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공항버스 종점인 신타그마(Syntagma) 광장에 내렸다. 서울로 치면 광화문 광장급이다. 여기에서 호텔까지 걸어간다. 걷는 동안 등 뒤의 배낭이 신경 쓰였다.
독일에서 새로 산 배낭인데 보기와 달리 착용감이 별로다. 몸에 딱 붙지 않고 살짝 처지는 느낌이다. 배낭 속까지 다 뒤져 보고 샀지만 직접 매어보진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 퀼른 글로브트로터(Globetrotter) 매장에 건의해야 하나? 차도 시승식하는데 배낭도 매고 걸어보게 하는 건 어떻냐고.(닳는 것도 아니잖아).
호텔은 신타그마광장에서 10여분 거리로 걸을만했지만 중국어 간판 난무한 후줄근한 거리변에 있었다. 관광객 존과 현지인 시장 존의 경계였다. 다행히 치안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체크인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에게? 방이 작고 칙칙하잖아." 사진 속의 화사하고 볕 잘 드는 방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예약한 방이 맞나 의심이 들었다.
호텔 Evrypides의 객실
호텔 앱을 열어 객실 사진과 비교해 봤다. 방 배정이 잘못된 게 틀림없다고 바꿔달라고 할 참이었다. 침대와 가구 배치며 불행히도 같은 방이었다.
혼자 쓸 방이니 좁은 건 그렇다 치고 뭔가 쾌적해 보이지 않는다. 이 2성 호텔이 무려 1박에 12만 원이라니. 나란 사람? 작년 1년간 숙소 290번 골라보고 자본 사람이다. 그래도 호텔 구하기는 여전히 어려워. ㅠㅠ
"여기서 4박이나 묵을 건데 이거 망한 거 아냐?" 구석구석 살펴보니 청소 상태는 나쁘지 않다. 낡은 호텔이라 산뜻한 감이 덜할 뿐이다. 그래도 약속대로 발코니는 딸려 있네. 기왕 나흘을 자야 한다면... 그래, 방법은... <발가락이 닮았다>처럼 예쁜 점이 나올 때까지 찾는 거다.
발코니에 이어, 장점, 또 찾았다. 전등이 밝다. 내가 좋아하는 책상도 있다. 유럽의 칙칙한 실내가 영 답답했는데 천장 등에 테이블 등까지 켜니 한국방 못지않게 환하다. 서양 호텔과 집들은 방이 어두워 답답했다. 서양 사람들이 한국 오면 놀란다고 한다. 가정집 실내가 너무 밝아 병원이나 쇼핑샵 같다고 느낀다나.
다음날 아침 조식당에 올라갔다. 사실 호텔 방에 실망해서 조식은 기대도 안 했다. 기껏 토스트에 시리얼과 커피 정도겠지. 7층 조식당에 오르는 순간, 언빌리버블이었다. 반어법이냐고요? 아니 진짜 반전 조식이었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 바로 보이는 조식당
그릭 스타일의 신선하고 알찬 조식 메뉴들
매일 아침 파르테논 신전 뷰의 조식이라니! 이 맛에 돈 쓰고 돌아다니지. ㅎㅎ
사방이 트인 통창으로 아테네 시내가 다 내려다 보였다. 놀랍게도 아크로폴리스 뷰의 루프탑 조식당이었다. 메뉴 또한 살라미에 햄, 페타 치즈 그릭 요거트와 과일과 후식까지 신선하고 알찼다. 커피와 음식 한 접시를 테이블에 놓고 앉으니 특급호텔이 부럽지 않다. 전망이 특급이요 조식이 특급이다. 그깟 방 작고 덜 산뜻한 거? 용서해 주기로 한다.
둘째 날 저녁에 침대 옆 테이블에 앉으니 소리가 들렸다. 옆 객실의 손님은 조식당에서 마주친 젊은 동양 남자였는데 전화를 하는지 중국말이 들린다. 객실 방음 수준이 이렇구먼. 그런데 말이 안 통하니 내겐 멀리서 나는 티브이소리처럼 들렸다. '이 정도 방음? 문제없음'이다.
잠자리에 누우니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요란하다. 낮에 사람도 차도 별로 안 다니는 한갓진 길이더니 근처에 바(Bar)가 있나 보다. 음악 소리에 방해받을 틈도 없이 잠에 곯아떨어졌다. 아테네 시내는 차 타가기가 애매해 무조건 걷게 되어 있다. 하루 2만 보, 13킬로는 기본이다. 밤마다 기절잠을 잤다.
이런 요술 호텔을 봤나. 방은 평범한데 식사는 5성급이요, 방음은 언어장벽이 저절로 차단, 심야 음악소음은 침대에 눕는 순간 자동 오프된다. 이만하면 나 호텔 잘 구한 거 아냐?
아테네 호텔 팁
※ 아테네에서는 신전 뷰의 조식당을 갖춘 호텔에서 묵기를 추천한다.
아테네 구도심은 전부 5층 이하이고 신전은 도심 중앙 아크로폴리스 꼭대기에 있어 신전이 조망되는 호텔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호텔 후기를 보고 조식당이 루프탑에 있는지 꼭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 내가 묵은 호텔 정보 : Evripides Hotel
- 2성급. 주소: 79 Evripidou Str, 아테네. 2인실 약12만(조식 포함)
- 재방문 의사 : 있음
- 부킹닷컴에 들어가 객실 사진을 찾아보니 최근에 리모델링되었는지 반갑게도 산뜻한 객실 사진이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