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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Jan 30. 2022

테라스, 발코니, 베란다...

일상의 건축, 공간에 대하여

약 10년 전, 건축학도로서 마치 의무처럼, 저는 유럽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배우는 건축이라는 학문은 아쉽게도 우리보다는 유럽, 서양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것이 우리보다는 먼저 발전했고, 꽃 피웠기에 그것을 배우는 학생들은 관례와도 같이 그것을 직접 보고 느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그곳을 향하는 것이 마치 유행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유행에 편승해 유럽으로 향했던 것이지요. 실제로도 책과 수업에서만 보던 고전 건축물을 실제로 보며 감동했고, 매체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거장의 작품들도 눈으로 보고 만져보며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눈에 띄고 인상 깊은 장면들만 기억에 남은 반면, 일상적인 모습이 기억에 없는 것에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건축이라는 것은 위대하고 유일한 작품을 일컬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일상에 가장 가까운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여행이라는 조건 하에 정해진 시간과 제약 속에서 이뤄졌던 경험인 지라 그 한계가 명확했던 것 같습니다. 여행이 아닌 실제로 살기 위해 다시 유럽으로 온 저는 그때의 저보다 조금은 더 성숙했고, 그때에 비해 여러 제약이 없어졌기에 앞서 말한 아쉬움에 반해 조금 더 일상의 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선 그 일상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없으나, '테라스 하우스'라는 명칭의 공동주택 양식이 우리나라에 유행처럼 들어오고 퍼졌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의 집 지붕이 우리 집의 마당이 됩니다.'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마치 전에 없던 새로운 발명품을 소개하듯 집을 홍보하던 전단의 한 면이 떠오르네요. 또한 우리들에게는 흔해져 버린 아파트라는 주거 양식보다는 고급인 형태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프랑스에서 볼 수 있는 테라스의 모습.

'테라스'라는 용어의 정의를 제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단어를 이루는 어간을 보면 땅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왔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는 테라스라는 단어는 정말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는 단어입니다. 이곳에서의 테라스는 식당 앞에 펼쳐져 있는 야외 식사 공간을 말합니다. 별다른 구조물을 두어 만들기보다는 식당 주인이 자기 매장 앞 일정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천막을 치는 정도의 행위만으로 테라스는 완성됩니다. 제가 이곳 생활을 시작한 때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이었고, 이곳도 그로 인한 제재가 굉장히 많았던 시점이었습니다. 그 제재 중, 사람들에게 가장 반발이 심한 항목 중 하나가 테라스에서의 식사 금지 었습니다. 그로 인해 모든 식당의 테라스는 펼쳐지지 못했고, 사람들은 이에 굉장한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테라스가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던 그 시점의 저는 그 제재가 풀린 몇 달 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이러스 대처 상황에 따라 완화된 조치로 테라스가 다시 오픈되자, 모든 식당의 테라스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삼삼오오, 혹은 혼자, 사람의 수와는 상관없이, 무엇을 먹는지와는 상관없이 테라스는 사람들로 차기 시작했고, 도시의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에게 테라스는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따뜻한 햇살 아래 친구와 혹은 가족과 식사를 할 수 있는, 일상의 장소인 것입니다. 이들에게 테라스 하우스라는 우리나라의 주거양식을 소개한다면 아마 설명이 조금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베란다 확장'. 우리나라 성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단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나 집에 대한 관심이 있는 나이대일수록 더 그렇겠습니다. 베란다는 아파트에서 거실과 방 등을 이루는 주요 베이 밖으로 내어진 여유 공간으로 주로 창고, 빨래 건조대 등이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여유 공간을 실내 공간화하여 주거 면적을 높이는 행태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큰 집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논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에 따른 시장의 반응과 국가의 반응이 남달랐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었던 이 행태를 어느 시점부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빈번해지자 법률로 인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즉 여유공간 없이 베란다를 모두 없애고 거실과 방을 넓혀도 무방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아파트 분양 광고에 실제 면적과 베란다 확장 후 면적이 동시에 기입되는 현상, 그리고 모델하우스에는 베란다 확장을 가정한 모습을 구현한 상태로 전시를 하는 현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베란다 확장을 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아파트에서는 베란다라는 여유공간을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프랑스에서 볼 수 있는 발코니의 모습.

'베란다'의 정의는 서로 다른 두 층간의 면적 차이로 생기는 공간. 즉 아래층이 위층보다 넓을 경우 그 넓이 차이로 생기는 계단과 같은 바닥 공간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보는 아파트의 베란다는 실제로는 베란다가 아닌 것이 됩니다. 위, 아래층의 면적 차이가 보통은 없기 때문입니다. 굳이 정확히 하면 '발코니'가 이에 적합한 표현입니다. 발코니는 층 간의 면적 차이와는 상관없이 건물의 본체보다 바깥으로 내어진 여유 공간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발코니라는 존재가 제가 이곳에서 느낀 일상의 건축 중 가장 큰 요소입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수백, 혹은 수천의 세대가 함께 사는 공동주택을 일컫는 말이지만, 유럽에서의 아파트는 주로 공동 주거의 한 세대를 의미합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어찌 됐건 둘 모두 공동 주거에서 쓰인다는 점에선 같습니다. 유럽의 아파트에는 앞서 말한 '발코니'라는 요소가 매우 흔합니다. 아파트의 규모와 상관없이, 어느 아파트를 보더라도 발코니가 있음을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튀어나온 길이는 짧게는 몇십 센티미터에 불과하기도 길게는 1~2미터가 될 정도로 다르지만, 없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여유 공간은 작다면 꽃을 기르고 화분을 두는 화단의 역할로, 공간의 여유가 있다면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마치 위에서 말한 테라스와 같은 공간으로 쓰입니다. 사람들에게, 지나가는 차에게 훤히 노출되더라도 이곳

 사람들은 아무 의식 없이 발코니를 씁니다. 단순하게 그것을 '쓴다'라고 동사를 통해 표현한 이유는 정말 이들에게는 일상적인 것이기에 일상의 도구처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확장하여 가두기 어려운 형태인 경우도 많고 애초에 지어진 방식이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공간에 대한 욕심이 없기 때문에 발코니를 그대로 두는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발코니는 그 자체만의 고유의 역할이 있고, 또 그것을 활용하는 사용법에 대한 자세가 탑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파리로 이사를 하며 안 사실 중 하나로, 발코니가 있는 경우, 그 집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그 가치는 면적 확장의 가능성이 아닌 다른 것에 매겨져 있을 것입니다.


전통 건축의 마당, 마루와 아르키움에서 현대건축으로 재해석한 발코니.

우리 전통 가옥을 보면, 마당, 툇마루, 대청마루 등 다양한 요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억지스러울 수 있겠지만, 제 생각엔 이 요소들이 지금까지 이야기한 테라스, 발코니 등의 요소와 그 역할이나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집집마다 있던 마당은 유럽의 식당 앞 테라스와는 다르지만, 집 안에서는 할 수 없었던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었고, 이에 비해 마루는 조금 더 발코니와는 가깝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마루에 걸터앉아 차를 마시거나 부채질을 하는 모습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우리의 풍경입니다. 제가 일했던 아르키움에서는 새로 설계하는 건물에 대부분 이 마루와 같은 공간을 배치하곤 했습니다. 비록 건물을 이루는 재료나 구조는 현대화되어 다르지만, 마루와 같은 기능은 어떤 조건이더라도 의지를 갖기만 하면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루의 재료가 콘크리트여도 그 역할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여유 공간을 둠으로써 높은 층에서도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는 장소가 생기게 되고, 마치 유럽의 발코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을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싶은 의지를 갖고 설계를 하곤 했습니다. 이와 같은 여유 공간을 설계할 때에는 항상 공급 면적과 시공 비용 등에 대비한 그 가치를 설명하며 건축주나 발주처를 설득해야 하곤 하는데, 이곳에선 조금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굳이 우리와 이곳, 혹은 이곳 사람들과 비교를 하며 어느 한쪽을 추켜 세우거나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제 경험에 빗댄 작은 상상을 하는 것일 뿐이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곳 생활을 하며 문득 하게 된 일상에 대한 생각, 또 역시 그것을 제 직업과 전공의 관점으로 본 요소들을 두서없이 써보았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만, 그 같은 와중에도 조금씩 보이는 차이점들이 저를 놀라게 합니다. 그 조그마한 차이로 인해 이뤄진 결과를 보면 제 눈에는 굉장히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건축적인 관점에서 본 부분이 많긴 합니다. 이미 제 글을 통해 제가 어느 쪽을 더 선호하고 이미 편애하고 있는 지를 느끼시겠지만, 제 개인적인 신념으론 나름 그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글로나마 조금이라도 제가 느낀 점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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