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감정을 해부하다
나는 감정이 어렵다.
처음 이 말을 들으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감정을 잘 안다.
단지 그걸 ‘하나의 이름’으로
쉽게 명명하지 않을 뿐이다.
사람은 웃으며 눈물을 흘릴 수 있고,
분노로 미치기 직전에 웃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복합적인 상태는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가슴이 터질 듯한 사랑도 사랑이고,
어미새처럼 지켜주고 싶은 마음도 사랑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미움도, 원망도, 기쁨도 함께 겪는다.
그럼 그건 사랑이 아닌가?
ㅡ
나는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고정하지 않는다.
그 순간 내가 느낀 복잡한 감정을
분석하고, 분해하고, 언어로 풀어내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잘하는 일이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참된 평온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결을 꿰뚫어볼 때 온다”라고 말했다.
나 또한 감정을 회피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직시하고, 분해하고,
내 언어로 천천히 풀어내는 쪽을 선택해왔다.
나는 말하자면, 감정의 해부학자다.
시체를 해부하는 의사가 해부대 옆에서
무심히 밥을 먹을 수 있듯,
나는 내 안의 감정을 펼쳐놓고 들여다본다.
남들이 무서워하거나 회피하는 것들을,
나는 눈을 피하지 않고 응시한다.
심리학자 라자루스는
감정이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감정보다 먼저
그 감정을 불러온 해석과 흐름을 살펴본다.
단어가 아닌 맥락을 보고,
표현이 아닌 결을 본다.
ㅡ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인간은 한 번에 하나의 감정만 느끼는
존재가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감정보다 그 결을 따라간다.
그 결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결국, 감정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걸 억지로 하나의 이름으로
설명하려 했던 게 어려웠던 것이다.
팔 안에 뼈, 근육, 정맥, 동맥, 피가
동시에 존재하듯
감정도 겹쳐 있고, 흐르고, 살아 있다.
나는 그것을 해부하듯 조용히 펼쳐놓고,
그 안에 숨은 진심을 들여다본다.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그게 나다.
나는, 감정을 해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