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8
4월 마지막 주답지 않게 쌀쌀한 퇴근길, 정면으로 달이 보였다. 이 시간에 달이 저기 있었나. 어제도 그저께도 안 떴을 리가 없는데 새삼 낯설었다.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봄에 읽은 문장이 떠올라 옷깃을 여미며 달을 바라보았다. 읽으면서 분명 의심 한 톨 없이 고개를 끄덕였건만, 직접 보니 어쩐지 감흥이 없었다. 달이 참, 멀었다.
오늘은 정말로 즐거운 글을 쓰려 했다. 계획대로 3개월간의 연재를 마쳤고, 마지막 주자로서 앞으로의 방향을 이야기할 차례였으니, 색깔로 치자면 맑은 파랑 같은 글이 마땅했다. 실패 없는 석 달이었다. 매주 업로드도 회의도 빼먹지 않았고, 한시적이었던 프로젝트를 사계절 내리 지속하자 결심했으며, 그러면서도 정기적으로, 현명하게 우리를 정비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그런데 나는 왜, 하필 봄 시즌 마지막 원고를 두고 이렇게까지 오도 가도 못하는 채로 있는 건지.
연재를 하면서 기뻤던 순간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조금씩 늘어가는 팔로워 숫자에 놀라고, 댓글 알림에 설레며, 색색깔로 쌓이는 피드를 자꾸 들여다보던 날들. 무엇보다 내가 내 문장을 쓸 때 차오르던 기쁨에 대해. 그리하여 쉼을 택한 5월을, 다시 또 달릴 유월과 칠월을 기대했다. 분명 거짓이 없는데, 어쩐지 더 써지질 않았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2월부터 지금까지 스물다섯 편의 에세이를 썼다. 적어도 이틀 전엔 원고를 완성해 동료들에게 먼저 점검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엔 하루 전까지도 머릿속이 부산해, 초고도 쓰질 못했다. 애꿎은 손발만 자꾸 차가워져서 그냥 펜을 놓고 <진주의 결말>을 다시 읽었다. 도대체 달까지 갈 수 있다는 듯 걷는다는 게 뭐야. 심술 반, 체념 반으로 천천히 이야기를 다시 보았다. 걷는 법을 알고 싶었는데, 이번엔 ‘진주’가 선택한 결말에 걸렸다. ‘어쨌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결말도 똑같다면, 나는 뭘 해야 할까.
글쓰기 프로젝트를 결심했던 1월. 갑작스러운 결정이긴 했지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분간 약속은 못 잡겠지만 뭐, 4월엔 퇴사도 하고, 대부분의 휴식 시간을 차지하던 뜨개질도 곧 그만둘 것이었다. 예상과 달리 이직을 했고 여름옷을 뜨기 시작했으며 반가운 얼굴도 놓치지 않았지만, 쓰기를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내 책상, 내 컴퓨터 앞에서 나는 쓰고 있다. 여름 시즌 연재 중에도 이렇게 원고를 쓰고 있겠지.
오랜만에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사위가 아직 환했지만, 오늘도 저기, 달이 있었다. 달리기를 하며, 밭은 숨을 쉬며, 주절주절 혼잣말을 했다. 그사이 깜깜한 밤이 되었고, 달도 어딘가로 가려졌지만, 그게 이 글이 되었다.
어떻게 해도 같은 결말에 이른다면, 내 안의 격랑에 매번 기꺼이 넘어지며 다시 종이 앞에 앉는 것, 그게 내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내가 쓰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달을 향해 걷는 법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