬 크고 존재감이 상당했다. 홍지네 고사리는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잎들이 벌써부터 크리스마스를 불러오는 느낌이었다.
이처럼 정원지기에게 식쇼핑은 끊을 수 없는 유혹이다. 자리가 있어도, 자리가 없어도 새로운 꽃들을 자꾸만 들여오고 싶다. 하지만 2023년 올해의 식쇼핑은 무스카리와 수선화 등의 구근을 몇 개 더 추가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다고 다짐에 또 다짐을 하고 있는 중이다.
추명국 본체의 좌우와 앞뒤로 새로운 추명국의 어린잎들이 많이 올라왔다. 번지는 기세가 좋은 추명국을 그대로 놔두면 다른 꽃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 같아 새롭게 자라난 개체들을 모두 정리해 주었다.
어린 추명국을 파내고 보니 뿌리로 이어져 번진 것이 아니라 씨앗이 떨어져 자기들 스스로 싹을 틔운 것이었다. 이 정도 기세의 자연발아력이라면 내년에도 추명국의 어린싹을 정리하는 일은 계속될 것 같다.
그린라이트 그라스의 새가 드디어 터졌다. 작년 8월 말 여름이 끝나갈 무렵 심었고, 이어진 가을에는 꽃을 보지 못했다. 올해도 불과 얼마 전까지 새가 터질 기미가 전혀 안 보여 포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라스를 심고 2년은 지나야 꽃이 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10월이 끝나갈 즈음 갑자기 한꺼번에 폭죽처럼 그린라이트의 꽃이 태어났다.
가드닝의 기쁨과 재미 중 하나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키우던 식물이 어느 날 불쑥 선물처럼 내어주 꽃이란 결과물이다. 이 꽃들이 가드너의 마음대로 언제나, 그리고 쉽사리 피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마음을 졸이고 더 기대하고 더 설레게 된다.
그래서 꽃을 가꾸는 우리는, 어쩌면 더 겸손해져야 하는 것일 수도.
이제 11월이다. 더 붙잡고 싶지만 자연은 꽃들을 거두어 간다. 그렇게 처음부터, 내년 봄의 새롭고 어린싹들과 함께 자세를 낮추고 다시 또 시작하자고 계절은 말하고 있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3년 10월 16일~10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