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여행
4월 5일, 시칠리아 타오르미나에서 우리가 탄 기차는 메시나까지 달린 후
세 량으로 나뉜 채 배에 실린다. 이삼십 분이나 걸렸을까, 잠시 메시나 해협을 건넌 후, 기차는 배에서 빠져나와 다시 철로를 달려 낯선 도시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드디어 이탈리아 본토에 도착한 것이다. 2월 8일 인천 공항을 떠난 지 거의 두 달 만이다. 이탈리아 서쪽 끝에서 두 시간을 기다린 후 새로운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 내륙을 동서로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바리.
이탈리아 남부 여행이 시작된다.
우리는 바리에서 삼일 머물면서 알베로벨로를 다녀왔고, 마테라에서 1박을 했다. 폴리나뇨 아 마레에 이틀 머물면서 모노폴리를 갔다 오고, 레체로 이동해 이틀 머문 후 소렌토로 이동했으니, 꽤 바쁜 일정이었다. 특이하고 멋진 풍경이었지만, 거대한 케리어를 끌고 자주 이동하는 건 힘이 들고, 도시에 대한 감흥이 오래가지 못했다. 그냥 구경하고 왔다는 느낌이랄까.
바리는 바다와 접해있는 꽤 큰 도시로, 관광지의 느낌보다는 세련된 도시 냄새가 났다. 바리 대성당은 하얀색 대리석이 특징이며, 1층 성전보다도 지하 예배당이 더 인기가 있다. 그 이유는 지하 예배당에 산타클로스의 기원이 되는 성 니콜라스 유해가 있기 때문이다. 바리 대성당은 자연스럽게 바리 구도심으로 연결되고, 좁은 골목길은 남부지만 여기도 여전히 이탈리아라는 걸 알리는 듯 북적인다. 곳곳에 뽈보 햄버거를 선전하고, 우리는 갓 튀긴 오징어 새우 칼라마리를 사 먹는다. 냅킨 한 장 달라는 요구에도 쌀쌀맞은 가게 주인의 반응에 필요 없다는 듯 같이 응수를 하니 오히려 친절해진다. 이제 외국인도 별로 두렵지 않다. 사람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깔라마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큼 맛이 있다. 직접 반죽을 밀어서 파스타를 만드는 걸 보여주는 할머니를 찾아 골목길을 헤매고, 카페에서 햇살과 함께 젤라토를 즐긴다. 살이 찌는 느낌이다.
바리에서 다녀온 알베로벨로는 마치 스머프들이 살 것만 같은 고깔 모양의 돌지붕으로 유명한 곳이다. 돌을 쌓는 방식이 건축가마다 달라서 누구의 솜씨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고 하고, 지붕 위에 특별한 표시를 해놓기도 한다. 하얀색 벽에 검은 회색빛 고깔 지붕의 알베로벨로는 무슨 민속촌 느낌이 나고, 많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와 있었다. 몰아치는 바람과 서늘한 날씨에 우리는 돌로 지어진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가 벽난로를 쬐며 점심식사를 했다.
폴리나뇨 아 마레는 작지만 아주 예쁜 도시였다. 한두 시간이면 바닷가 마을을 다 둘러볼 수 있다. 손바닥 만한 해변에 사람이 가득하고, 바닷가로 돌아가서 바라보는 해변은 더욱 근사하다. 누군가는 여기서 찍은 사진 몇 장에 홀려 이곳을 찾아올 수도 있겠다 싶다.
폴리나뇨 아 마레는 너무도 정갈하게 가꿔진 숙소, 특히 주방에 반한 곳으로 더욱 기억에 남는다. 숙소 바로 옆집은 이곳에 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레스토랑이라, 짐을 올리고는 바로 외식을 했다. 마침 우리가 투숙하는 날 호스트는 다리를 다쳐서 본인 대신 어머니를 우리에게 보냈고, 퇴실하는 날도 호스트의 어머님을 뵙고 마무리를 했다. 그분이 가꾼 부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정이 갔다. 며칠 더 머무르면 좋겠다 싶은 숙소였다. 병원에 누워있는 아들 호스트는 대신 중요한 일을 처리해 주었다. 꼼짝을 못 해서 계속 핸드폰만 쥐고 있는지 대답은 즉각적이고, 친절하고 꼼꼼하게 우리를 도와주었다.
폴리나뇨 아 마레에 도착하면서 일행 중 한 분의 배낭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바리 중앙역에 있는 버거킹에 두고 온 것 같다는 추측을 한다. 처음에는 그냥 할 수 없다며 포기하던 언니는 점차 그 배낭에 들어있는 물건들의 소중함을 새록새록 떠올리고는, 그곳에 있는 것만 확인되면 찾으러 가겠다고 했다. 대장은 빠르게 호스트에게 연락을 취하고 도와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재빠르게 그곳으로 전화까지 해 본 호스트는 가방이 거기 안전하게 있다며 가방 사진까지 올려주었다.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언니 둘이서 다시 기차를 타고 바리 중앙역 버거킹 매장으로 가서 가방을 찾아왔다. 누가 훔쳐간 것이 아니고, 등에서 벗어놓고는 그냥 일어서 나온 거였다. 다행히 그곳에 있던 손님들이 가져가지 않은 덕분에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다른 동행자는 팔레르모에서 핸드폰을 떨어트려서 거의 모든 정보를 잃을 뻔했다. 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난 핸드폰은 여행 마지막까지 제 역할을 다하긴 했다.
소매치기나 도둑을 맞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의 부주의로 생기는 사고가 더 많다. 넘어지는 일, 떨어뜨리는 일, 흘리는 일. 등등.
별 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감사드린다.
이탈리아에 구경거리는 무궁무진하다. 맛있는 것도 넘쳐난다.
2025. 5. 16. 아침 서울에서