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해하는 작은 기록 | EP.20
사람들은 스카이다이빙을 말할 때
대개 도전을 떠올린다.
높이, 속도, 심장 박동, 비명 같은 것들.
하지만 나에게 스카이다이빙은
그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성취도 아니고,
극복도 아니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면도 아니다.
나에게 스카이다이빙은 의식(儀式)이다.
ㅡ
나는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
충동적으로 삶을 던지는 쪽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늘 반대편에서 살아왔다.
감정을 관리했고,
관계를 조율했고,
말의 온도를 계산하며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나 자신을 단단히 묶어두었다.
그래서 내 일상은 안정적이다.
하지만 그 안정은
어느 순간부터 과도한 통제가 되었다.
스카이다이빙은
그 통제를 부수는 행위가 아니다.
잠시 풀어두는 행위에 가깝다.
내가 원하는 건 위험이 아니다.
내가 끌리는 건
위험처럼 보이지만
이미 안전이 확보된 구조다.
정교한 장비,
숙련된 전문가,
수없이 검증된 절차.
죽을 것 같은 감각과
절대 죽지 않을 구조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이 이중성은
내 삶의 방식과 닮아 있다.
ㅡ
나는 늘
무너지지 않는 선 안에서
최대한 멀리 가는 사람이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 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놓는 것이다.
뛰어내리는 순간,
생각은 멈추고
역할은 사라지고
책임은 공중에 흩어질테니까.
그 짧은 무중력의 시간 동안
그 무엇도 그 누구의 기준도 아니다.
그저 몸과 감각만 남는다.
그건 해방이 아니라
회복에 가깝다.
ㅡ
돌이켜보면
나는 이미 수없이 많은
정서적 스카이다이빙을 해왔다.
관계에서,
사유에서,
감정의 깊은 곳에서
먼저 뛰어본 쪽은 늘 나였다.
다만 몸만은
늘 안전한 땅에 남겨두었을 뿐.
그래서 무의식은
조용히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는 생각 말고,
말 말고 몸으로 한 번.”
그래서 스카이다이빙은
내 인생의 단순한 버킷리스트가 아니다.
체크하고 지울 목표도 아니다.
그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아직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아직 나를 놓아도 괜찮다는 걸
몸으로 확인하는 의식이다.
한 번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 한 번은
반드시 필요하다.
ㅡ
나는 도전하지 않기 위해
스카이다이빙을 꿈꾼다.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되돌아오기 위해서.
그 의식이 끝나고 나면
나는 다시
아주 차분하게
땅을 딛고 설 것이다.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정확하게,
그리고 이전보다
조금 더
나 자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