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꽃잔치, 가을꽃의 오늘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1년 차 가드너다

길고, 길고 또 길었던 여름이 완전히 끝나고 9월의 중순이 되어서야 진짜 가을이 찾아왔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공기가 느껴지고 한낮의 햇살은 따갑지 않고 포근한 계절이 되었다. 이런 날씨를 반기는 건 우리 인간들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의 더위에 숨죽여 있던 꽃과 식물들이 하나 둘 생기를 되찾고 있다. 잎과 줄기는 다시 초록초록 해지고 꽃들은 울긋불긋, 저마다 제 색깔을 내고 있다. 화려했던 지난봄의 순간처럼 지금 이 순간, 각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선선한 공기와 함께 다시 한번 꾸며 내고 있다.

가을 공기를 가장 먼저 반기는 꽃은 장미다. 지난여름에 피었던 장미꽃과 비교해 꽃의 크기가 1.5배는 커지고 색깔도 선명해졌다. 또 하루 이틀이면 타버렸던 여름의 장미꽃과 달리 제법 오랜 기간 개화를 유지하고 있다.

가을이 되면서 장미의 새순이 여기저기 쑥쑥 나오고 있고, 그 결과 꽃들도 많아지고 있다. 덕분에 지난봄에 이어 우리 집 미니 정원은 다시 한번 꽃 잔치,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요즘이다.

가을이 되면서 미니 정원에서 다시 꽃잔치가 시작되었다

이 와중에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의 신장지들이 내 키를 넘어서 자라기 시작했다. 신장지의 끝에서 꽃봉이 올라올까 기다렸지만, 꽃 소식은 기약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기다란 신장지가 바람에 휘청 거리는 것이 불안해 보여, 꽃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고 잘라 버렸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님 케이크를 묻어 주었다. 장미 커뮤니티에서 님 케이크가 님 오일과 비슷한 병충해 예방 효과를 발휘할 뿐만 아니라 토양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래서 독특하지만 중독성 있는 냄새가 나는 님 열매의 유박 님 케이크를 구입, 님 오일을 대신하여 지난여름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과 희석해서 장미 잎에 직접 뿌리는 님 오일 사용을 중단한 후, 땅에 묻는 님 케이크를 사용하니 장미 잎들이 쪼그라드는 증상이 없어졌다.

님 열매의 유박인 님 케이크

이렇게 가을 정원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꽃들은 장미만이 아니다.

작년에 이어 조금 더 품을 키운 추명국이 가을이 시작되자마자 첫 꽃을 터뜨리기 시작해 9월 하순 절정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분홍과 노랑의 조합이라는 촌스러운 색감을 가지고 있지만, 한복과 같은 단아한 느낌이 촌스러움을 전통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바꾸어준다. 그래서 가장 한국적인 가을꽃 하나를 추천하라고 한다면 추명국을 일 순위로 올릴 수 있다.

단아한 아름다움의 추명국

 

토종 솔체도 한창이다. 파란 꽃을 찾아보기 힘든 가을꽃들 사이에서 토종 솔체의 파란 꽃은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가을 하늘을 머금고 있는 듯한 솔체가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고 반짝반짝 파란색 구슬을 마당 위에 가득 띄워 주고 있다.

파란 색깔이 매력적인 토종 솔체 꽃

여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서 서리가 내릴 때까지, 개화기간이 정말 긴 가우라 바늘꽃도 빠질 수 없는 가을꽃이다. 가을바람에 살랑살랑 몸을 흔들고 있는 바늘꽃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살랑살랑 다시 막 풋풋해지고 싶은 가을 소년이 된다.

 

추명국과 솔체, 그리고 바람꽃이 이렇게 빛날 수 있는 것은 수크령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작년 초가을에 심은 수크령 모우드리가 1년 만에 품을 커다랗게 키우고 흑갈색의 꽃들을 많이 올렸다. 정원에서의 수크령은 길고 풍성한 잎들로 초록의 바탕을 만들며 어떤 꽃들과도 잘 어울리는 식물이다.

하지만 아침과 저녁 햇살이 잠시 멈추는 시간은 수크령이 자신의 존재를 마음껏 뽐내는 순간이다. 햇살을 한가득 머금었다가 다시 뿜어내는 수크령의 그 찬란한 빛이 지금 이 순간이 무르익어 가는 가을임을 그 무엇보다 잘 알려주고 있다.

수크령이 아침 햇살을 머금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가을을 대표하는 꽃으로 국화와 아스타도 빼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순백의 하얀 색깔을 가진 쑥부쟁이와 운남소국은 가을 정원에 청초함을 더하고 차분함을 선물해 준다. 정원에 잔잔하게 깔려 있는 순백의 꽃들과 함께라면 꽃 피는 계절의 마지막을 웃으며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가을의 단풍처럼 빨갛게 불타오르는 헬레니움도 만개했다. 꽃 하나하나의 크기는 1센티 정도로 작지만 뿌리 한주에서 다글다글 올라오는 꽃밥은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

또 하루하루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는 큰꿩의비름도 사랑스러운 아이다. 올해 가을에 심어 아직은 키가 작고 존재감이 미미하지만 내년쯤이면 훌쩍 자라 가을 정원 한쪽에 커다란 빨간색 조명을 선물해 줄 것이다.

가을 햇살에 붉게 물들어 가는 헬레니움

가을 정원의 일년초 삼 형제인 백일홍과 천일홍, 그리고 메리골드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귀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한 가을의 일년초들은 다들 자신만의 매력으로 오늘의 가을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가을 정원에서 이들 일년초는 꼭 필요한 존재중에 하나이니, 미리미리 파종을 하거나 어린 모종을 구입해 마당에 심어 놓는 수고가 필요하다.

 

이제 하얀색 국화와 주황색 포트멈, 그리고 층꽃이 개화를 남겨두고 있다. 남아 있는 이 꽃들과 함께 올해의 정원도 슬슬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 달도 더 넘게, 서리가 내리고 첫눈이 올 때까지 꽃들은 묵묵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정원은 가을의 꽃들과 천천히 작별하며 겨울을 맞이할 테지. 그러니 아쉬움은 나중으로 돌리자.

나의 작은 마당에서 꽃들과 함께 지금의 가을을 만끽하다 보면,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오늘을 웃음 지으며 살아가게 해주는 가을의 꽃들이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3년 9월 16일~9월 30일)

가을꽃이 한창인 미니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