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다
10월이 시작되었다. 초록이 하나 둘 빠지면서 남은 색은 노랑과 주황, 그리고 빨강. 가을의 색이 하루하루 깊어 가고 있다.
이제 나의 미니 정원에서 꽃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가 남았다. 다행히 아직 마당에는 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가을꽃들이 가득한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은 오늘의 가을이다.
지난봄에 리나리아 퍼퓨리어 캐넌웬트의 손가락만 한 모종을 심었다. 이 모종이 무럭무럭 자라나 6월 말에 첫 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4개월, 리나리아 퍼퓨리어 캐넌웬트는 10월 중순의 지금에도 꽃을 피우고 있다.
가일라르디아 메사는 5월 말에 첫 꽃을 피웠다. 그리고 지금까지 5개월, 장마를 뚫고 폭염을 뚫고 끊임없이 빨갛고 노란 꽃을 피워내는 중이다.
버들마편초 역시 5월 말에 첫 개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줄기의 마디마디 새순을 올리더니 그 끝에서 꽃이 피고 또 피고 있다. 이 꽃은 만개의 순간만 몇 개월, 그리고 또 지금 10월 이 순간 가장 절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을의 장미도 빼놓을 수 없다. 아직 어린 장미들이라 여름 전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 송이 두 송이, 때론 다섯 송이 여섯 송이, 봄부터 가을까지 돌아보면 언제나 피어 있는 그런 꽃이다.
이렇게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계속 피어 있는 꽃들이 마당을 든든하게 장식하고 있다면, 가을의 꽃도 아직은 건재하다.
해를 쳐다보느라 나에게 뒷모습만 보여주고 있는, 그리고 그 뒷모습마저도 치명적인 대상화 추명국도, 파란색의 보석을 마당 한가득 선물해 주는 그리고 나비들에게 인기 만점인 토종 솔체도 10월의 가을을 책임지는 꽃이다.
정원에 청초함과 깨끗함을 때로는 경건함과 신비함을 느끼게 해주는 하얀색의 쑥부쟁이와 운남소국, 하나하나 층층이 꽃을 올리고 올려 이것은 벌과 나비의 탕후루, 하얀색과 파란색의 층꽃도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다.
이 가을꽃들 모두 뿌리 하나만을 땅속에 숨겨 차디찬 겨울을 버티고, 봄과 여름동안 잎과 줄기를 키우고 지켜 이제야 감격의 순간을 맞이한 꽃들이다. 가을의 꽃들은 단풍이 물들어 가고 낙엽이 떨어지는 지금, 초록의 시간이 끝나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만의 계절을 행복해하며 찬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일 년생의 가을꽃을 추가할 수 있다.
우리 집 마당에서 요즘 가장 환하고 선명하게 피어 있는 노란색과 주황색의 메리골드와, 흰색 살구색 보라색의 알사탕 천일홍. 이름은 다 같은 백일홍이지만 그 모양과 색, 종류가 천차만별이고 생명력도 개화기간도 첫 손에 꼽을 만한 백일홍 형제들.
가을을 대표하는 이런 일 년생 가을꽃들은 볼 때마다 아빠 미소를 짓게 만들며 10월의 미니 정원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10월의 꽃들을 보며 행복해하고 있는 나를 놀리기 위해 가드닝의 신은 지난 9월 초에 파종해서 새싹이 난 수레국화, 비올라 등의 성장을 멈추어 버렸다.
9월 초에 파종한 꽃들의 씨앗은 일주일 전후로 대부분 싹이 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본잎이 두장까지 나오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다음 약 한 달, 이 아이들이 더 이상 자라지를 않았다. 이대로라면 모종판에서 사그라질 기세였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모종판에서 들어내 땅으로 옮겨 주었다.
물도 잘 주고 싹이 난 후 햇빛도 잘 보여주었지만 한 달이 넘게 자라지 못한 건 아마도 파종한 흙이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파종에 실패한 꽃들은 내년 1월 말 집 안에서 다른 상토를 사용해 다시 한번 파종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이렇게 가을 파종은 실패했지만 해야 할 마당 일이 남아 있었다. 잉글리시 라벤더가 지난여름을 거치면서 너무 치렁치렁하게 자라났다. 이 녀석을 한 번쯤 정리를 해주어야겠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지만 자라난 새순에서 2차 개화를 준비하고 있어서 적절한 시기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비가 올 때마다 무거운 몸을 주체하지 못해 넘어지고 쓰러지는 모습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정리를 해버렸고, 잘라진 라벤더의 줄기들은 와이프가 잘 정리해 화병에 담아 두었다. 이 화병 앞을 지날 때마다 라벤더 향이 가득 풍겨온다. 겨울이 되어도 우리 집 안에는 여름의 향기가 남아 있을 것 같다.
가을은 식물을 옮겨심기에도 적당한 시기다. 그래서 정원 뒤에 방치되어 있던 어린 하얀색 층꽃을 마당 중간의 보라색 층꽃 옆으로 옮겨 주었다. 그리고 수크령 모우드리의 몸집이 작년에 처음 심었을 때 보다 두 배는 커졌는데, 이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지난 6월 그 앞쪽에 사계 바람꽃을 심었다. 수크령 모우드리가 여름 동안 몸집을 엄청나게 키우는 동안 그 밑에서 고생하고 있던 사계 바람꽃을 파내서 다른 곳으로 옮겨 주었다.
매일매일 짧아지는 햇살만큼 하루하루 아쉬움이 가득해지는 10월의 정원이다. 바래지는 꽃잎과 나뭇잎을 보고 있으면 이제 곧 꽃들의 계절이 사그라드는 순간이 다가옴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멈추지 않는다면 다음 계절의 겨울이 지나고 또 다음의 계절, 꽃들은 다시 새로운 내일과 새로운 설렘 그리고 새로운 기쁨을 선물해 준다. 그래서 아쉬움을 덜어내고 색 바랜 꽃들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오늘의 시월, 오늘의 가을이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3년 10월 1일~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