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365일, 24시간이 모자라
"쿠팡에서 하루만 일해보려고."
"엄마가!?"
나는 엄마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제 하다못해 쿠팡에서 일을 한다니...
"20대, 30대도 쿠팡에서 일하면 힘들어. 엄마 나이를 생각해야지!"라고 했더니
"그냥 한 번 해 보려고~"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일을 해야 했던 엄마는 돈을 버는 일이라면 거침이 없고 두려울 게 없다. 그냥 한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한 번도 뵌 적 없는 할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시느라 바빴고, 여자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며 엄마의 가방과 책을 버리고 공장으로 보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배움의 싹을 뽑혀 버린 엄마. 게다가 할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일 힘들게 밭일을 하셨으니 그런 할머니를 보면서 엄마는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엄마의 모습을 보며, 어서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아빠를 만나 결혼을 하고, 우리 삼 남매를 낳고 나서 엄마는 더 치열하게 일해야 했다.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나의 어린 시절에는 가난이 있었다. 주택 단칸방에서 다섯 가족이 모두 모여 잠들던 기억과 집 밖 낡고 허름한 나무 푸세식 화장실 변기에 발이 빠져 울었던 기억. 지금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그땐 그게 가난인 줄 몰랐다. 그 시절 당장 먹을 것이 없던 적도 있었다는 엄마에 말에 적지 않게 놀랐다.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평일엔 우릴 보살피기 위해 집에서 주로 부업을 했고, 회색 봉고차를 마련해 주말엔 트렁크에 아이스크림 리어카를 싣고, 근처 공원에 가서 우리 삼 남매를 놀라고 풀어놓고, 아이스크림 장사를 했다. 가끔은 동네에 전단지를 돌려서 집에서 아귀찜을 만들어 배달해 팔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서 엄만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던 거다.
그렇게 마산에서 살다가 내가 11살이 되던 해, 외삼촌이 계시는 경기도로 이사를 왔다. 외삼촌이 2층짜리 건물에 숯불갈비집을 하셨는데, 그 식당에서 일을 했다. 이 때는 매일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12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의 옷과 머리에는 불냄새,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지금도 고깃집 냄새를 맡으면 난 엄마 생각이 난다. 그게 나에게 가장 익숙한 엄마의 체취라서.
엄마는 이외에도 마트 시식 판매원과 회사 식당에 밥을 해주는 일도 했었다. 이쯤 되면, 엄마의 삶은 말 그대로 체험 삶의 현장과도 같다. 엄마의 삶의 현장엔 엔딩이 없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그런 엄마는 자식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명확했다. 아빠가 돈이 없으면 대학 말고 공장에나 보내야지 하고 했던 말에 화가 나서 싸우기도 하면서 그렇게 엄마는 우리 삼 남매의 배움의 싹을 길러냈다. 그 싹을 키워서 자식들은 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랬던 것이다. 자신처럼 자식들이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대학생 때, 엄마가 일하던 분식집 근처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용돈을 벌었었는데 내가 출근 전 분식집에 들렀을 때, 내가 영어영문학과라서 영어학원에서 일한다고 분식집 사장님에게 자랑을 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땐 학원에서 일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인지 하고 창피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자식을 잘 가르쳐서 대학을 보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게 한 것이 엄마는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내가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고 나서는 엄마는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했다. 엄마를 가장 많이 닮은 내가 엄마와는 다르게 대학을 나오고,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됐으니.
나는 몸으로 고된 노동을 하며 돈을 버는 엄마가 한 번도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을 하던 떳떳하게 돈을 벌어서 삼 남매를 길러낸 엄마가 나는 존경스럽다 못해, 내가 과연 엄마였다면,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못한 채로 자식 셋을 길러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되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삶은 우리 삼 남매를 위한 희생 그 자체였고 그저 존경스럽다. 자식을 낳은 부모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엄마는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아마도 돈이 없어 결혼을 못하고, 아이를 못 낳는다는 말은 엄마에게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이런 엄마가 하다못해 이젠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을 해보겠단다. 우리 삼 남매가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전처럼 여전히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것처럼 여전히 일을 한다. 이제 엄마도 나이가 들었으니 예전처럼 일을 해선 안된다고 몇 번을 말했지만 엄마는 도무지 들을 생각을 안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쉬면 오히려 몸이 아프다고, 지겹다며 결국 다시 일을 하러 나가버리곤 한다. 이젠 자식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번 돈을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어서 돈을 버는 게 더 즐겁다고 한다. 평생 일만 해온 엄마는 특별한 일상의 취미생활 없이 그저 돈을 버는 것이 가장 즐거운 것이다.
엄마와 단둘이 살게 된 이후로 내가 다짐한 것이 있다. 일 하는 엄마의 모습만을 기억하지 않도록 엄마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기로. 엄마가 좋아하는 피자, 파스타를 먹으러 나가거나, 이케아에 들러서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구경하거나, 베란다에 놓을 화분을 사러 근교로 나가거나, 올해 11월 괌 여행을 꼭 미루지 않고 계획해서 함께 다녀온다거나... 엄마가 편히 즐기고 쉬는 모습을 많이 기억할 수 있도록, 엄마의 일상에 내가 많이 개입해보기로. 엄마의 삶의 현장에 적당한 시기에 컷! 하고 엔딩을 만들어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