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해하는 작은 기록 | EP.19
나는 실패를 싫어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실패가 두렵지 않다.
두려운 건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실패를 해석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남겨두는 상태다.
혼자 뷔페에 간 적이 있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자연스럽게 생겼을 기준들이
그날은 아무것도 없었다.
적당히 먹어야 한다는 눈치도,
이쯤에서 멈추라는 암묵적인 신호도.
그래서일까.
나는 천천히,
정말 좋아하는 것만 골랐다.
그리고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며
여유있게 먹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욕망에 약한 사람이 아니라
욕망을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ㅡ
여행도 비슷하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는
계획이 자주 틀어진다.
길도 잘못 들고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때도 있다.
처음엔 그게 실패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실패 앞에서
나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아, 생각과 차이가 크구나.”
그렇게 한 줄로 정리하고
다음 길을 고른다.
여행이 끝나고 남는 건,
사진이 아니라
판단의 정확도다.
ㅡ
극한의 상황에
나를 놓아두는 것도 마찬가지다.
클라이밍을 하는 것도
스카이다이빙을 상상하는 것도
내가 무모해서가 아니다.
구조가 보일 때만 한 번 더 간다.
실패하면 이유를 보고
이유가 보이지 않으면 멈춘다.
이 반복 속에서 실패는
나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조금씩
정밀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왜 굳이 그런 상황에
나를 놓아두느냐고.
왜 혼자 가고,
왜 다시 시도하고,
왜 실패를 쌓느냐고.
오히려 답은 단순하다.
ㅡ
실패가 쌓일수록
나는 나를 더 믿게 되기 때문이다.
칭찬을 받아서 올라가는 자존감은
쉽게 흔들린다.
하지만 실패를 통과하며 만들어진 자존감은 다르다.
그건 감정이 아니라 신뢰다.
넘어져도
이유를 찾을 수 있고,
무너져도
다시 설 수 있다는 확신.
이 확신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주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가 쌓일수록
나는 점점 조용해진다.
들뜨지 않고,
과장하지 않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대신 단단해진다.
실패는 나를 낮추지 않았다.
실패는 나를 알게 했다.
그리고 나를 알게 되는 만큼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이제는 안다.
자존감은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실패를 끝까지 해석해본 사람에게
조용히 남는 잔여물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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